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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연합 제공 |
[대한경제=신보훈 기자]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10일 전후 80년을 맞아 개인 명의 메시지를 발표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반성을 담은 내용이었다. 같은 날 1999년부터 지속된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 정권은 정치자금 문제를 둘러싼 이견으로 26년 만에 붕괴 위기에 놓였다.
이날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A4 용지 7장 분량의 '전후 80년 소감'을 발표했다. 그는 “역사 인식은 전후 50년, 60년, 70년 총리 담화를 토대로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며 “지난 대전의 반성과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기겠다”고 밝혔다.
이번 담화에는 무라야마·고이즈미 전 총리가 명시했던 '식민지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처럼 직접적인 표현은 담기지 않았다. 한국·중국 등 주변국에 대한 언급도 빠졌다. 이시바 총리는 질의응답에서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포함해 기존 담화를 계승했다”며 새로운 내용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는 당내 강경 보수파의 압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자민당 총재는 지난달 “2015년 아베 담화가 최고였으며 추가 메시지는 불필요하다”고 못을 박은 바 있다. 자민당 보수파는 아베 담화로 역사 문제의 마침표를 찍었다는 입장이다.
6000자에 달하는 이번 메시지의 상당 부분은 전쟁을 막지 못한 원인 분석에 할애됐다. 이시바 총리는 제국 헌법의 구조적 결함, 문민통제 부재, 정부·의회의 무능, 언론의 역할, 정보 역량 부족 등 5가지 측면에서 실패 요인을 짚었다. 그는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굴복하지 말고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으로 역사의 과오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메시지는 각의(국무회의) 결정을 거친 과거 담화들과 달리 총리 개인 명의로 발표됐다는 점도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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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자민당 총재./ 연합 제 |
같은 날 일본 정치 지형도 격변의 조짐을 보였다. 자민당과 공명당이 연립 정권 구성 협상에서 기업·단체 헌금 규제 강화 방안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다.
사이토 데쓰오 공명당 대표는 협상 후 기자들과 만나 “정치자금에 대한 기본 자세에서 의견 차이가 컸다. 자민당의 태도가 미흡해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의 전모가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원 비서가 기소된 사례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사이토 대표는 “자민당과의 연합을 백지화하고 지금까지 관계를 정리하겠다”며 결별을 선언했다. 다가오는 총리 지명 선거에서는 공명당 의원들이 자신에게 표를 던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명당은 다카이치 총재 취임 이후 야스쿠니 신사 참배, 비자금 스캔들 대응, 외국인 배척 정책 등 세 가지 쟁점에 대한 입장 정리를 요구해왔다. 사이토 대표는 신사 참배와 외국인 정책 부문에서는 “설명을 듣고 어느 정도 인식을 공유했다”고 평가했으나, 정치자금 문제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연정이 깨졌지만 중의원(하원) 465석 중 자민당은 196석으로 여전히 제1당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입헌민주당 148석, 일본유신회 35석, 국민민주당 27석, 공명당 24석 순이다. 총리 지명은 중의원과 참의원이 따로 투표하되 결과가 다르면 중의원 결과가 우선한다. 각 당이 자당 대표를 찍는다면 다카이치 총재가 총리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
다카이치 총재는 새 연정 파트너로 국민민주당이나 유신회와 접촉할 것으로 예상되나, 양당의 합류 여부는 불확실하다.
종교단체 창가학회를 모체로 한 중도 보수 정당인 공명당은 그간 자민당의 우경화를 견제하는 완충 역할을 해왔다. 선거 협력도 긴밀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공명당 지원이 없었다면 자민당 지역구 의원 132명 중 25명이 낙선했을 것으로 추산됐다. -
연정 협상 난항으로 총리 지명 선거를 포함한 임시국회 소집이 이달 20일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도 커졌다. 다만 26일부터 아세안 정상회의,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일, 경주 APEC 정상회의 등 외교 일정이 줄지어 있어 새 총리는 24일 이전에 선출될 것으로 보인다.
총리 선출이 지연되면 신임 총리의 소신 표명 연설이 내달 4일 이후로 연기될 수도 있다.
신보훈 기자 b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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