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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인생 60년...."알몸으로 가시덤불 기어 나오듯 그림에 매달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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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10-27 15:39:23   폰트크기 변경      
한국 사실주의 대가 구자승 화백, 10월 29일부터 11월 25일까지 선화랑에서 대규모 개인전

인물과 정물화의 대가 구자승 화백(84)은 붓과 물감을 손에 쥐고 평생을 마치 알몸으로 가시덤불을 기어 나오는 것처럼 살았다. 전대미답의 창작세계를 한발 한발 내딛는 것은 힘들고 고달픈 길이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까지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갖고 매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술 인생의 거대한 변곡점은 2007년에 찾아왔다. 서울 상명여대를 퇴임한 후 세상과 조금은 떨어져 있기 위해 충주 장호원으로 내려갔다. 치우치거나 비교함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충주호 인근의 공간에 집과 작업실을 짓고 삶의 온갖 봇짐을 내려놓았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심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것이 허잡한 것으로 가득 채워진 마음을 비우는 길임을 알았다.

충주 인근 장호원 작업실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구자승 화백.   사진= 김경갑

충주호 끝자락이 내려다보이고 뒤론 야트막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배산임수형 길지에서 매일 물소리, 바람소리와 ‘합주’를 한지도 벌써 18년이 흘렀다. 붓을 잡고, 물감을 흩뿌리며 불이(不二)를 펼치는 신명나는 잔치 같은 세월이었다. 욕심과 번뇌로 가득 차 보였던 세상을 그림으로 정화시켜 보겠다던 그의 얼굴엔 깊은 주름 사이로 빛과 어둠이 함께 넘실거린다. 80대 중반에 들어선 그는 죽는 날까지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무거운 짐들을 그림으로 진정 위로하고 싶을 뿐이다.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낚시질하는 K-화단의 사실주의 대가 구자승이 끝까지 붓을 붙들고 있는 까닭이다. 지금까지 굿굿하게 화가의 길을 가고 있는 게 어쩌면 대견하기도 하면서 가슴 한켠이 알싸하다. 그렇게 화가로 60년의 긴 시간을 살아온 그를 또 한 번 전시장으로 불러냈다.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오는 29일 시작해 다음 달 25일까지 화업 60년을 마치 바둑을 계가하듯 펼치는 ‘구자승’전이다. 서울과 장호원에서 공들여 작업한 작품 가운데 근작 40여점을 골라 걸었다.

최근 충주 장호원 잡업실에서 만난 구 화백은 “이번 전시는 정치·사회적으로 혼탁하고, 경제적으로 부대끼는 삶에서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리기 위한 시도”라고 했다. 경기불황의 장기화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말이 화로에서 막 꺼낸 군고구마처럼 따뜻하다.

‘정물화의 대가’ ‘인물화의 천재’ ‘누드화의 1인자’로 불리는 구 화백은 탄탄한 구성력과 밀도 있는 묘사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동안 노태우·전두환·김대중 전 대통령,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초상화를 맡아 그려 주목받았다. 옥조근정 훈장과 오지호 미술상, 몬데칼로 국제현대미술제 조형예술상을 비롯해 2010년 말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가 선정한 미술 부문 ‘올해의 최고예술가상’을 수상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장, 신미술회장, 한국 인물작가회장을 잇달아 맡으며 한국 구상미술의 새로운 길을 모색한 그의 치열함은 작품 속에 서려 있다.

한국의 100대 작가에 당당히 랭크된 그는 “캔버스 앞에 앉아 있을 때에야 비로소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그림은 거창한 예술이 아니라 인생에서 별난 ‘맛’이어서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고 말했다. “몸이 작업을 지배해야죠. 작업에게 지면 작품이고 뭐고 끝장이에요. 일을 가지고 놀아야 자신은 물론 보는 사람도 즐겁습니다.” 그래서인지 물감 가득 머금은 화폭에는 마치 현실 세계를 펼쳐놓은 듯 이야기가 흥건하다. 그의 정물화는 일반적인 구상과 달리 대상의 독창적 화면 구성에 강한 악센트를 두는 게 특징이다. 색바랜 주전자, 술병, 보자기, 도자기 등 오랜 세월 사람의 무게를 이겨낸 일상의 소재를 화면에 올려 날 것에서 나오는 생명력을 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빈 술병 또는 꽃병이 주는 수직의 느낌과 과일이 놓인 탁자의 수평적 구도로 구성해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실재감을 더해준다. 시간 속에 제멋대로 맡겨진 사물들을 잠시 떼어내 공간에 재배치함으로써 관람객들이 정말 물체가 음악이나 시처럼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게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구 화백은 “제 그림에는 빈 공간이 많다”고 강조했다. “동양화의 문인화에서 볼 수 있는 사유의 공간 개념이지요. 사유의 공간을 서양화에 접목시킨 그런 작업을 많이 합니다.”

프랑스 평론가 로제 부이에가 ‘침묵의 후광’과 ‘내적인 음악’, ‘시적 존재의 현현’이라고 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자승 화백의 개인전에 출품될 작품.   사진=구자승 화백 제공

구 화백은 지난 60년 동안 사람의 기억과 자취도 무던히 좇아 왔다. 그는 깊고 풍부한 색감으로 그윽한 삶의 향기를 품고 있는 얼굴들을 에너지라는 감흥의 고리로 풀어낸다. 화면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심리적 상황까지 세세히 잡아낼 수 있을 정도다. 전두환, 김대중,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병철 삼성그룹 명예회장, 이홍구 전 총리, 조순 전 서울시장 등 수많은 유명인들의 얼굴이 그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났다.

그의 누드 그림도 마찬가지다. 유난히 여백이 많다. 게다가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이나 옆모습이 더 많다. “여인의 몸처럼 아름다운 게 있을까요? 아름다움의 극치입니다. 특히 뒷모습이 그렇죠. 제가 자두를 자주 그리는데 여인의 뒷모습과 닮았어요.” 전시회 부제를 ‘사물과 사람의 소나타’로 붙여 다양한 장르를 동시에 파고든 점을 선율처럼 껴안았다. 또 한번 색다른 작품으로 미술애호가들을 저격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구자승 화백의 집안은 대대로 미술에 조예가 깊었다. 정3품 벼슬을 지낸 증조부(구연소)는 난을 잘 쳤고, 동아일보 기자였던 아버지(구인회)도 그림을 잘 그렸다. 7남매 중 장남인 그가 미술을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성화는 대단했다. 고등학교 시절 실기대회에서 상을 받아왔지만 아버지는 화를 내며 그 박스를 아궁이에 처넣어버렸다. 부모님 몰래 홍익대 미대에 원서를 넣고 입학했다. 부모 지원이 끊겨 물감 살 일을 궁리했던 회한이 사무쳤다. 1학년 때 군에 갔다가 복학한 뒤에는 학교 화실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렸다. 화실에서 여학생(장지원 화백)과 눈이 맞아 7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1971년 부부로 인연을 맺은 위에 또 한 겹의 ‘화연(畵緣)’을 쌓은 두 사람에게 미술의 넉넉한 감성은 가족의 분위기를 살리는 에너지가 되고 서로에게 위안을 주기도 한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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