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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짜리 이중화”가 부른 대참사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정부24 등 674개 업무시스템 셧다운
전문가들 “카카오 사태 정부 버전…국가안보 치명적”
[대한경제=심화영 기자] #지난 27일 오전 서울의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 사무소. 공인중개사는 “오늘 매매계약을 진행해야 하는데 ‘대법원 인터넷등기소’ 사이트가 먹통이라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출력할 수 없다. 등기부등본은 미리 떼지 않는다”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여파로 인터넷 우체국을 통한 서비스도 중단돼 우편ㆍ예금ㆍ보험 등 우본 관련 서비스 전반이 마비됐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물류까지 차질이 빚어졌다.
지난 26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전산실에서 발생한 화재로 정부24, 홈텍스, 국민신문고 등 일상 행정서비스를 포함한 정부 업무 시스템 647개가 전면 중단됐다. 국정자원은 이미 대전 본원과 광주센터, 공주 DR(재해복구)센터 등 3개 거점을 운영하며 재난 대비 체계를 갖춰왔다. 그러나 이번 화재는 이 체계가 ‘완성형’이 아니었음을 드러났다.
IT업계는이번 화재의 핵심 문제로 ‘백업은 존재하지만 운영 이중화가 미흡했다’는 점을 꼽는다. 서버 데이터 백업(서버 DR)은 일부 갖춰져 있었지만, 화재ㆍ전력ㆍ공조 등 운영 환경이 무너졌을 때, 다른 센터가 자동으로 서비스를 이어받는 클라우드 기반 운영 이중화(클라우드 DR)와 자동 페일오버 체계는 완성되지 않았다. 서버 데이터 자체는 다른 곳에 백업돼 있었지만, 운영 환경의 이중화 부족으로 인해 백업 데이터 활용이 지연됐다.
국정자원은 2015년 대전 본원 개원 이후 국가 주요 정보시스템을 통합 관리해왔다. 2017년 광주센터를 신설하며 일부 시스템의 상호 백업과 분산처리를 시작했지만, 핵심 시스템 일부만 실시간 백업이 가능했다. 2020년대 들어서는 공주 DR센터를 ‘재해복구 전용’으로 추진했으나, 클라우드 DR 도입과 운영이 지연되면서 대규모 장애 시 즉시 대체ㆍ복구가 불가능했다.
이번 사고는 과거 카카오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와 유사하다. 2022년 10월 카카오톡, 카카오맵, 카카오T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서비스가 하루 이상 중단됐다. 당시에도 데이터 백업은 존재했지만 자동 이중화가 미흡해 서비스 복구가 지연됐고, ‘디지털 사회의 국가기간망’이라는 사회적 경고를 남겼다. 카카오는 이후 세종ㆍ안산 등지에 제2ㆍ제3 데이터센터를 확보하고 클라우드 기반 이중화ㆍ삼중화를 강화했지만, 사고 직후 국민 불만은 컸다.
전문가들은 정부 전산망의 구조적 취약점을 네 가지로 지적하고 있다. 첫째, 재해복구(DR) 체계가 ‘절반짜리 이중화’에 그쳤단 점이다. 대전 본원과 광주센터 사이 핵심 시스템 일부만 실시간 백업이 가능했을 뿐, 전체 전산망이 클라우드 기반으로 자동 전환되는 체계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대규모 장애 발생 시 본원에서 처리하던 업무를 다른 센터가 자동으로 인계받는 구조가 미비했다.
둘째, 운영 환경 관리의 취약성이다. 배터리 발화로 시작된 화재는 항온ㆍ항습ㆍ전력 등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수적인 인프라를 흔들었고, 이로 인해 운영환경 자체가 붕괴됐다. 결과적으로 백업 데이터의 활용이 지연되며 시스템 재가동 속도가 크게 늦어졌다.
셋째, 물리적 노후와 단일 장애 지점(SPOF) 문제다. 일부 센터는 건축 연원이 20년 이상으로 노후화됐고, 예산과 계획 지연으로 이전ㆍ개선이 미뤄지면서 리스크가 확대됐다. 넷째, 자동 전환(페일오버) 훈련과 실전 점검 부족이다. 클라우드 DR과 페일오버가 실제로 얼마나 신속하게 작동하는지 정기적인 점검과 훈련이 충분하지 않았다.
실제 피해 규모는 상당하다. 지난 26일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로 정부 업무시스템 647개가 가동을 멈췄다. 불은 27일 저녁 6시 완전히 진화됐으며, 항온ㆍ항습기와 네트워크 장비 복구가 진행 중이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항온ㆍ항습기 복구를 오늘까지 완료하고, 내일 네트워크 장비 복구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성공 시 647개 중 직접 피해를 입지 않은 551개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재가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직접 피해를 입은 96개 시스템은 대구센터 민관협력형 클라우드로 이전해 재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데이터 백업 여부와 재가동 시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행안부 관계자는 “대전과 광주센터 간 일부 DR 체계가 구축돼 있으나 최소 규모에 불과해, 시스템별로 가동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물리적 DR센터만으론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IT 인프라 전문가는 “중앙과 지방 전산망 전체를 자동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시스템 없이는 비상시 공백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심화영 기자 doro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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