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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원조라면이 돌아왔다...김정수 "삼양1963으로 정신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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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11-03 16:38:10   폰트크기 변경      

3일 서울 중구 보코호텔에서 열린 삼양식품 신제품 출시 발표회에서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 뒤로 고(故)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의 모습이 나오고 있다./사진=삼양식품


[대한경제=오진주 기자] “시간은 흘러도 정신은 남는 법이라네. ‘삼양1963’을 지금 시대에 잘 전해주길 바라네.”

3일 서울 남대문시장 앞 한 호텔, 삼양식품의 신제품 발표회 현장에서 11년 전 세상을 떠난 고(故)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공지능(AI)으로 구현된 화면에서 고 전 회장은 삼양식품의 초심을 이어가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삼양식품은 신제품 ‘삼양1963’을 공개했다. 삼양1963은 우지(소기름)로 만든 라면이다.

1989년, 삼양식품에게는 기업의 존폐를 흔드는 위기가 찾아왔다. ‘우지 파동’이다. 식품기업들이 공업용 소기름으로 먹거리를 만든다는 익명의 제보 한 통이 발단이 돼 우지를 쓰는 식품사들이 구속됐다. 하지만 긴 조사 끝에 식품에 사용한 우지는 유해성이 없다는 결론이 났고, 기업들은 5년 뒤에야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그동안 삼양식품에게는 오명이 덧씌워졌다. 국내 최초로 라면을 출시한 삼양식품은 그 여파로 관련자들이 모두 회사를 그만둬야 했고, 회사는 내리막길을 걸으며 당시 100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지금은 불닭볶음면으로 국내 대표 수출기업이 된 삼양식품에게 우지 파동은 뼈 아픈 사건으로 남아있다.

삼양식품이 명예회복에 나섰다. 우지 파동 고소장이 처음으로 검찰에 접수된 1989년 11월 3일로부터 36년 뒤인 이날 삼양1963을 공개했다.

공개 장소도 창업주의 역사와 맞닿아있는 남대문 시장으로 골랐다. 고 전 회장은 남대문 시장에서 미군부대에서 나온 잔반으로 ‘꿀꿀이죽’을 끓여먹던 사람들을 보면서 한 끼를 대체할 수 있는 라면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삼양1963' 제품./사진=삼양식품


◆ 명예회복 위한 우지면의 귀환


삼양1963은 동물성 기름인 우지와 식물성 기름인 팜유를 혼합한 ‘골든 블렌드 오일’로 면을 튀긴 우지유탕면이다. 면을 끓이는 과정에서 우지의 풍미가 흘러나오며 국물 맛을 풍부하게 해준다.

과거에도 지금도 우지는 팜유보다 비싸다. 우지 파동 이후 우지 라면은 자취를 감췄고, 팜유로 튀긴 라면만 남게 됐다. 팜유가 우지보다 더 저렴하고, 동물성 기름보다는 식물성 기름이 몸에 좋다는 인식 때문에 지금은 팜유 라면이 주를 이루게 됐다.

그러나 이 또한 오해가 있다. 동물성과 식물성 기름은 포화 지방과 불포화 지방의 비율이 거의 같다. 윤아리 삼양식품 부문장은 “흔히 동물성 기름은 콜레스테롤 함량이 많다고 걱정하는데, 삼양1963에 들어있는 콜레스테롤은 계란 노른자 하나에 들어있는 함량보다 낮다”고 설명했다.

또 삼양식품은 액상스프와 후첨분말 후레이크를 적용해 원재료의 맛을 살렸다. 큼직한 크기의 단배추, 대파, 홍고추로 구성한 후레이크로 식감을 더하고, 동결건조공법에 후첨 방식을 적용해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이 유지되도록 했다.


삼양식품 신제품 발표회에서 (왼쪽부터)삼양식품의 윤아리 부문장, 채헤영 부문장, 김정수 부회장, 김동찬 대표 이병훈 연구소장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삼양식품


◆ 불닭이 만든 자신감..."2030에겐 새로운 맛, 5060에겐 추억의 맛"

삼양식품이 우지 파동을 떠올릴 수 있는 삼양1963을 들고 나온 건 불닭볶음면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쌓아 올린 자신감 때문이다. 삼양식품은 신제품으로 기존 삼양라면의 매출을 뛰어넘겠다는 목표도 설정했다.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은 “식품 본연의 가치와 정직한 맛을 담은 진심이 ‘불닭’이라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부활했다”며 “지금은 라면을 만드는 회사를 넘어 한국의 음식 문화를 세계로 전파하는 글로벌 식품기업이 됐지만,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또 한번의 혁신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양식품은 우지라면을 궁금해하는 2030세대와 40여년 전 추억을 찾는 50대 이상 소비자들을 통해 내수 시장에서도 다시 점유율을 높일 계획이다. 채혜영 삼양식품 부문장은 “내수 시장이 어려운 건 사실이다. 과거보다 소비자들이 라면을 찾지 않으면서 국물라면 시장이 성장하지 않고 있다”며 “삼양1963의 역사와 다양한 체험으로 차별화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삼양식품은 우선 국내 프리미엄 라면 시장을 노린 뒤 수출까지 검토할 계획이다. 할랄인증을 받기 어려운 돼지고기가 아닌 소고기를 쓴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지가 상대적으로 단가가 높고, 과거보다 소비자들의 프리미엄 라면 수용도가 높아졌단 분석도 깔려 있다. 채 부문장은 “수출하려면 별도의 스펙을 개발해야 한다”며 “당연히 수출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부회장은 “삼양식품은 굶주림의 시대엔 음식으로, 풍요의 시대엔 문화로 허기를 채우며 지금까지 걸어왔다”며 “삼양1963은 ‘정직으로 시대의 허기를 채운다’는 삼양의 정신을 잇는 새로운 출발점이자 선언”이라고 말했다.

오진주 기자 ohpea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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