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여성의 흉상’ 354억에 낙찰...자오 우키  ‘작은 다리~’는 251억원
발터 슈피스 1929년작 풍경화 41억...단색화 거장 박서보의 ‘묘법’ 16억
신규 신규 구매자 비율이 전체 20% 자치...절반 이상이 밀레니엄세대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이 5년째 조정을 받고 있는 가운데 홍콩 경매 낙찰률이 96%까지 치솟으며 모처럼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아시아 최대 미술품 경매회사 홍콩 크리스티는 지난달 26~27일 이틀간 홍콩 더 헨더슨 빌딩에서 실시한 ‘20 세기 및 21 세기 미술 이브닝·데이’ 세일 경매에 출품한 그림, 조각 등 182점 대부분을 팔아치워 낙찰률 96%, 낙찰총액 1473억원을 기록했다. 아시아 미술 경매시장에서 단일 입찰행사 가운데 가장 높은 금액이다. 낮은 추정가 대비 낙찰가 지수 역시  121%에 달해 거의 모든 작품들이 고가에 새 주인을 찾아갔다. 투자자들이 짙은 관망세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나온 파블로 피카소, 자오 우키, 데이비드 호크니, 구사마 야요이 등 글로벌 인기 작가들의 작품에 응찰한 결과다. 그동안 낙찰률이 평균 70~80% 안팎에 머물던 것과 비교하면 국제 미술시장 활성화에 긍정적 신호로 해석된다.
 이학준 크리스티 코리아 대표는 “5개 대륙 32개국에서 온 컬렉터들이 경매에 참여했으며, 그 중에서도 중화권 지역을 중심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활발한 참여가 이어졌다”며 “신규 구매자 비율은 전년보다 큰 폭으로 늘어 전체 20%를 자치했고, 이 중 절반 이상이 밀레니엄 세대(MZ)였다”고 말했다. 
| 크리스티 홍콩이 지난달 26일 홍콩 더 헨더슨 빌딩에서 실시한 ‘20 세기 및 21 세기 미술 이브닝·데이’ . 사진=크리스티 코리아(CHRISTIE’S IMAGES LTD. 2025’ 제공 | 
중국 일본 한국 등 아시아 지역 500여명의 ‘큰손’ 컬렉터들이 참여한 이번 경매에서 근현대 미술품에 치열한 응찰경쟁이 이어졌다.  
 홍콩 미술시장에서 입찰도 되기 전에 뜨겁게 주목을 받은 피카소의 ‘여성의 흉상’ 은 예상대로 추정가의 두 배 이상 웃도는 약 354억 7000만원에 팔려 아시아 지역 피카소 작품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다. 세로  80.8cm, 가로 60cm 크기의 이 작품은 추정가 81년만에 시장에 처음 공개된 수작이다. 피카소가 연인 도라 마르를 떠올리며 열정적 사랑에 상상력을 더해 완성했다. 1943년에 그린 이 작품은 이듬해 8월 현재 소장가의 조부인 프랑스컬렉터가 구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이 판매되기 전 1년간 피카소의 스튜디오에서 몇 차례 전시됐으나 팔린 이후 81년간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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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354억 7000만원에 낙찰돼 아시아 지역 피카소 작품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여성 흉상' 사진=크리스티 코리아(CHRISTIE’S IMAGES LTD. 2025)’ 제공 | 
 피카소 이번 작품은 장 미셜 바스키아의 ‘전사’가 세운 아시아 태평양 지역 경매 최고가는기록은 깨지 못했다. 바스키아의 1982년 작 ‘전사’는 2021년 3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 당시 약 472억 원에 낙찰, 아시아에서 경매된 서양 미술작품 중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컬렉터를 흥분시킬 만한 인상파 그림은 물론 추상화, 풍경화 작품에도 꾸준한 매수세가 유입됐다.
 프랑스 인상파 거장 클로드 모네의 작품 ‘지베르니의 봄, 오후의 효과’ 는 낮은 추정가를 약간 웃도는 67억원에 새 주인을 찾아갔다. 모네가 지베르니 자택 분위기를 모티브로 작업한데다 무수한 회화적 잠재성을 탐구한 작품이어서 컬렉터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 자오 우키의‘작은 다리와 흐르는 시냇물’. CHRISTIE’S IMAGES LTD. 2025’ | 
 중국계 프랑스화가 자오 우키의  ‘작은 다리와 흐르는 시냇물’은 251억원, 1963년 작 추상화 ‘17.3.63’ 은 153억원에 각각 낙찰됐다. 형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추상화 스타일의 수작들이다.  ‘작은 다리와 흐르는 시냇물’은 형체를 작은 색점으로 쪼개 초현실적으로 표현해 형이상학적 느낌을 준다. 
 영국의 스타작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1992년작 ‘열두 번째 V.N. 회화’ 역시 49억3000만원에 팔렸다. 꿈틀거리는 색채감과 묘한 마티에르 때문인지 생동감이 화면 전체에 퍼져나가는 이색적인 작품이다. 
피카소의 또 다른 작품 ‘쿠션에 기댄 여인 누드’(58억1000만원)을 비롯해 일본 팝아티스트 요시토모 나라의 ‘볼거리’(18억3000만원), 발터 슈피스의 1929년작 풍경화(41억1000만원), 미국 작가 조지 콘도의 ‘쇼걸’(17억1000만원) 등도 합리적인 가격에 줄줄이 응찰자들의 열띤 경합이 이어졌다. 
크리스티안 알부 크리스티 아시아 태평양 부회장은 “ 피카소와 자오 우키 작품을 선두로 중국 근대 미술 컬렉션에 대한 수요까지 다양하고 국제적이며 절대적인 퀄리티를 자랑했다”며 “컬렉터들이 원하는 작품을 선보였고, 그들은 열정적인 응찰로 화답한 셈”이라고 강조했다. 
| 박서보의 '묘법No. 1-78' 사진=크리스티 코리아(CHRISTIE’S IMAGES LTD. 2025)’ 제공 | 
 한국 작품들도 아시아 지역 컬렉터들의 눈을 압도하며 낙찰률 100%(White Glove)의 신화를 썼다.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의 1978년작 ‘묘법 No. 1-78’은 16억2000만원에 낙찰돼 주목을 받았다. 세로 112.7cm, 가로 162cm의 이 작품은 전통 한지를 풀어 물감에 갠 것을 화폭에 올린 다음 연필이나 자로 수없이 긋고 밀어내 밭고랑 같은 요철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1978년 제작됐다. 촉각성과 정신성이 하나의 공간에서 겹치거나 서로 맞물리며 궁극의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게 이채롭다.
 재불화가 이성자(1918~2009)의 작품은 세 점이나 팔려 작고 이후 꾸준한 인기를 반영했다. 그의 1961년작 ‘구성’은 6억9000만원에 팔렸고, ‘빌뇌브-루베’(1억3000만원). ‘5월의 도시’(1억9000만원) 역시 억대 그림에 합류했다. 
 또 김창열의 1975년 작 ‘물방울’(4억8000만원), 이우환의 ‘점으로부터’(3억6000만원), 단색화가 윤형근의 ‘움버 블루’(3억6000만원)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새 주인을 찾아갔다. 
 재키 호 크리스티 아시아 태평양 수석 부사장은 “아시아 지역에서 대만, 홍콩, 마카오를 포함한 중국 시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며 “이번 경매는 전략적으로 글로벌한 작품 선정을 통해 아시아 전역의 다채로운 예술을 아우른 덕분에 한국을 비롯해 태국, 베트남, 필리핀,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 모두 낙찰됐다”고 설명했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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