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종료 이후 국내 증시 호재 부재
환율 상승도 부담…조정 지속 우려
[대한경제=권해석 기자]외국인투자자가 국내 증시에서 빠르게 이탈하는 데는 미국발 AI(인공지능) 거품론이 우선적으로 지목되는 분위기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이후 국내 증시에 마땅한 호재가 없는 상황에서 그간 코스피 시장의 가파른 상승세 따른 피로감까지 겹치면서 차익 실현에 나섰다는 평가가 많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7일까지 외국인투자자는 코스피 주식 7조2640억원을 순매도했다. 올해 외국인투자자는 지난달까지 5조6534억원을 순매수하고 있었는데, 이달 매도세가 거세지면서 지난 7일 기준으로 1조6103억원 매도우위로 전환했다.
특히 이달 들어 외국인투자자는 SK하이닉스(3조7150억원)와 삼성전자(1조5030억원) 두 종목에서만 순매도액이 5조2180억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전체 외국인투자자 순매도액의 72% 수준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AI 산업의 토대가 되는 반도체 공급의 핵심적인 기업으로, AI 거품론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으면서 외국인투자자 매도세가 집중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미국을 중심으로 AI 산업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의 주요 기술 기업을 중심으로 AI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 중인데, 이 과정에서 투자금을 부채로 충당하려는 움직임이 나오면서 과열 우려가 제기된다.
최근 생성형 AI인 챗GPT 운영사 오픈AI의 AI 칩 구매 비용에 대한 정부 보증 지원 언급이 대표적이다. 미 백악관이 “구제금융은 없다”고 선을 그었는데, 시장에서 AI에 대한 과잉 투자 우려가 커졌다.
이에 따라 미국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이 이달에만 3%가량 하락했고, 그 여파가 국내 증시에도 도달하면서 외국인투자자가 국내 AI 수혜 종목을 중심으로 비중을 줄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증시에 뚜렷한 추가 상승 동력이 없다는 점도 외국인투자자가 매도 버튼을 누르게 하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31일과 이달 1일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을 전후로 한미 관세협정 타결, 미중 정상회담을 통한 무역갈등 완화 등 증시에 호재성 사건이 이어졌지만, 이를 이어받을 추가적인 재료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3일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4200선을 넘어 4221.87까지 오른 상황에서 외국인투자자가 차익 실현에 나설 적기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간 국내 증시 상승을 주도해 온 외국인투자자의 이탈은 국내 증시의 하락 압력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원ㆍ달러 환율이 1460원을 넘어서면서 매도 우위로 돌아선 외국인투자자의 투자 방향을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부담이다. 원화가 약세가 되면 국내 투자금을 달러로 바꿔야 하는 외국인투자자 입장에서는 환차손 위험이 높아져 투자를 꺼리게 된다.
증권업계에서는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높아지는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대신증권은 “상승 모멘텀과 기대감이 부재한 상황”이라며 “매물 소화 과정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간 국내 증시를 이끌어왔던 주도주의 조정 강도가 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KB증권은 “과거 강세 기간에 주도주였던 종목이 조정 기간에 낙폭이 큰 반면 소외주였던 업종들이 조정 기간에는 선방하는 패턴이 관찰된다”면서 “조정 초반에 강세를 보이는 소외주 중심으로 단기 대응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국내 증시가 조정을 겪더라도 반도체 등 기존 주도주의 실적 악화가 배경이 아니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주도주의 실적 모멘텀은 여전히 유효하다”면서 “최근의 주가 조정을 주도주 비중 확대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해석 기자 hae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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