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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하루쉼표, 샤로수길”… 600m 골목에 청년이 모여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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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9-30 07:38:03   폰트크기 변경      
서울 로컬브랜드 상권의 실험

서울대 정문 조형물에 빗대어 ‘작명’

홍대ㆍ신림 ㆍ잠실 잇는 4위 역세권 

800m 거리에 458개 점포 줄지어 

夜場 테이블ㆍ포토존ㆍ버스킹 공연 

‘하루쉼표’ 키워드…젊은이 넘실 

다양한 이벤트 결합 ‘골목재탄생’


서울시가 ‘로컬브랜드 육성 사업’ 대상지로 선정한 관악구 ‘샤로수길’ 입구. / 사진 : 안윤수 기자  


[대한경제=박호수 기자] 오후 6시 퇴근 시간, 서울대입구역 2번 출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관악로14길로 빨려들어 간다. “치-익” 불판 소리, 상점 문을 여닫는 금속음, 휴대폰 플래시와 사진 셔터가 뒤엉킨다. 길은 600m 남짓. 프랑스 가정식, 태국식 누들, 쿠바 샌드위치, 일본식 돈가스를 파는 작은 가게들이 옆구리 맞대고 선다. 한때 과일 좌판과 참기름집이 늘어서던 이 골목은 이제 서울 청년문화의 거대한 실험장이다. 이름도 힙(hip)하다. “가로수길이 있다면 서울대엔 ‘샤’(정문 조형물)가 있으니 ‘샤로수길’이 어떠냐”는 농담에서 태어나, 2014년 관악구가 정식 명칭을 붙였다.

서울 관악구 낙성대동은 청년 1인 가구의 밀도가 서울에서도 손꼽힌다. 청년가구 비율 55.7%, 1인 가구 비율은 무려 77.6%에 달한다. 밤이면 배달 기사와 버스킹 스피커 사이로 학생·직장인이 스친다. 상권 면적은 9만9560㎡, 점포 458개. 한 달 기준 오후 7시대 승하차 인원만 12만명대다. 홍대입구‧신림‧잠실 뒤를 잇는 ‘4위권 역세권’인 이 골목은 외식이 주력이지만 최근에는 체험형·문화형 점포가 빠르게 늘며 골목의 ‘결’이 달라졌다.



샤로수길을 걷고 있는 시민들. / 사진 : 안윤수 기자 


서울시는 이 변화를 ‘브랜드’로 묶었다. ‘로컬브랜드 상권 육성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샤로수길은 지난해부터 3년간 최대 30억원을 투입받는 이 사업의 3기 대상지로 뽑혔다.

지난 6월, 초여름에 열린 ‘청춘오락실’은 38개 점포가 야외 테이블을 내고, 공원엔 포토존과 게임 부스를 세웠다. 매출은 전주보다 25.3% 늘고, 방문객 만족도는 95%였다. 그날만큼은 샤로수길 전체가 한 바탕 오락실이었다.

방문 이유는 단순했다. “놀 거리가 많아서.” 38개 점포가 참여한 야장(夜場) 테이블, 낙성대공원 정원 포토존, 랜덤미션마블·콘홀 같은 게임, ‘원룸만들기’와 협업한 체험 부스 등은 상권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축제 구간도 상권 전체 600m로 넓혀 ‘한쪽만 붐비는’ 병목을 풀었다

샤로수길의 키워드는 ‘하루쉼표(Chill Vibes)’다. 잘 먹는 골목을 넘어 잘 노는 골목, 나아가 ‘잘 쉬는 골목’으로 확장하는 그림이다. 서울시는 팝업포토존·거리문화 공연·버스킹을 시즌제로 굴리고, 민간 로컬공연장 3곳을 앵커스토어로 엮어 월 1회 공연을 연다. 연말엔 일주일짜리 특별주간도 예고돼 있다. 테이블 몇 개 늘어놓는 데 그치지 않고, 골목의 낮과 밤, 주중과 주말의 ‘리듬’을 재배치하는 시나리오다.



지난 6월 진행된 2025년 샤로수길 로컬이벤트 ‘청춘오락실’. / 사진 : 관악구 제공 


이 변화는 숫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골목엔 아직도 ‘신구(新舊)’가 섞여 있다. 수제버거집 옆 칼국수집, 타코집 옆 전통 디저트. 임대료는 오르지만, 손님 구성상 쉽게 가격을 못 올리는 노포의 사정은 여전하다. 그래서 정책의 관건은 ‘속도 조절’이다. 상징적인 포인트 몇 곳만 번쩍이게 만들면 골목은 쉽게 피로해진다.


서울시는 하드웨어(경관·보행) 정비로 체류를 돕고, 소프트웨어(상인회·쿠폰)로 회전을 높이며, 휴먼웨어(창업가 양성)로 내용물을 채우겠다고 설명했다. 3년 단위의 체계를 상권협의체로 이어 ‘지원 → 자생’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설계의 마지막 페이지다.

“서울의 골목경제는 더 버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오래됐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이른바 ‘3고’의 방 안에서 골목은 쉽게 지친다. 샤로수길의 방식은 그래서 눈길을 끈다. 이벤트는 흥행했고, 타 지역 손님들을 골목 밖에서도 끌어왔다. 그 사이 상인들은 서로를 ‘이웃’으로 다시 불렀다. 행정이 돈을 ‘쏟아붓는’ 대신, 골목의 재생산 구조를 ‘만들어주는’ 쪽으로 방향을 틀은 결과다. 그리고 이 기술은 다른 골목으로도 복제될 수 있다.



상권마다 고유 콘셉트 부여…‘머물고 싶은 골목’ 탈바꿈


2022년부터 육성사업 시작해 확장세

수유 사일구로ㆍ마포 하늘길 등 ‘새숨’

자원→재생으로 미래지향적 설계 


서울 노원구 공릉동 철길 카페거리인 공트럴파크. / 사진 : 노원구 제공 


샤로수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시가 2022년부터 시작한 ‘로컬브랜드 상권’ 사업은 도시의 서로 다른 얼굴을 골목 단위로 꿰매는 작업이다. 방식은 단순해 보이지만 손이 많이 간다. 상권마다 고유한 콘셉트를 붙이고, 보행·경관을 정비하고, 상인조직을 세우고, 창업가를 길러 넣는다. 핵심은 ‘머물게 하는 이유’를 찾아내 상권의 리듬으로 번역하는 일이다.

대표적으로 강북구 수유동 ‘사일구로’는 카페 거리 끝에서 바로 북한산 숲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카페 창가에선 능선이 펼쳐지고, 빵집 단팥빵은 예약 없인 맛보기 어렵다. 걸음을 옮기면 4·19 민주묘지가 나오고, 산책로는 계절마다 다른 풍경으로 물든다. 방문객들은 “집 근처에서 여행 온 기분”이라 말한다.

서울시는 지난 몇 년간 이런 골목의 개성을 살려 ‘로컬브랜드 상권’으로 묶었다. 장충단길은 ‘히스토리컬 시티’, 마포 하늘길은 ‘크리에이터 타운’, 노원 경춘선 숲길은 ‘청춘 테라스’, 용산 용마루길은 ‘아지트’…. 단순 간판이 아니라 운영 방향을 가리키는 ‘캐치프레이즈’다.

성과는 숫자에도 찍혔다. 양재·합정·장충·선유·오류 상권은 2023년 1분기 월평균 매출이 전년보다 평균 10%에서 많게는 4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서울 평균 증가율(14.1%)을 훌쩍 웃돌았다. 전문가들은 “체험 콘텐츠를 늘려 소비자가 오래 머물게 한 효과”라고 분석한다.

올해 새로 합류한 4기 상권은 △사일구로(강북) △회기랑길(동대문) △상봉먹자골목(중랑) △성북동길(성북)이다. 2년간 최대 10억원이 투입돼 브랜딩과 마케팅이 지원된다. 각각 민주주의, 대학가, 먹자골목, 역사문화라는 키워드를 품었다.

결국, ‘머물고 싶은 골목’이 촘촘한 도시가 좋은 도시다. 서울의 로컬브랜드 실험은 그 해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박호수 기자 lake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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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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