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세의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첫 부인 올가와 결혼생활을 하던 1927년 파리에서 젊고 아리따운 17세의 마리 테레즈 발테르를 만난다. 모델 제의로 시작된 만남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두 사람의 관계는 1932년 피카소의 대규모 회고전에서 테레즈의 초상화가 처음 공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발테르가 모델을 섰던 1932년작 ‘꿈’은 그의 작품 중 가장 관능적이고 화려하다는 서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피카소는 1936년 사진작가 도라 마르를 만나면서 마리 테레즈와 다소 소원해 졌고, 1943년 또 다른 여인 프랑수아즈 질로와 가까워지면서 완전히 갈라섰다. 피카소는 작품 소재로 발테르를 많이 활용했지만 도라 마르 초상화 역시 60여 점을 남길 만큼 그의 미학 세계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피카소가 다섯 번째 연인 도라 마르를 그린 초상화를 비롯해 중국 계 프랑스 추상화가 자오 우키의 그림, 데이비드 호크니와 클로드 모네의 걸작, 일본 작가 구사마 야요이의 희귀 작품 등 글로벌 화단 수퍼스타들의 그림이 홍콩 경매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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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여인의 흉상’ 사진=크리스티 제공( CHRISTIE’S IMAGES LTD. 2025) |
크리스티 홍콩이 오는 26∼27일 이틀간 홍콩 더 헨더슨 빌딩에서 여는 20 세기 및 21 세기 미술 이브닝·데이 세일 경매를 통해서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이번 행사에는 글로벌 거장들의 작품 182점이 출품되며, 추정가 총액만도 최대 1400억원을 웃돈다.
크리스티 홍콩은 아시아 큰손 컬렉터를 흥분시킬 만한 인상파 그림은 물론 추상화, 조각까지 작품 영역을 넓히며 판촉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유명세를 타고 있는 스타 작가 작품에 대한 아시아 지역 미술애호가들의 ‘식욕’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판단에서다.
이학준 크리스티코리아 대표는 “미국이 최근 기준금리를 0.25%P 내려 유동성이 풍부해진 만큼 글로벌 미술품 시장이 점차 회복세를 타면서 아시아 시장에도 봄바람이 불어닥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미래 투자 가치가 있는 그림을 골라 응찰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크리스티 홍콩은 첫 날(26일)이브닝세일에 피카소의 ‘여인의 흉상’을 전략 상품으로 내세웠다. 세로 80.8cm, 가로 60cm 크기의 이 작품은 추정가 154억~190억원으로 81년만에 시장에 처음 공개된 수작이다. 피카소가 연인 도라 마르를 떠올리며 열정적 사랑에 상상력을 더해 완성했다.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마르의 모습을 녹색과 푸른색, 빨간색, 노란색 등으로 채색해 꿈과 현실이라는 두 세계를 은유적으로 묘사했다. 1943년에 그린 이 작품은 이듬해 8월 현재 소장가의 조부인 프랑스컬렉터가 구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이 판매되기 전 1년간 피카소의 스튜디오에서 몇 차례 전시됐으나 팔린 이후 81년간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 그가 다양한 걸작의 탄생을 예고한 작품이어서 국제 미술계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아시아 미술품 경매 최고 기록을 달성할 것이란 기대감이 솔솔 나오고 있다. 또 피카소가 마지막 연인 재클린을 고전적 나체로 묘사한 ’쿠션에 기댄 여인 누드'도 함께 출품돼 눈길을 끈다.
중국계 프랑스화가 자오 우키의 1963년 작 추상화 ‘17.3.63’ 도 추정가 125억~161억원에 입찰대에 오른다. 정물과 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추상화 스타일의 수작이다. 어두운 심연, 해저, 초현실적인 동굴과 하늘을 고요하면서도 격정적으로 표현해 완전한 신체적 자유와 무중력의 느낌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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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의 ‘대화가 있는 테이블' 사진=크리스티 제공( CHRISTIE’S IMAGES LTD. 2025) |
영국의 스타작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도 새 주인을 찾는다. ‘대화가 있는 테이블’ (Table with Conversation)이란 제목이 붙은 이 작품은 파리 루이비통 재단 회고전 이후 공개됐다. 실내 분위기에 추상적 파노라마 풍경을 결합해 다중 시점을 제시한 게 특징이다. 꿈틀거리는 색채감과 묘한 마티에르 때문인지 생동감이 화면 전체에 퍼져나간다.
프랑스 인상파 거장 클로드 모네의 작품 ‘지베르니의 봄, 오후의 효과’ 도 경매된다. 모네가 지베르니 자택 분위기를 모티브로 작업한데다 무수한 회화적 잠재성을 탐구한 작품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경과 공기, 빛 사이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탐색한 게 이채롭다. 추정가는 60억~100억원이다.
다음날(27일) 진행하는 데이 세일에도 컬렉터들의 눈을 압도할 다양한 작품을 경매에 부쳐진다. 데이 경매는 20세기와 21세기를 정의한 다양한 미술 운동을 아우른다는 점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번 세일 행사에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연작 ‘베리 뉴 페인팅스’ 시리즈 가운데 한 점이 출품되며, 아시아 현대미술의 선구자 시라가 카즈오와 자오 우키 추상화, 주데춘의 서정적인 작품들이 입찰대에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새 주인을 찾는다. 또 영국 낭만주의 대가 터너의 풍경화도 아시아에서 최초로 출품돼 주목된다. 올해 탄생 250주년을 맞은 윌리엄 밀로드 터너는 자오 우키와 주데춘에게 영감을 주었던 인물이자 글로벌 미술계의 슈퍼스타로 잘 알려져 있다. 일본현대미술의 수퍼스타 구사마 야요이의 회화와 조각와 조지 콘도의 매혹적인 회화 등도 경매에 라인업했다.
차지은 크리스티코리아 실장은 “출품작들은 폭넓은 예술적 스펙트럼을 보여주면서도 최고의 퀄리티에 기반하여 오늘날의 거장과 선구적 예술가들의 작품에 대한 수요에 부응한다”며 “또한 이번 경매는 수십 년간 경매에 나오지 않았거나 처음 시장에 선보이는 작품이 포함되어 있어 희소한 소장 기회로서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설명했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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