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구역 밖 완화” vs “하늘 가린다”
市, “리버풀 등은 훼손 사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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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석 국무총리가 10일 서울시의 종묘 앞 고층건물 허용과 관련해 허민 국가유산청장,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등과 함께 종로구 종묘를 방문, 고층건물 재개발 지역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 사진 : 연합 |
[대한경제=박호수 기자] 세계문화유산 종묘 앞 스카이라인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4구역 건물 높이 제한 완화를 두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이 반발하고 있고, 김민석 국무총리까지 현장을 찾으면서 논란은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정면충돌로 번졌다.
10일 김민석 국무총리는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해지될 정도로 위협적”이라며 서울시의 종묘 앞 초고층 개발 계획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날 종묘 현장을 직접 찾아 “서울시의 발상은 근시안적 단견”이라고 지적하며 법ㆍ제도 보완을 지시했다. 이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곧바로 “정부와 서울시 중 무엇이 근시안적 단견인지 공개토론으로 확인하자”며 정면 대응에 나섰다.
이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세운상가 일대를 둘러싼 ‘보존과 개발’의 충돌은 20년 넘게 이어져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에도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하던 세운4구역 재개발이 문화재청 심의에서 제동이 걸린 바 있다. 당시 문화재청은 “종묘 정전에서 최상층이 세 층 이하로 보여야 한다”는 조건을 달며 높이를 122m에서 50m 수준으로 낮췄고, 결국 사업성 악화로 사업은 멈춰섰다. 이후 박원순 전 시장 시절에는 ‘도시재생’으로 선회했다가, 오 시장 복귀 후 ‘녹지생태도심 재창조’라는 청사진을 내걸며 철거ㆍ재개발 방식이 부활했다.
서울시는 “낙후된 도심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강조한다. 오세훈 시장은 “세운지구를 비롯한 종묘 일대는 폐허나 다름없는 상태”라며 정비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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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세운4구역 모습. / 사진 : 연합 |
반면 문화유산 당국은 “종묘 앞 고층 건물은 조선왕실 유산의 역사문화경관을 위협한다”며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취소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중앙정부는 관련 법령 개정까지 검토하며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서울시는 “세계유산 지정 해제 우려는 과장된 해석”이라고 맞선다. 시 관계자는 “언론에서 얘기하는 (해외) 취소 사례는 아예 훼손이나 변형을 한 것이고, 우리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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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버풀 피어 헤드(Pier Head) 일대의 역사적 건물들(왼쪽 큰 시계탑 건물이 왕립 리버 빌딩)과 배경에 들어선 현대식 고층건물들. 이러한 고층 개발이 항만 도시 경관의 조화를 깬다는 이유로 유네스코에서 제외됐다. / 사진 : 위키피디아 |
독일 드레스덴 엘베계곡은 낭만주의 경관으로 평가받던 유산 중심부를 4차선 다리가 가로지르며 문화경관의 진정성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2009년 유네스코에서 삭제됐다. 영국 리버풀 해양상업도시는 항만 재개발과 브램리무어 독 매립, 축구 경기장 건설 등으로 18세기 해양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완전히 변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21년 세계유산에서 제외됐다.
두 사례 모두 ‘높이’ 보다는 ‘핵심구역의 완전성 상실’이 문제였다. 유네스코는 드레스덴을 두고 “문화경관의 중심을 관통했다”라고, 리버풀에는 “복원 불가능한 특성 손실이 발생했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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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레스덴 엘베계곡의 경관을 가로지르는 발트슐뢰스헨 다리(Waldschlösschenbrücke). / 사진 : 위키피디아 |
다만 유네스코의 기준은 단순히 행정 경계로 판단되지 않는다. 세계유산협약은 개발이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훼손할 경우 거리와 관계없이 영향평가(HIA)를 권고한다. 문화재청은 이 절차를 요구하지만, 서울시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전문가들은 서울이 드레스덴이나 리버풀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면서도 “절차적 투명성과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재 전문가는 “정쟁처럼 맞서는 동안 시민은 종묘가 어떤 도시 경관으로 남아야 하는지 논의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제 기준에 맞춘 공개 평가와 시뮬레이션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서울의 도시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도 이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서울이 ‘로마와 아테네처럼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로 갈 것인가’, 아니면 ‘뉴욕과 도쿄처럼 초고층 스카이라인을 택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풍납토성, 북촌, 서촌 등에서도 비슷한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송파구 풍납토성은 백제 왕성 유적 위에 아파트가 들어서며 지금도 규제와 재산권 갈등이 첨예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번 결정이 문화재 인접 지역 재건축의 선례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호수 기자 lake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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