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지역 지정 각종 규제… 사업지연 불가피
서울시 31만호 공급 활성화 정책에도 지장
청약 수요자들 강화된 대출규제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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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경제=임성엽ㆍ황은우 기자] 정부의 10ㆍ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 발표 이후 도시정비시장과 분양시장에 몰아치는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서울 전역 투기과열지구 지정 등 초강력 규제가 서울의 유일한 대규모 주택공급 창구인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의 최대 복병으로 떠오르면서 주택공급 지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지난 9ㆍ7 공급대책을 통해 재건축ㆍ재개발사업을 활성화하겠다는 약속과는 무색하게 서울 전역과 경기도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묶으면서 정비사업 지연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16일 관계기관 등에 따르면 지난 15일 정부는 서울 25개 자치구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했다. 투기과열지구로 묶이면 재건축은 조합설립 이후부터, 재개발은 관리처분계획 인가 이후부터 조합원 지위양도가 제한된다. 투기과열지구 내 조합원분양이나 일반분양에 당첨된 경우엔 5년간 다른 정비사업의 분양신청도 할 수 없다. 강제 현금청산대상에 속한다. 이들 규제는 모두 정비사업 속도를 줄이는 ‘저해요소’들이다.
이에 따라 2031년까지 31만호 주택공급을 추진 중인 서울시의 ‘민간 중심 정비사업’ 활성화 정책도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정부는 분명 9ㆍ7 대책 발표 당시엔 정비사업을 활성화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에 서울 전 지역에 투기과열지구 지정카드를 꺼낼지는 생각도 못했다”며 “가뜩이나 공사비 급등에 분담금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어떻게든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민간에게 ‘고추가루’를 뿌린 격”이라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이 민간 정비사업장들을 이번 10ㆍ15 대책 최대 피해자로 평가하는 이유는 조합원 간 ‘이해관계’ 일치가 가장 중요한 정비사업에 각종 갈등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합원 간 갈등이 발생하면 서울시에서 인허가 절차를 대폭 축소해준들 사업시행계획인가와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거쳐 착공까지 정비사업 각 문턱을 넘어설 수 없다.
우선 조합원 지위양도가 제한되면 조합원들은 해당 사업장을 청산(엑시트)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다.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상한이 70%에서 40%까지 낮아지면서 이주비 대출이 극히 어려워진다. 분담금 비용 부담이 어렵거나, 다른 이유로 청산을 원하는 조합원들은 자유롭게, 조합을 떠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이들 조합원들이 조합에 발이 묶일 경우 조합입장에선 사업에 속도를 내는 게 불가능하다.
김 소장은 “나가고 싶은 조합원들도 강제로 조합을 떠날 수 없게 될 경우, 정비사업 각 절차를 밟아나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특히 5년 거주, 10년 이상 보유 등 엑시트 요건도 상속이나 임차를 해줬을 경우 등 복잡한 사례가 많아 조합 내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5년 재당첨 제한 규제도 정비사업 지연을 야기하는 대표요인이다. 조합원이나 일반분양에 당첨된 사람들이 5년 내 다른 정비사업 분양신청을 하면 분양권을 잃고 ‘강제 현금청산’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금청산이 될지 모르고 투자하는 투자자도 많을뿐더러, 이번 사례처럼 10.15 대책 전 재건축 아파트 계약을 체결하고 10.15 대책 후 잔금을 치르는 경우 등 다양한 사례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갑작스레 현금청산 대상이 될 여지도 많다.
이런 현금 청산자들은 재산권에 큰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해 조합이나 국가에 분양대상자 지위 확인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설 수 있다. 법적 분쟁에 돌입한 조합들은 정비사업에 속도를 낼 수 없다.
정부의 이번 발표로 서울시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서울시는 ‘신속통합기획 2.0’ 가동 등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 주택공급 활성화에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시에 따르면 이번 대책으로 서울 관내 조합원 지위 양도제한 대상 가구수는 재건축(139개 구역, 10만8387세대)과 재개발(75개 구역, 5만577세대)을 합해 무려 15만8944세대에 이른다. 시는 투기과열지구 지정이 정비사업 현장과 단계별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검토하고 있다. 이를 통해 대응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오세훈 시장은 이날 오전 시청에서 열린 서울시정비사업연합회와의 간담회에 참석해 “(정부 부동산안정화 대책은) 재개발, 재건축 정비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요소가 군데군데 들어있다”며 “속도가 전반적으로 느려지면 시가 야심 차게 정성 들여 준비한 각고의 노력이 바래진다는 점에서 마음이 무겁고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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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재개발 사업장 모습. 대한경제DB |
분양시장도 대혼란… 주택업계 셈법 분주
“어제 청약자들 문의 전화가 300통 정도 왔는데, 이 중 절반 정도가 이번에 강화된 대출 규제를 적용받는지 물어봤습니다.”
16일 서울 동작구 ‘힐스테이트 이수역센트럴’ 아파트의 분양 관계자는 〈대한경제〉에 “공교롭게도 1순위 청약 모집일과 10ㆍ15 대책 발표일이 겹쳤던 까닭”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힐스테이트 이수역센트럴은 당일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규제를 피한 서울의 마지막 분양단지다. 입주자 모집공고를 규제 발표 전인 이달 초 게시해서다. 1순위 청약 평균 경쟁률도 326대 1로 대흥행했고 전 타입이 마감됐다.
이 단지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후 수도권 규제지역 청약 수요자들은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이른바 현금 부자 위주로 살아남는 흐름이 짙어질 전망이다. 이번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이하 10ㆍ15 대책)은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한 6ㆍ27 규제를 세분화해 주택가격 15억원 초과~25억원 이하 주택은 4억원, 시가 25억원 초과 주택은 2억원으로 줄였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 4분기 수도권 전체에서 아파트 약 2만3000가구가 일반분양된다.
미취학 자녀 1명을 둔 30대 공무원 장씨는 “규제 영향을 받지 않는 ‘상봉역 센트럴 아이파크’ 청약에 당첨됐으나 서울 중랑구라는 애매한 입지, 14억원 가까이 되는 가격으로 본청약을 포기했다. 내 집 마련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데, 분양가는 계속 오르는 추세에 청약 관련 자금조달은 더 어려워져 걱정이다”라고 했다.
수도권 거주 서민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공분양 물량으로 선택폭이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LH는 연말까지 약 5600가구를 신규 공급할 계획이다. 다만 LH의 공급 물량 일부는 10ㆍ15 대책 영향을 받는다. 규제지역으로 지정된 경기 과천시에 위치한 주암지구에서 C1블록 932가구가 오는 12월 공공분양되기 때문이다. LH 공공분양인 만큼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주담대 규제는 피할 것으로 보이지만, 주택담보대출 스트레스 금리가 1.5%에서 3.0%로 상향되는 조치는 적용받게 됐다.
LH 관계자는 “관계기관 등에 문의한 결과 과천주암지구 C-1블록은 이번 대책의 영향을 받는 것이 맞다. 다만 932가구 중 812가구는 수익공유형 모기지가 제공되는 신혼희망타운으로, 이외 120가구는 일반 공공분양으로 공급된다”고 했다.
민간분양주택 공급자인 주택업계는 셈법이 복잡해졌다. 일각에서는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분양 일정 연기를 검토하겠다는 반응도 나오지만, 이번 규제가 마지막이라는 보장이 없어 결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분양을 연기했는데 추후 대출 규제가 더욱 강화되고 대상 지역도 넓어지면 악수가 될 수 있다.
정부는 전날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주택시장 안정화를 위한 대출수요 관리 방안’에서 “향후 구체적인 가계대출 증가 양상과 주택시장 동향, 풍선효과 발생 여부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시장 상황에 맞는 추가대책을 적기에, 과감하게 시행해나갈 계획”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임성엽ㆍ황은우 기자 starle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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