본문내용 바로가기
”K-아트마켓 잠재력 탄탄....‘미술 성장엔진’ MZ세대가 있잖아요“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기사입력 2025-09-16 14:50:14   폰트크기 변경      
원로 갤러리스트 손성례 청작화랑 회장이 긴급 진단한 미술시장 실태와 전망

경기불황에 자금 유입 경색
미술시장 5년째 심각한 조정          
작가 작업실 ‘그림공장’ 전락
상업화랑들도 개점휴업 상태

증시 호황 계속 이어질 경우
그림시장 그나마 한가닥 희망
아트페어에도 관람객 줄이어
미술애호가층도 갈수록 증가

시장 침체 조만간 탈출 기대


미술품은 풍성한  삶의 윤활유
재산증식도 가능한 투자 수단
잘만 고르면 ‘복덩이’될 수도
 

손성례 청작화랑 회장이 서울 강남구 신사동 전시장에서 최근 미술시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청작화랑 제공


한국 미술시장이 5년째 심각한 조정을 받고 있다. 올해 상반기 미술 경매시장 총 거래액은 572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917억원) 대비 37.6% 감소한 수치다. 국내 미술시장이 그야말로 맥을 못추면서 2020년 총액(약 3291억원)과 비교하면 5분의 1토막으로 쪼그라들었다. 미술계 일부에서는 주문이 끊긴 일부 작가의 작업실이 '그림 창고'로 전락하는 등 시장이 비이성적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강남 미술계 터줏대감’ 손성례 청작화랑 회장은 "지난 2020년 이후 고평가된 작가들의 작품값이 급락하면서 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지만 그렇다고 2008년처럼 시장이 붕괴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최근의 미술시장 분위기는 불황이라기보다는 호황을 위한 '통과의례'며 이 같은 상황은 조만간 회복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폈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청작화랑에서 원로 갤러리스트 손 회장을 만나 한국 미술시장의 전망과 미술품 투자에 대한 조언을 들어봤다.


◆서울 화랑가에는 작품이 안팔려 사실상 개점휴업상태이며 미술품 경매 낙찰률이 50%를 겨우 웃도는 등 침체 조짐이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현재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1792개 기업의 시가총액은 무려 2640조원이지만 국내 미술시장 규모는 겨우 5000억원 정도입니다. 지난해 경매시장 거래 총액 역시 1000억원을 겨우 웃돌았어요. 300여개 상업화랑의 올 매출은 1000억원 정도로 추산됩니다. 또 공공 미술시장 약 1000억원, 고미술 1000억원, 미술품 수입시장 1000억원 등을 합쳐봐야 국내 미술시장 규모는 5000억원 수준이죠. 다시 껌시장 규모로 전락한 셈이죠. 미술시장이 주식 부동산 등 투자자산 시장에 비해 워낙 '덩치'가 작다 보니 조금만 거래가 경색돼도 작품가격이 하락하면서 '침체' 현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긴 해요.

그렇다고 요즘 미술시장을 심각한 불황이라고 말할 수도 없어요. 지난 6일 폐막한 미술장터 ‘키아프’와 ‘프리즈’에는 수백억원의 '뭉칫돈'이 들어왔어거든요. 사실 올해 ‘키아프·프리즈’ 개막을 앞두곤 우려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영 ‘다른 장면’이 연출된 겁니다. 미술애호가 8만여 명이 몰려들아 꽁꽁 닫혀 있던 지갑이 하나둘씩 열린 거지요. 앞서 5월에 열린 국내 최대 3차 조형물 아트페어 ‘조형아트 서울’에도 4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어요. 이 같은 상황이라면 미술시장도 아직 잠재력이 숨어있다고 봐요. 언제든 조정에서 탈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최근 미술시장 침체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무엇보다도 시중에 유동성이 고갈됐기 때문이죠.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강화되면서 고수익을 찾아 떠돌던 돈이 미술 쪽으로 흘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 상류층의 우아한 취미쯤으로 여겨졌던 미술품이 주식, 부동산 등과 함께 투자 수단으로 인식됐던 게 지난 5년 동안 냉각된 셈입니다. 금융권에서도 투자자의 자산 포트폴리오 중 하나로 미술품을 포함시키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소극적입니다. 팬데믹 시기 ‘단타’를 노리고 시장에 들어왔던 투기성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도 미술시장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구요. 여기에다 미국을 비롯해 중국 중동 등 세계 미술시장의 침체도 국내 시장에 영향을 끼치고 있고요. 다만 주목할 만한 건 증시 활황세입니다. 언제까지 상승추세를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미술시장에선 그나마 한가닥 희망으로 보여요.


◆1988년, 2007년,  2020년 세 차례 미술시장이 호황을 누린 적이 있지요. 당시 '묻지마 투자'가  시장의 큰 부담으로 작용했고 결국 2020년 이후 '부메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미술 시장은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호황을 누리다 깊은 불황에 빠졌어요. 당시 미술시장의 '큰손'이었던 일본 경제의 '거품'이 붕괴되면서 시장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미술 시장의 엔진이 글로벌화돠면서 1990년대, 2000년대 중반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갑합니다.  MZ세대가 미술시장에 끼어들면서 잠재된 성장엔진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MZ세대는 국내 블루칩 작가인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작가들까지 아트테크 대상으로 삼고 있어요. 하비에르 카예하, A.R. 펭크, 유이치 히라코, 우고 론디노네, 필립 콜버트, 피터 핼리, 장 미셀 오토니, 야요이 구사마, 아야코 록카쿠등 해외 작가들도 정보를 습득하고 투자합니다. SNS,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양한 투자 관련 콘텐츠가 생산되고 있는 것도 배경이지요.

손성례 회장(왼쪽 세 번째-‘2025 조형아트서울’운영위원장)이 이희범 부영그룹 회장(왼쪽 네 번째-‘2025 조형아트서울’조직위원장)과 함께 지난해 6월 코엑스에서 열린 아트페어 ‘2025 조형아트서울’행사에 참여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청작화랑 제공


더구나 최근 세계 미술시장 역시 바닥을 찍는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비록 세계 경제 침체로 미술시장이 불안해지면서 현재 슈퍼리치들은 더 안정적인 것을 찾고 있지만 금리가 낮아지면서 글로벌 유동성이 향후 안전자산 쪽으로 움직이면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 세계적 작가 작품은 더 비싸질 겁니다. 한국을 비롯해 브라질 일본 쿠바 등 세계 각지의 저평가된 작가 작품에도 매기가 있을 거구요.

◆현재 미술시장의 호재와 악재는 무엇인가요.

경기불황과 부동산 대출 규제로 자금이 미술시장으로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하지만 소득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문화에 관심을 갖는 계층이 두터워지고 있는 건 다행입니다.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에는 그림 등 문화 상품에 대한 투자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어요.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들이 그런 전철을 밟았거든요.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5000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직장인 주부 등 '미술 컬렉터'들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그림과 조각에 대한 '식욕'이 왕성한 상황입니다. 다만 러시와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비롯해 인플레이션에 따른 경제 불안감. 미국과의 관세 협상 등은 악재라고 할 수 있겠죠. 


◆미술품 한 점을 여려 명이 나눠서 사는 ‘조각투자’가 요행이던데.
‘조각투자’가 시작된 지 3년여 만에 공동구매액이 1000억원에 육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서도 MZ세대를 중심으로 활발한 투자가 이뤄지면서 4개월 동안 310억원을 넘겼다. 소액으로 고가의 미술품을 소유할 수 있다는 조각투자의 장점 때문에 MZ세대 직장인들의 대체 투자처로 부각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옥션에 이어 케이옥션도 자회사 아르떼크립토를 통해 아트투게더를 운영하는 투게더아트 지분을 약 19% 확보하는 투자를 단행한 바 있지요.

◆미술 투자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사람이 많던데요.
미술품을 예술로만 바라보는 것은 구태의연한 생각입니다. 미술품은 잘만 사면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자산 증식에 도움을 주지만 잘못 투자하면 적지 않은 손실이 따르게 마련이지요. 전문적인 분야라 자칫 감정에 휩쓸리거나 눈앞의 이득만 좇다 보면 낭패를 당하기 십상입니다.

미술품은 즐길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적절한 투자수익도 올려야 한다는 점에서 좀 까다로운 투자 대상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미술 투자도 주식·부동산처럼 시장원리와 흐름을 잘 짚어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미술품을 고르는 원칙 같은 게 있습니까.

아날로그 시대에는 금과 부동산이 유망 투자 대상이었지만 디지털 시대엔 그림 조각 등 문화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어요. 미술품은 단기 투자 상품이라기보다는 장기 가치투자 상품입니다. 미술에도 미래의 현금흐름과 경제적 가치 등 이것저것 꼼꼼히 따지는 '워런버핏형' 가치투자만이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봅니다. 문화에 투자하는 국민이 있는 한 나라는 절대 망하지 않아요. 돈이 된다고 해서 미술품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산다는 의식이 더 중요합니다. 미술품의 경우 수익과 시간은 비례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귀로 보고 눈으로 산다’(많은 전문가의 조언을 참고하라는 뜻)는 특별한 원칙을 지키면서 컬렉션하는 것이 바람직해요.


◆우리나라 미술시장이 커지려면 기업이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가 미술계에서 나오던데요.
미술시장에서 기업은 일종의 기관투자가입니다. 기업들이 미술에 미치는 영향이 큰데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 일본 등 선진국과 달리 미술 투자에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미술품이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고 마케팅 투자나 자산관리 측면에서 얼마나 유용한지에 대한 인식이 덜 된 탓이지요. 기업이 현재 그림을 구입할 경우 회사 장식품 명목으로 최대 1000만원까지 손비를 인정해 줍니다. 미술품을 소장하는 것은 문화를 사는 것이니 손비 인정범위를 2000만~3000만원까지 확대해야 합니다.

미술계의 숙원이었던 '미술품 물납제'가 2023년부터 본격 시행된 것도 다행입니다. 상속세 납부세액이 상속재산의 금융재산가액보다 크고, 그 규모가 2000만원을 초과할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못을 받았지만 기업들의 미술 투자가 시작되면 한국 미술시장은 본격적으로 커지게 될 겁니다.


지난 6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조형아트 서울’ 전시장.   사진=청작화랑 제공

▲손성례 청작화랑 회장 겸 조형아트 서울 운영위원장은 누구?

손회장은 젊은 시절 서울 인사동에서 우연히 그림을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다.  그 느낌이 1987년 강남구 신사동에서 화랑을 시작하도록 이끌었다.  갤러리 현대, 국제갤러리, 가나아트갤러리 등 대형 화랑이 속속 광화문 주변에 문을 열어도 강남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고집은 300여 차례 전시회로 이어졌고, 대한민국 조각계의 대부 전뢰진을 비롯해 고인이 된 김흥수와 함섭, 이왈종, 이숙자, 김병종, 오용길, 전준엽, 김창희, 황주리 등 시장에서 주목받는 수백 명의 작가를 소개한 계기가 됐다. 남다른 안목과 예지력, 두둑한 배짱을 바탕으로 미술사업을 벌여 온 그는 2016년 ‘조형아트 서울’이란 타이틀로 국내 처음 3차원 조형물 아트페어를 시도했다. 국내외 화랑들이 대거 참여하며 매년 대히트를 치고 있다.  현재 손 회장은 아트페어‘조형아트 서울’에 대한 대부분의 업무를 둘째 아들 신준원 대표에게 일임한 생태다. 신 대표는 “내년에는 신개념의 아트마켓을 선보일 예정이며 , 미술 시장 활성화를 겨냥해 다양한 기획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프로필 이미지
종합콘텐츠부
김경갑 기자
kkk10@dnews.co.kr
▶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대한경제i' 앱을 다운받으시면
     - 종이신문을 스마트폰과 PC로보실 수 있습니다.
     - 명품 컨텐츠가 '내손안에' 대한경제i
법률라운지
사회
로딩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