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차선용 특허로 272억 독점
KS기준 미달 제품으로 사고 117건
대전은 신생업체 '맞춤입찰' 논란
지방공기업도 특정공법 지정 특혜
![]() |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지방자치단체 공공 공사에서 기술력 없는 ‘짝퉁 특허’가 공법 선정을 좌우하며 수천억원대 국민 혈세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특히 광주ㆍ대전 도시철도 건설공사에서 불거진 복공판 논란은 특허 제도가 어떻게 악용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광주광역시 도시철도 2호선 2단계 건설공사의 경우 A사는 지난 2020년 특정공법 심의에서 ‘이액형 MMA 광주복공판’을 선정받아 272억원 규모의 복공판 시장을 독점했다. 하지만 본지 취재 결과, A사의 특허(제10-1814346호)는 ‘이액형 노면표지용 도료 조성물’로, 도로 차선에 사용하는 페인트 기술이었다. 철강재인 복공판과는 무관한 특허를 들고 와 공법 선정을 받은 것이다.
게다가 이 복공판은 국토부의 ‘가설교량 및 노면 복공 설계기준’에서 요구하는 미끄럼 방지 기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탓에 2019년부터 2022년까지 광주 도시철도 공사 구간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총 117건(사망 3명, 부상 204명)으로, 매년 증가세를 보였다.
이런 문제는 대전에서도 나타났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장철민 의원(더불어민주당ㆍ대전 동구)은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공사의 복공판 입찰 과정에서 “맞춤형 입찰과 들러리 세우기가 자행됐다”고 지적했다. 111억원 규모의 복공판 공사에 3개 업체가 참여했지만, 1곳은 심사를 포기했고 1곳은 면허조차 없는 상태였다. 실질적으로 자격을 갖춘 업체는 1곳뿐이었던 것이다. 지방계약법 시행령에 따르면 유효한 입찰자가 2인 미만일 경우 재공고 후 재입찰을 실시해야 하지만, 대전시는 이를 무시하고 입찰을 강행했다.
더욱이 낙찰 업체는 2023년 11월에 면허를 취득한 신생 업체로 공공 공사 실적이 전무했다. 보유 특허 역시 대전시가 제시한 ‘강재 절감, 공사 기간 단축’ 등의 선정 이유와 직접적 연관성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장 의원은 “처음부터 한 업체에 맞춘 입찰이었다”며 “전면 감사와 책임자 규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지자체의 특정공법 논란은 비단 광주ㆍ대전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이 2024년 5개 지방공기업의 사업추진실태를 점검한 결과, 부산도시공사, 대전도시공사, 대구도시개발공사, 강원개발공사, 광주광역시도시공사 등에서 특정공법 선정 부적정 등 총 80건(세부 955건)의 위법ㆍ부적정 사례를 적발했다.
D공사는 단가가 높은 개질아스콘을 과다 설계한 뒤 지방계약법령을 위반해 특정 업체를 공급사로 지정했다. 재선정 과정에서도 부실한 공고, 과도한 지역업체 가점 부여, 공고 당일 배점기준 변경 등으로 특정 업체에 14억원의 특혜를 제공한 의혹이 제기됐다.
E공사는 전통시장 공사에서 C사 특허공법을 입찰공고에 명시해 해당 업체만 입찰할 수 있도록 했고, 입찰 후 하도급까지 허용했다.
문제의 핵심은 지자체 특정공법 선정 과정의 불투명성이다. 현행 지방계약법상 신기술ㆍ특허공법을 반영하려면 ‘공법선정위원회’를 열어야 하지만, 위원회 구성과 선정 기준은 지자체장이 결정하고 외부 감사도 받지 않는다.
관련 업계에서는 특정공법 선정을 위한 로비 자금이 지역 연고를 중심으로 정치권과 담당 공무원에 흘러 들어간다는 의혹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규격을 특정 업체에 유리하게 맞추고, 시험 항목도 특정 제품에 유리한 것만 선정한다”며 “지자체장을 위시해 발주기관-자문단-감리-시험기관 간의 인적 네트워크가 얽혀 ‘몰아주기’ 구조가 고착화됐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특허 심사 강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건설 분야 전문가의 심사 참여, 현장 적용성 검증 의무화, 무효 특허 정보의 조달 시스템 자동 연동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제도 개선의 실효성에 회의적이다. 한 지자체 공무원은 “특정공법 심의 자체가 지역업체 보호 명목으로 정치권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영역”이라며 “중앙정부가 강력한 처벌과 함께 전수조사를 병행하지 않으면 근절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