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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주로칼럼] 비자 앞에 멈춘 기술 ‘CES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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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10-14 05:00:12   폰트크기 변경      

[대한경제=심화영 기자] “기술은 국경을 넘지만, 사람은 비자 앞에 멈춘다.”

두달 반 뒤 ‘CES 2026’을 앞두고 한국 기업이 맞닥뜨린 가장 큰 변수는 기술력이 아니라 입국 심사대다. 비자 해석 하나에 설비 설치 일정이 흔들리고, 출장 인력이 단속 대상이 된다. 혁신의 무대는 라스베이거스가 아니라, 공항 카운터에서 이미 갈라지고 있다. 


기업에게 CES가 ‘기술 선점의 링’이라면, 기자에게는 ‘혁신이 살아 숨 쉬는 현장’으로 남아있다. 새벽부터 부스를 돌고 시차를 견디며 밤새 기사를 쓰는 강행군이지만, 그만큼 생생한 산업의 미래를 목격할 수 있다.

그런데 올해 한국 기업 앞에 ‘비자’라는 새로운 장벽이 등장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공장에서 단기 상용 비자(B-1)와 ESTA를 둘러싼 해석 논란이 불거지며 한국인 근로자들이 단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출장이나 기술 지원 인력의 입국까지 신중해졌고, 기업들은 로펌을 찾아 현지 법률 자문과 대응 메뉴얼 마련에 분주하다.

한미 정부는 ‘한국 투자자 데스크’ 설치와 B-1 비자 범위 명확화 등 단기 대책을 내놨지만,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현장에서는 “설비 설치와 직원 교육의 경계가 모호해 언제든 단속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법률 해석 하나로 생산 일정이 흔들릴 수 있는 구조다.

CES는 수출 중심의 한국 기업에 글로벌 시장 진출의 발판이다. ‘CES 2025’에는 한국 기업 1031곳이 참가해 전체의 21%를 차지했고, 스타트업 전용관 유레카 파크에서도 절반 가까운 625개사가 한국 기업이었다. 기술력을 보여주고 투자자와 파트너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비자 문제 때문에 잃는 건 치명적이다.

기술은 국경을 넘지만 비자 정책은 정치의 영역에 묶여 있다. 글로벌 기술 인재의 이동이 ‘정치 리스크’로 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H-1B 비자 수수료 인상 논란은 상징적 사건이다. 외국 전문인력의 이동 자체가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변하고 있다. 기술 인재가 산업 경쟁력의 핵심인 시대에, 국경 통제는 곧 기술 차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인 전문직 전용 ‘E4 비자’ 도입 재추진을 제안하고 있다. 비자를 단순한 행정절차가 아닌 ‘산업 인프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10여 년간 외교부와 산업통상부가 개별적으로 노력했지만, 실질적 성과는 없었다. 이제는 머뭇거리지 말고 통상과 외교, 산업정책이 하나의 팀으로 움직여야 한다.

CES는 기술의 경연장이지만, 그 무대에 서기 위해선 행정과 외교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한국이 글로벌 혁신 경쟁의 전선에서 계속 존재감을 유지하려면, 기술만큼이나 ‘이동의 자유’를 전략 자산으로 확보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혁신의 속도는 비자 심사보다 빠르다. 경쟁의 시작점은 라스베이거스가 아니라 공항 카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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