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박흥순 기자]건설업계가 전 산업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산재보험료를 부담하면서 비용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안전 투자와 책임이 대폭 강화됐지만, 정작 금융 부담은 줄지 않아 ‘안전 강화’와 ‘비용 증가’라는 이중고가 심화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사고 예방 노력에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0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4 회계연도 기업체노동비용조사’에 따르면 건설업의 상용근로자 1인당 월평균 노동비용은 639만3000원으로, 전년(613만5000원) 대비 4.2% 증가했다. 이 가운데 간접노동비용(퇴직급여, 4대 보험료, 복지비용 등)은 138만8000원으로 1년 만에 11.8% 급증해, 전체 산업 평균(3.1%)을 훨씬 웃돌았다. 반면 직접노동비용(정액급여·초과급여, 상여금 및 성과급 등)은 2.3% 오르는 데 그쳐, 증가율 격차가 5배 이상 벌어졌다.
특히 건설업의 산재보험료 부담은 압도적이다. 1인당 월평균 산재보험료는 18만3000원으로 전체 산업 평균(5만2000원)의 3.5배를 기록, 1위를 차지했다. 이는 건설업이 다른 산업에 비해 추락, 낙하물, 협착 등 중대사고 위험이 높고,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산재 발생 빈도 역시 높기 때문이다.
산재보험료율은 업종별 위험 수준과 사고 이력에 따라 차등 부과되는데, 고위험 업종인 건설업은 구조적으로 보험료율이 높게 설정돼 있다. 여기에 사고 발생 시 보험료율이 추가로 할증되는 제도 특성까지 겹치면서, 대형 사고가 잦은 건설업의 부담이 다른 산업보다 빠르게 커지는 구조다.
퇴직급여 등 비용도 기업의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건설업의 1인당 월평균 퇴직급여 비용은 55만3000원으로 전년 대비 25.6% 급증했다. 이는 전체 산업 평균 증가율(1.7%)의 15배 수준이다. 노동력 이탈과 고령화, 공사 중단 등 변동성이 큰 업종 특성상 퇴직급여가 일시적으로 집중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이런 간접 비용의 급증은 기업의 보상 정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정액급여와 초과급여는 3.6% 증가했지만, 상여금 및 성과급은 오히려 12.9% 감소했다. 결국 늘어나는 법정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성과급 재원이 줄어드는 ‘비용 전가’ 현상이 나타난 셈이다.
전문가들은 산재보험료율 책정 방식이 사전 예방보다는 사후 처벌에 치우쳐 있다고 지적한다. 안전 시스템 고도화나 스마트 안전장비 도입 같은 선제적 투자에는 실질적인 보험료 인하 혜택이 거의 없고, 사고 발생 후 보험료가 대폭 할증되는 구조여서 기업 입장에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느껴질 수 있다. 건설현장의 고위험·고비용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기준도 문제로 꼽힌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매년 안전 예산을 늘리고 있지만 산재보험료는 줄어들 기미가 없다”며 “안전관리 비용이 투자로 인식되지 않고 매몰비용으로 남는 순간, 현장의 안전 수준은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계는 예방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인센티브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안전관리 수준이 우수한 기업이나 스마트 안전기술을 적극 도입한 기업에 대해 산재보험료율을 파격적으로 할인해주는 방식이다. 위험성 평가 우수 사업장에 대한 보험료 감면, 신기술 도입 시 할증 유예기간 부여 같은 방안이 대표적이다.
건설업계의 산재보험료 부담 문제는 산업 안전 정책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사고 이후의 처벌과 부담 전가 중심에서 벗어나, 예방 중심의 보상·유인 체계로 전환되지 않는 한 건설업계의 ‘안전 강화–비용 증가’ 악순환은 쉽게 끊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 중견건설사 안전관리자는 “지금 시스템은 사고가 난 뒤 책임을 묻는 백미러와 같다”며 “업계가 필요한 것은 위험을 미리 알려주고 예방투자를 이끌어내는 내비게이션 같은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방 노력에 실질적인 보상이 있어야 기업들도 자발적으로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흥순 기자 so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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