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김호윤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약품 100% 관세 예고로 글로벌 제약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특히 협상이 타결되지 않은 한국은 높은 관세율을 적용받게 돼 업계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발 빠른 대응에 나선 상태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통해 “10월 1일부터 미국 내 제약 생산 시설을 건설 중인 기업을 제외하고 모든 브랜드 의약품과 특허 의약품에 대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건설 중이라는 말은 착공 또는 건설을 진행 중이라는 의미”라며 “이미 건설이 시작된 경우 의약품에 관세가 부과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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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투자이민 프로그램 ‘트럼프 골드 카드’를 발표하는 가운데 주무 부처인 상무부의 하워드 러트닉(왼쪽) 장관이 지켜보고 있다./사진:EPA=연합뉴스 |
이번 발표는 지난 7월 대통령실이 의약품의 품목별 관세에 ‘최혜국 대우’를 받기로 했다고 밝힌 직후 나와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유예기간 없이 즉각 100% 관세를 부과한다는 점도 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제약사의 대미 수출액은 14억9000만달러(한화 약 2조1000억원)로 전체 대미 수출액(1316억달러)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이제 막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한 국내 제약업계로서는 관세 부과가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관세 회피를 위해 대규모 미국 투자를 약속하고 있다. 백악관에 따르면 존슨앤드존슨은 550억달러, 스위스 로슈는 500억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선제 대응에 나선 상태다.
국내 제약사들은 트럼프 관세 정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어 당장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셀트리온은 가장 체계적인 대응책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셀트리온은 단기적으로 2년분의 재고 보유를 완료했고 중기 전략으로는 미국 판매 제품을 미국 현지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현지 CMO(위탁생산) 파트너와 계약을 완료했다.
장기 전략으로는 지난 23일 일라이릴리의 미국 뉴저지주 브랜치버그 소재 생산 공장을 약 46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인수 대금과 별도로 운영 자금 2400억원, 증설 비용 7000억원까지 포함하면 총 투자금은 약 1조4000억원에 이른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트럼프 행정부 이후에도 관세 리스크는 계속될 것이고, 지금은 리스크지만 앞으로는 조건이 될 수 있다”며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공장 절반은 릴리 제품을 생산하는 CMO 계약에 활용하고, 나머지 절반은 셀트리온 자가 제품 생산에 배정할 계획이다.
SK바이오팜은 이미 미국 내 FDA 승인을 받은 생산 파트너를 확보하고 있어 관세가 확정될 경우 미국 생산으로 전환이 가능하다. 특히 푸에르토리코 등 미국령 내 제조시설 승인 신청을 완료했으며 현지 실사까지 마친 상태다. 미국령인 푸에르토리코에서 제품을 생산한 뒤 미국에서 판매할 경우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현재 대부분의 의약품이 한미 FTA에 따라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되고 있어 당장 관세 부담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CDMO 서비스가 주로 항체 중심으로 이뤄져 정책에 대한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고객사가 관세 부담을 나누자고 요구할 수는 있으나 지금 당장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란 평가다. 다만 장기적으로 미국 내 생산시설 인수 또는 신규 공장 설립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바이오로직스 경우에는 이미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에 생산 시설을 보유하고 있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GC녹십자 경우에는 미국산 원료 사용으로 관세 영향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GC녹십자는 혈액제제 ‘알리글로’를 미국에 수출 중인데 이는 100% 미국산 혈장으로 만들어졌다.
미국 행정부가 발표한 상호 관세 규제 행정명령에 따르면 완제품 구성물 중 미국산 원료 비중이 20% 이상일 경우 비미국산 원료에 대해서만 관세를 부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필수의약품 제외 등으로 영향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보툴리눔 톡신 기업 휴젤도 시장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관세가 부과되더라도 미국 보톡스 유통사 대부분이 완제품을 수입하기 때문에 미국 시장에서 모두 동일한 조건에 놓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업계의 선제 대응에 정부도 발맞춰 대미 의약품 수출에 영향이 크지 않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보건복지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9일 긴급 간담회를 열고 미국 관세 부과 동향에 따른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모색했다. 간담회에는 SK바이오팜, 삼성바이오로직스, 롯데바이오로직스, 대웅제약, 셀트리온 등 의약품 수출 기업 5곳이 참여했다.
정부는 관세 피해기업들의 경영 안정화를 위해 13조6000억원의 긴급 경영자금 지원, 270조원 무역보험 공급, 물류비 지원 확대 등 대체시장 개척을 지원하고 있다.
정은영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대외적인 위기 속에서도 의약품 수출 호조세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민관이 협력해 관세 대응에 역량을 결집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번 미국 의약품 관세와 관련해서 당장의 영향은 미비할 수도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응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업계 관계자는 “정책 변화에 따라 미국 현지 생산 필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미국 제약업계에서도 의약품 관세 면제를 요청하고 있어 당장 미칠 영향은 미비할 것”이라면서도 “생산비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시나리오를 검토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단기적으로는 비용 부담이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 시장 내 생산·유통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김호윤 기자 khy2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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