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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주로 칼럼] '어쩔 수 없다'는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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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10-30 06:00:18   폰트크기 변경      


[대한경제=김현희 기자] 어쩔 수 없다. 내 집을 급매물로 내놓을 수 없다. 직을 버려서라도 내 자산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다.

어쩔 수 없다. 일부 불편이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현시점에서 불가피한 정책이라는 말도 드리고 싶다.

10·15 부동산 안정화 대책을 놓고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2채 중 1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실거래가보다 더 높은 가격, 즉 급매물로 내놓지 않은 탓에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주택 매도가 급하지 않다.

이상경 전 국토교통부 차관이 주택 처분 대신 사퇴라는 선택을 하면서 '역시나'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직업은 영원하지 않지만 자산은 팔지 않는 이상 영원하기 때문에 인간의 본능상 어쩔 수 없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 대해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다.

모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었을까. 최근 영화 '어쩔 수 없다'를 보며 호응하지 못하는 관객들은 살인을 저지르는 남자 주인공에 대해 "다른 직업을 찾으시라고요!!"라며 복장 터져한다.

그렇다. 어쩔 수 없을 때는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시각을 달리 보기도 하고 시야를 넓히려는 노력을 하기 마련이다. 이재명 정부와 금융당국은 여전히 다른 방법을 찾지 않고 기존 부작용만 가득했던 규제 방식을 "어쩔 수 없다"며 다시금 꺼내들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영화의 남자 주인공처럼 눈을 돌리지 않을 뿐이다. 은행들에게는 단기 실적에 얽매여 은행 시스템의 부작용을 초래하지 말라고 하지만, 정작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단기 효과만 가능한 규제를 꺼내들고 말았다.

과연 이같은 규제가 고소득자들의 주택 구매 수요를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을까. 코스피 5000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이 혼재된 상황에서 일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1대1 상담으로 유도하는 사기꾼들만 넘쳐나고 있다. 이미 돈맛을 본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사기꾼들의 말에 현혹돼 잘못된 종목이나 주택을 구입하고 눈물을 흘릴 것이다.

정부도 '단기 효과'를 노렸으니, 다른 국민들도 '단기 효과'를 볼 수 있는 수단을 선택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다는 건 그냥 '변명'이다. 스스로 공부하거나 시야를 깨우지 않거나 외면한 대가는 분명히 치르게 마련이다. 정부도 국민도 모두 마찬가지다. 주택정책은 빵을 찍어내듯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더라도 유지될 수 있도록 정부가 여당과 야당의 설득을 끌어내고 설득해가며 장기 플랜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장기 플랜을 요구하기는 너무 멀어진 듯하다. 부동산이라는 자산시장부터 꼬였으니 다른 자산시장에 대한 부작용도 상당할 듯 싶다. 모두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대가가 기다릴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각자도생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 사회가 과연 '생산적 금융(국민성장펀드)'을 할 수 있을까. 각자도생은 서로 뭉치기는 커녕 난파선이다 싶으면 누구 먼저 할 것 없이 뛰어내릴 텐데 말이다.

김현희 기자 m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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