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김봉정 기자] 한국이 미국과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협상에 합의하고, 중국과 70조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하면서 외환시장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만 대미 투자금이 연 200억달러로 상한이 설정된 데다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아닌 만큼, 국내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29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향후 10년간 총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현금투자는 2000억달러로, 연 200억달러 한도 내에서 프로젝트 진척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집행하는 ‘캐피털콜(capital call)’ 방식이 적용된다. 대규모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1일 중국 인민은행과 70조원(약 4000억위안) 규모의 원–위안화 통화스와프 계약도 체결했다.
시장에서는 두 사안을 모두 외환시장에 중대한 영향을 줄 변수로 보지 않고 있다.
박상현 iM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에 시장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경제협력 상징성과 함께 동아시아 금융불안 시 공동 대응을 위한 안전판 성격이 크다”고 말했다.
한미 투자와 관련해 이창용 한은 총재도 “시장성 조달(채권 발행)을 늘리지 않아도 연 150억~200억달러 수준의 자체 외화 조달이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외환보유액을 위탁 운용 중인 한국투자공사(KIC)의 최근 10년 연환산 수익률은 5.4%, 올해(9월 말 기준)는 11.7%로 운용수익만 266억달러다.
9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220억달러로, 이 중 유가증권 보유액이 3784억달러다. 단순 계산으로 연 5%대 수익률만 유지해도 연간 200억달러 규모의 투자 재원을 충당할 수 있는 셈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낙관적인 시각을 내놨다.
모건스탠리는 “대미 현금투자 상한 설정으로 대규모 달러 유출 우려가 완화됐다”고 평가했고, 노무라은행은 “프로젝트별 분산 집행 구조가 급격한 외화 유출 위험을 줄인다”고 분석했다.
다만 씨티은행은 “정부 투자와 별도로 반도체·자동차·배터리 등 민간 기업의 대미투자가 이어지며 원화 약세 압력이 일부 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비슷한 진단을 내놨다.
임혜윤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재원을 운용수익으로 조달한다면 외환시장 충격은 미미할 것”이라면서도 “국내에서 운용됐을 자금 일부가 해외로 빠져나가면 중장기적으로 원·달러 환율 하락 속도가 제약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호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관세 인하와 대외 리스크 완화로 수출·설비투자 회복이 이어질 경우 원화 약세 압력은 점차 완화될 것”이라며 “연 200억달러 상한은 외환시장 안정의 완충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조적 요인으로 원화 가치의 급격한 회복은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은 경상흑자를 유지하고 있지만 대외금융자산이 꾸준히 늘면서 외화 순공급이 둔화되고 있어서다. 여기에 매년 200억달러의 해외투자가 추가되면 외화 수급의 경직성이 심화돼 원화의 균형가치에는 약세 요인이 상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증권가에서는 향후 12개월간 원·달러 환율이 1380원대를 웃도는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연구원은 “2026년 분기말 환율은 1분기 1410원, 2분기 1385원, 3분기 1390원, 4분기 1370원 수준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봉정 기자 space02@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