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부모들 몰리며 인기
개관 5개월 만에 25만명 발길
“자치구 운영 최대 규모”
첫날 방문객 9000명 기록
공연ㆍ강연 매진 행렬
강동숲속도서관 2층 최재천의 서재 |
[대한경제=박호수 기자] 지난 25일 서울 강동구 상일동역 인근 대규모 재건축 단지 초입. 평일 오후임에도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엄마들과 아이들이 삼삼오오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은 단순한 독서 공간을 넘어, 신도시 단지의 ‘코엑스 별마당도서관’ 같은 상징이 되고 있었다. 집 앞에 자리한 도서관 하나로 지역의 문화적 격이 달라진다는 말을 실감케 했다.
강동구는 최근 3040세대 중심의 인구 유입이 급격히 늘고 있다. 대규모 재건축과 고덕비즈밸리 같은 업무단지가 잇따라 들어서면서, 젊은 가족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생활 인프라와 문화시설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올해 문을 연 강동숲속도서관(5월 개관)과 강동중앙도서관(8월 개관)은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개관 이후 이용 추세는 가파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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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특화 콘셉트로 운영하는 강동숲속도서관. / 사진 : 박호수 기자 |
강동숲속도서관은 지난 4월 25일 시범 운영을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누적 방문객 25만8719명을 기록했고, 강동중앙도서관도 8월 16일 시범 운영 이후 누적 1만3068명이 다녀갔다.
강동숲속도서관은 첫 발걸음부터 이색적이다. 유리 통창 너머로 확 트인 숲이 눈에 들어오고, 아이들은 6m 높이의 ‘최재천의 서재’ 앞에서 책장을 넘긴다. 세계적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가 직접 기증한 1200권의 도서가 이곳을 채웠다. “알면 사랑한다”는 생태학자의 철학이 공간에 녹아든 듯했다.
도서관은 과학 특화 콘셉트다. 아이들은 태양계 행성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고, 옆 공간에선 로봇 블록 ‘큐블렛’을 조립하며 코딩 원리를 배운다. 인공지능 안내로봇 ‘클로이’가 층마다 이용객을 맞이하고, AR 색칠놀이와 아이스크림 로봇 체험존은 아이들에게 과학을 ‘놀며 배우는’ 경험으로 바꿔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청소년만을 위한 별도 자료실이다. 공공도서관에서 보기 드문 이 공간은 12~19세 학생들에게 ‘자기만의 독서방’을 선사한다. 디지털 창작실과 맞춤형 콘텐츠가 마련돼 있어, 공부방과 놀이방의 경계를 허문 청소년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이미 ‘숲세권 도서관’, ‘핫플 도서관’으로 입소문이 났다. 숲 전망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에서 LP를 틀어놓고 책을 읽는 풍경은, 그 자체로 강동의 새로운 일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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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중앙도서관 2층 ‘소리곳’ 음악 감상 체험실. / 사진 : 강동구 제공 |
둔촌동 대규모 재건축 단지 한복판에 들어선 강동중앙도서관은 규모부터 압도적이다. 연면적 1만2056㎡, 개관 장서 12만권. 서울시 교육청이 운영하는 정독도서관 다음으로 크고, 자치구 운영 도서관 가운데서는 최대다. 개관 첫날, 방문객이 9004명, 대출 권수가 9434권에 달했다.
공간도 파격적이다. 1층 어린이자료실에는 100여 종의 재료와 도구를 갖춘 ‘어린이작업실 모야’가 있어 아이들이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펼친다. 2층에는 LPㆍCD를 500여 종 보관한 음악 감상실 ‘소리곳’과 36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는 대형 독서테이블 ‘카르페디엠’이 자리한다.
‘책상에 앉아 집중한다’는 도서관의 원초적 기능을 극대화한 공간이다. 3층 필사공간 ‘생각곳’에서는 젊은 세대들이 연필을 쥐고 고전을 베껴 쓰며 묵상의 시간을 보낸다. 여기에 해외 기관과의 협력도 눈길을 끈다. 미국 앤아버공공도서관이 신간 150권을 기증했고, 도서문화재단 씨앗, 저스피스 재단과 협약을 맺어 예술·치유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한다. 작은 지역 도서관을 넘어 국제 교류의 창구 역할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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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디엠(Carpediem)’ 공간을 소개하고 있는 이수희 강동구청장. / 사진 : 강동구 제공 |
이곳 중앙도서관에선 주말이면 아트센터를 방불케 하는 공연과 강연이 열린다. 개관 기념 첫 강연자로 소설가 김영하가 무대에 섰고, 디토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매진 행렬을 기록했다. 명사들의 강연은 접수 시작과 동시에 마감될 정도다. 주민들이 얼마나 인문ㆍ예술 콘텐츠에 목말라 있었는지 확인되는 대목이다.
도서관 한쪽 카페에서는 부모들이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아이들은 자유롭게 책장을 오간다. 지하에는 ‘바람곳’이라 불리는 야외 정원이 있어 영화 상영이나 작은 음악회도 가능하다. ‘도서관=정숙’이라는 공식을 깬, 복합문화공간의 전형이다.
이수희 강동구청장은 “강동숲속도서관과 강동중앙도서관은 숲과 과학, 책과 문화가 어우러진 새로운 독서문화 플랫폼”이라며 “앞으로 단순한 도서관이 아닌 지역 인문‧예술ㆍ문화 수준을 한층 높이는 강동구의 대표적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박호수 기자 lake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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