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김동섭 기자]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들이 국회에서 줄줄이 발의되고 있지만, 보안과 안정성을 위한 법적 제도망 마련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앞두고 보안 취약점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보안 규정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는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 5개가 계류 중이다. 올들어 6월11일 민병덕 의원의 ‘디지털자산기본법’을 시작으로, 7월28일 안도걸 의원의 ‘가치안정형 디지털자산법’과 김은혜 의원의 ‘가치고정형 디지털자산법’, 8월21일 김현정 의원의 ‘가치안정형 디지털자산발행업법’, 9월4일 이강일 의원의 ‘디지털자산혁신법’이 발의됐다.
각 법안의 규제 접근 방식은 상이하다. 안도걸 의원안은 금융안정 중심의 엄격한 규제를, 김은혜 의원안은 지급혁신 중심의 유연한 접근을, 김현정 의원안은 이용자보호기금 적립을 통한 이용자 상환청구권 보장에 중점을 두고 있다.
서호진 금융보안원 부장은 “현재 발의된 법안들은 전자금융거래법상 보안규제를 그대로 준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스테이블코인 특화 보안대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의 ‘코인런(대량 환매)’ 발생 시 금융시스템 전반으로 리스크가 전이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달러스테이블코인인 USDC가 0.88달러까지 급락하며 12% 디페깅(고정 가치에서 이탈)이 발생한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황태영 삼정KPMG 상무는 “스테이블코인은 은행예금 및 단기자금시장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대규모 런 발생 시 금융시스템 전반으로 전이리스크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금융보안원은 스테이블코인 도입 시 고려해야 할 주요 보안 위험으로 블록체인 자체의 안전성 확보 문제를 비롯해 스마트계약(자동실행 프로그램) 개발 및 관리, 지갑과 개인키의 보안관리, 거래정보 등 신용정보 보호, 이상거래 모니터링 등을 제시했다.
공개형 블록체인에서는 공격자가 일부 참여 기관만 장악해도 코인을 무단 발행할 수 있고, 스마트 계약상 취약점이 발견될 시 담보자산 도난 위험도 있다.
또 개인키 유출 시 코인 무단 전송이 가능하며, 블록체인을 통해 거래정보가 공개돼 개인정보 가 유출될 우려도 상존한다.
이에 주요국들은 이미 강화된 보안 기준을 마련했다. 홍콩통화청(HKMA)은 지난달 토큰관리 정책 문서화, 연 1회 이상 스마트계약 취약점 검증, 2단계 인증 적용 등 구체적 보안기준을 제시했다. 미국은 사이버범죄 시 100만달러 이하 벌금 또는 5년 이하 징역형을 부과하고, EU(유럽연합)는 MiCA법(가상자산시장법)을 통해 기존 금융서비스 보안규제 준수를 의무화했다.
반면 국내는 ISMS(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 해킹 손해배상보험 가입, 연 1회 취약점 분석평가 등 기존 이용자 보호 규제에 머물러 있다.
이효진 고려대학교 교수는 “이용자 보호책과 함께 초기부터 상호 운용성과 관련 표준등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이 사전에 마련되어야 한다”며 “법 마련 전 파일럿 프로젝트와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노하우 축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루나·테라 사태로 가상자산 신뢰가 훼손된 상황에서 철저한 보안 조치가 필수”라며 “홍콩·미국·EU 등 주요국의 보안 기준을 참고해 한국형 스테이블코인 보안 기준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섭 기자 subt7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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