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 알바에 속아 감금ㆍ고문 피해 속출
교민들 “피해 신고만 400~500건”
정부, “코리안데스크가동까지 시간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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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발생하고 있는 한국인 대상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13일 오후 4시 30분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용산 대통령실에서 첫 TF 회의가 열린다. 사진은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 사진 : 연합 |
[대한경제=박호수 기자]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겨냥한 납치·감금·고문·갈취 범죄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 잇따른 피해로 한국인이 살해되고, “2000만원을 보내면 풀어주겠다”는 협박까지 등장했지만 정부 대응은 뒷북이다.
13일 경찰청과 정부 등 관계기관에 따르면, 정부는 캄보디아 내 한국인 대상 범죄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코리안 데스크’ 설치와 범정부 태스크포스(TF) 가동 등 긴급 대책을 검토 중이다. 경찰은 캄보디아 경찰과 합동수사를 협의하고, 인터폴·아세아나폴 등 국제기구와의 공조 강화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현장 대응은 여전히 더디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캄보디아는 다른 동남아 국가보다 경찰 간 협조가 원활하지 않은 편”이라며 “코리안 데스크 설치와 강력 대응을 요청하겠지만, 인력 파견·업무협약 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르면 오는 23일 캄보디아 경찰청 차장과 양자 회담을 열어 세부 협력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 같은 조치는 최근 현지에서 한국인을 노린 범죄가 잇따라 발생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 7월 초 경북 예천 출신 대학생 박모(22)씨는 “박람회에 다녀오겠다”며 출국했다가 8월 8일 캄폿주 보코산 인근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구조된 생존자는 “너무 많이 맞아 걷지도 못했고 숨쉬기조차 힘들었다”고 진술했다. 박씨의 사망증명서에는 ‘고문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이 사인으로 적혀 있었다.
박씨는 ‘월 1000만원 이상 고수익 IT 알바’ 구인글을 보고 캄보디아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엔 단기 해외근무로 속였지만, 실제로는 보이스피싱·온라인 사기 조직의 인력 모집이었다. 캄보디아 시하누크빌에서 구조활동을 하는 오창수 선교사는 “요즘은 ‘서류 운송’이나 ‘여행 경비를 대준다’는 식으로 유인한다”며 “태국·베트남을 거쳐 육로로 데려오는 루트도 생겼다”고 말했다.
이보다 열흘 뒤인 8월 19일, 상주 출신 A(30대)씨가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가족이 8월 22일 “연락이 끊겼다”고 경찰에 신고했고, A씨는 24일 텔레그램 영상통화에서 “2000만원을 보내면 풀려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행방은 묘연하다. 가족은 발신번호 없는 협박성 문자를 여러 차례 받았으며, 경찰은 해외 범죄조직의 금전 갈취로 보고 수사 중이다.
현지 교민 사회는 “한국인을 노린 범죄가 매주 발생한다”고 토로한다. 정명규 캄보디아 한인회장은 “올해 들어 피해 신고만 400~500건에 이르고, 300여 명이 귀국했다”며 “탈출자 중에는 공항에서 다시 붙잡힌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오 선교사는 “민간 차원으로 밤마다 구조에 나서고 있다. 올해만 40~50명을 구했지만, 이제는 정부 차원의 공조 없이는 구조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 대통령실도 직접 대응에 나섰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30분,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용산 대통령실에서 ‘캄보디아 한국인 범죄 대응 TF’ 첫 회의가 열렸다. TF는 캄보디아 내 한국인 범죄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현지에 억류된 한국인 구출 및 캄보디아 당국과의 협조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조치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1일 “캄보디아 범죄로부터 우리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외교부가 외교적으로 총력을 기울이라”고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외교부 단독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고,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는 판단에 대통령실이 직접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박호수 기자 lake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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