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인건비 3% 한도에 임금협상 교착
2212명 감원 방침에 현장 피로 누적
산재 사망ㆍ사장 공백 등 불신 깊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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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일 서울시청 지하 시민청 인근에서 서울교통공사노조 관계자들이 ‘안전인력 감축 중단’‘부당 임금삭감 저지’ 등이 적힌 현수막을 설치하고 있다. / 사진 : 박호수 기자 |
[대한경제=박호수 기자] 서울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3개 노조가 임금ㆍ단체협약 교섭 결렬을 선언하며 ‘파업 가시권’에 진입했다.
노조는 이달 중순 잇따라 쟁의행위 투표에 착수할 예정으로 결과에 따라 11월 말 이후 실제 파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임금인상과 신규채용 등 핵심 안건은 작년과 다르지 않지만, 노사 간 입장차에 더해 정부의 친노동 정책 기조가 맞물리며 협상 환경은 작년보다 더 험로가 예상된다.
5일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제1노조는 오는 14∼19일, 제2노조는 14∼17일, 제3노조는 18∼21일 각각 쟁의행위에 관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한다. 노조는 모두 서울시청 앞에서 선전전과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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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청 지하 시민청 앞에 설치된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추모 현수막. 노조는 혈액암 등 직업병 피해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서울시에 촉구했다. / 사진 : 박호수 기자 |
올해 교섭의 핵심은 임금과 인력이다.
먼저 노조의 임금 요구안은 1노조 5.2%, 2노조 3.4%, 3노조 3.7% 인상이다. 그러나 공사는 총인건비제 탓에 정부 지침(3.0%)조차 온전히 반영하기 어렵다고 맞선다. 연말 추정으로 기본급 인상 재원 328억원 가운데 약 129억원(39.3%)이 각종 수당 지급에 쓰이면서, 기본급 인상 여력이 잠식되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이에 노조는 ‘총인건비 내 기본급ㆍ수당 재원 분리’ 등 제도 개선이나 추가 재정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교섭 막판에는 서울시가 일부 재정을 보전하며 극적 타결에 이른 전례가 있다.
인력 문제는 더 민감하다. 공사는 2021년 발표한 경영혁신계획에 따라 2026년까지 정원 2212명을 감축한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정년퇴직과 결원 충원이 지연되며 초과근로가 일상화됐다고 반박한다. 노조는 “필수 안전인력부터 채워 시민 안전을 지켜야 한다”고 압박한다.
특히 올해 노동안전 문제는 ‘혈액암 사망 논란’으로 다시 부각됐다. 지난해 집단 발병이 공론화된 이후 지금까지 13명이 혈액암 진단을 받았고, 지난 10월에는 산재가 인정된 직원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환기시설 교체, 유기용제 노출 감시, 노후설비 교체 등 개선책에 약 208억원이 필요하지만, 시로부터 예산 확보가 지연되고 있다는 게 노조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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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청 지하 시민청 앞에서 열린 서울교통공사노조 농성장에서 조합원들이 ‘실질임금 인상’과 ‘노동안전 쟁취’ 문구가 적힌 피켓을 부착한 채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 사진 : 박호수 기자 |
법원 판결로 확정된 통상임금의 반영도 불씨다. 노조는 공사가 ‘인건비 재원 소진’을 이유로 반영을 미루고 있다며 즉각 이행을 촉구한다.
아울러 올해는 경영 책임과 리더십 공백도 논란이다. 지난 3일 백호 사장 사표 제출 이후 서울시가 수리 방침을 밝히자, 노조는 “이제 오세훈 시장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직무대행 체제가 길어질 경우 교섭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공사 내부에서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만큼, 실질적 협상 주체인 서울시가 중재에 나서며 협상이 예상보다 빠르게 마무리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편, 공사와 노사 간 갈등이 매년 반복되는 배경에는 구조적 인사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2018년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무기계약직 1285명이 일반직으로 전환되면서 인건비 부담과 인사 적체가 동시에 불거졌다. 비핵심 업무 인력까지 정규직화되자 신규채용 여력이 줄고, 일부 현장에서는 안전관리 등 필수 인력의 결원이 제때 보충되지 못했다.
당시 공사 측은 “총인건비제에 따라 일반직 전환이 기존 인력의 임금을 잠식한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하지만, 2017년 양 공사 통합 당시 세운 ‘중복인력 단계적 감축’ 방침 탓에 신규채용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2018~2021년 사이 퇴직자 3100명에 비해 신규채용은 2625명에 그치며 인력 수급 불균형이 고착화됐다는 지적이다.
올해도 교섭 창구는 단일화 없이 개별 진행되고, 과반 노조인 1노조가 사실상 주도권을 쥔 구도는 작년과 같다. 당시 노조는 준법 운행에 들어갔다가 총파업 직전 밤샘 교섭 끝에 극적으로 봉합됐다.
박호수 기자 lake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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