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사업보국 정신으로 세계 1위 비철금속 신화…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별세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기사입력 2025-10-09 16:36:36   폰트크기 변경      

자원빈국서 세계 1위 제련기업 초석 다져
미증명 신공법 과감하게 도입한 사업보국
“매일매일 조금씩” 정도경영…10일 영결식


고(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사진: 고려아연 제공

[대한경제=강주현 기자]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은 ‘사업보국의 기업가’였다. 자원 빈국이자 제련 불모지인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려면 반드시 비철금속산업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는 확신으로 50년을 달려왔다.

1973년 정부가 울산 온산에 비철금속단지 건설 방침을 결정했다. 선친인 고(故) 최기호 고려아연 창업자는 이를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기회로 판단했다. 미국에서 MBA와 직장 생활을 하던 34세 청년 최창걸은 ‘한국으로 돌아와 일을 도와달라’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1973년 10월 귀국했다.

온산제련소 건설 자금 확보가 첫 과제였다. 국민투자기금, 산업은행 등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세계은행 산하 국제금융공사(IFC)와도 접촉했다. IFC는 7000만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는 5000만달러에 해낼 수 있다고 설득했다. IFC가 부채 60%, 자기자본 40%를 요구했지만 협상 끝에 70대 30으로 조정했다. 이어 “모든 걸 내 손으로 해보겠다”며 턴키 계약 대신 구매에서 건설까지 직접 수행했다. 수십 개 업체와 건건이 계약하며 비용을 아꼈고, IFC 전망치보다 2500만달러나 적은 4500만달러에 국내 최초의 대형 비철제련소를 완공했다.

1978년 설립된 온산제련소는 시운전과 정상화에 2년이 걸렸다. 최 명예회장은 이 기간 경영관리체계를 정비하며 빠른 정상 가동의 기반을 닦았다. 1980년부터 1992년까지는 사장과 부회장으로 재임하면서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생산시설을 확장했다. 세계 최초로 아연ㆍ연ㆍ동 제련 통합공정을 구현하고, DRS(직접환원제련법) 공법도 처음 상용화하며 독보적 경쟁력을 구축했다. 고려아연이 100년 역사 해외 제련소들을 제치고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기업으로 성장한 이유다.


고 최창걸 명예회장이 제련소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사진: 고려아연 제공

그의 경영 철학은 명료했다. “혁신이나 개혁은 이미 늦은 것이다. 매일매일 조금씩 발전해 나가면 한꺼번에 큰일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며 꾸준함과 성실함을 강조했다. 또한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하지 말고 기본에 충실하자’는 신조로 정도경영을 실천했다.

신중했지만 과감한 투자와 모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 연 제련사업 진출 때도 상업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신공법을 도입했다. 당시 연 제련은 주로 소결-용광로 공법을 채택해왔지만, 환경문제가 대두하면서 새로운 공법으로의 전환 필요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2002년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뒤에도 회사의 기술 발전과 경영에 꾸준히 기여했다. 창립 40주년 기념 사내 인터뷰에선 고려아연을 “바위가 아닌 흙가루 하나하나로 다진 회사”로 표현하면서 “스타플레이어보다 탄탄한 조직력이 우선”이라며 조직의 힘을 강조했다. 특히 “우리가 ‘글로벌 1위’다 하는 생각은 오만이다. 100년 가는 회사가 위대한 회사다”라며 100년 기업에 대한 바람도 언급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이런 아버지의 철학을 계승해 신재생에너지, 이차전지 소재, 자원순환 등 ‘트로이카 드라이브’로 100년 기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아연 생산은 연 5만t에서 65만t으로, 매출은 114억원에서 12조원으로 늘었다. 38년 무분규, 102분기 연속 흑자라는 대기록도 세웠다. 올 상반기에는 매출 7조6582억원 등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안티모니를 미국에 수출하는 등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에도 앞장섰다.

최 명예회장은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컬럼비아대 MBA를 취득했으며, 유중근 여사(전 대한적십자사 총재)와의 사이에 최윤범 회장을 비롯한 2남 1녀를 뒀다. 지난 6일 향년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장례는 회사장으로 7일부터 4일간 치러졌으며,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영결식은 10일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거행된다.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장례식장 빈소./사진: 고려아연 제공


강주현 기자 kangju07@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프로필 이미지
산업부
강주현 기자
kangju07@dnews.co.kr
▶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대한경제i' 앱을 다운받으시면
     - 종이신문을 스마트폰과 PC로보실 수 있습니다.
     - 명품 컨텐츠가 '내손안에' 대한경제i
법률라운지
사회
로딩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