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박흥순 기자]정부가 건설현장에서 늘어나는 외국인 노동자 사고를 줄이기 위해 ‘4중 안전망’ 구축에 나섰다. 외국인 강사 양성, 온라인 교육, VR(가상현실) 안전체험시설, 다국어 안전표지 제작·배포 등 구체적 방안을 잇따라 내놓으며 산업재해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책의 방향은 긍정적이지만, 각각의 대책이 현장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의 사망사고 예방을 위해 10개 국어로 제작된 안전표지를 배포한다고 1일 밝혔다. 이와 별도로 노동부는 외국인 노동자가 낙하·충돌 등 위험요인을 VR로 체험할 수 있도록 전국 9개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서 안전체험시설 운영도 본격화한다.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의 사고 예방에 집중하는 이유는 건설현장의 구조적 취약성 때문이다. 건설업은 떨어짐, 깔림, 부딪힘 등 중대재해 위험이 높고, 고층·협소 공간에서 작업이 이뤄져 기본적인 안전수칙만 지켜지지 않아도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외국인 노동자가 빠르게 증가했지만 언어·문화적 차이를 고려한 안전관리 체계는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그 결과 외국인 노동자의 재해율과 사망자 수는 내국인보다 여전히 높다.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매년 건설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 3000여명이 다치고 약 40명이 목숨을 잃는다. 올 상반기에도 건설현장에서 유명을 달리한 외국인 노동자는 28명에 달한다. 특히 언어소통이 어려운 신규 인력이 급증하면서 사고 위험이 더욱 커지고 있다. 추락·낙하 사고 상당수는 기초 안전교육 미이수와 보호구 미착용 등 기본 수칙 미준수에서 비롯된다. 한국어로만 지시하거나 복잡한 계획서를 전달해 외국인 노동자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작업에 투입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책을 다각도로 확충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외국인 노동자 스스로 동료에게 안전수칙을 전달할 수 있도록 ‘외국인 강사 양성 제도’를 건설업에 도입했다. 한국어가 능숙한 외국인 근로자를 선발해 산업안전보건법과 재해사례, 강의법 등을 교육한 뒤 자국어로 안전교육을 진행하게 하는 방식이다. 언어 장벽을 현장 내부에서 해소하겠다는 의도다.
온라인 교육도 확대했다. 지난달 말부터 영어·중국어·베트남어 등 3개 언어로 온라인 안전보건교육이 시행됐고, 연말까지 17개 언어로 늘어난다. PC와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만큼 시간과 장소 제약을 줄였으며, △기본 안전수칙 △보호구 착용법 △근로자의 권리 등 필수 내용을 담아 이해도를 높였다.
이날부터 시행되는 VR 안전체험시설은 실제 사고 위험을 가상현실로 재현해 외국인 노동자가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작업수칙을 익히도록 설계됐다. 언어 사용을 최소화해 한국어에 서툰 노동자도 쉽게 참여할 수 있다. 올해 7월 김해센터에서 시범 운영 후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 전국 9곳으로 확대됐다.
다국어 안전표지는 교육·체험 정책을 보완한다. 추락, 화재·폭발, 질식 등 5대 중대재해와 12대 핵심 안전 수칙 등 기본 수칙을 10개 언어로 번역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정부는 대한건설협회, 건설안전협의회 등 유관기관과 협력, 건설현장 곳곳에 부착해 작업 중에도 즉시 안전수칙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정책이 늘어난 만큼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려면 연계와 통합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커지고 있다. 교육·체험·안내가 각각 따로 운영될 경우 오히려 현장 혼란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다.
한 건설업 안전관리자는 “교육은 온라인에서, 체험은 지원센터에서, 안내는 현장에서 따로 진행되면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며 “공정 단계와 현장 여건에 맞춰 정책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의 출신국과 언어, 고용형태가 다양해 단일 방식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향후 정책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제도 보완과 현장 모니터링을 강화할 방침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온라인, VR, 표지, 강사 양성은 각각 역할이 다르지만 모두 외국인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는 중요한 축”이라며 “정책이 현장에 정착할 수 있도록 건설사, 지자체, 유관기관과 협력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흥순 기자 so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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