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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무시한 '조달청의 행보', 건설업 사전점검제 강행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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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10-30 06:00:40   폰트크기 변경      

공주대 천안캠퍼스 조경 공사
사전점검제 시범특례 1호 발주
충남도 "협조 불가" 입장 밝혀
법적권한 없는 현장점검 지적


조달청이 소재한 정부대전청사 전경 / 사진: 행정안전부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조달청이 지방자치단체 협조 없이 건설업 사전점검제를 단독으로 강행하며 법적 월권 논란에 휩싸였다. 사전 현장 점검에 대한 법적 권한을 가진 지자체가 명확히 “협조 불가” 입장을 밝혔음에도 조달청이 협의 없이 밀어붙이며, 행정권한 분리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조달청에 따르면 ‘공주대학교 천안캠퍼스 조경공사’를 사전점검제 시범특례 1호 사업으로 정하고, 빠르면 30일 발주하기로 했다. 적격심사 1순위 업체를 대상으로 현장점검을 나가 업체의 기술자 급여이체 내역부터 사무실 운용 방식 등 건설업등록기준을 따져, 이를 충족하지 못한 업체는 낙찰자에서 제외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조달청이 시범특례 1호 사업 발주를 앞두고, 관련 지자체와 사전 협의 절차가 없었다는 점이다.

법적 사전점검 권한을 가진 충남도 관계자는 “조달청으로부터 시범특레 1호 사업에 대한 업무 협조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며 “한 차례 미팅 당시 조달청 측에 관련 업무 노하우를 공유할 수는 있어도, 사전점검을 같이 나갈 수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기획재정부 차원에서 국책사업으로 진행하지 않는 한 협조가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건설산업기본법상 건설업 등록기준 실태조사와 현장점검 권한은 국토교통부 산하 지방국토관리청, 혹은 해당 업체 관할 시ㆍ도지사에게 있다. 조달청이 지자체 협조 없이 독자적으로 현장점검을 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게 법조계의 일관된 해석이다.

조달청의 이번 조치는 여러 법리적 쟁점을 안고 있다.

우선 권한 소재 문제다. 조달청은 국가계약법에 따른 입찰참가 제한 권한만 보유할 뿐이다. 건설업체의 등록 요건을 직접 점검하거나 이를 근거로 행정처분을 내릴 권한이 없다.

위임 절차 부재도 문제다. 행정기관 간 권한 위임은 반드시 명시적인 법령 근거나 공식 문서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앞서 대법원은 2013년 판결(2011두10584)에서 “명확한 법적 위임 없이 권한 없는 기관이 내린 처분은 원칙적으로 당연무효”라고 판시했다. 구두 협의나 사후 동의만으로는 권한 위임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게 확립된 법리다.

또 행정규칙의 과잉 해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달청은 자체 예규인 ‘입찰참가자격사전심사기준’과 ‘시설공사 입찰집행요령’ 등을 근거로 사전점검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18년 결정(2015헌마853)에서 “행정규칙이 상위 법령의 위임 범위를 벗어나 권리를 제한하면 법률유보 원칙에 위반된다”고 밝힌 바 있다.

법조계는 사전점검제를 제대로 시행하려면 건설산업기본법이나 국가계약법을 개정해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A대학 행정학과 교수는 “현행 법체계에서 조달청이 독자적으로 건설업 등록기준을 점검할 권한은 없다”며 “법률 개정을 통해 조달청에 실태조사 권한을 부여하고 지자체와의 협조 체계를 의무화하며 점검 절차와 기준을 법령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전문가는 “대법원 판례가 일관되게 ‘법률 위임 없는 권한 행사는 무효’라고 판시하고 있다”며 “조달청이 판례를 무시하고 밀어붙이다가는 대규모 소송과 행정 혼란을 자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대한건설협회 충남도회는 “사전점검 시행을 두고 조달청으로부터 어떠한 통지나 관련 사항 공유가 없어 당황스럽다”며 “일단 입찰공고를 바탕으로 대응책을 수립할 계획이다. 지역 건설경기가 침체된 가운데 지역 영세업체를 타깃으로 한 조달청의 사전점검제 강행에 유감스러울 따름”이라고 전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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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산업부
최지희 기자
jh606@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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