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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대 칼럼니스트 |
필자는 2010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 ‘그리스의 신과 인간’ 특별전 개막식에 참석하여 그 깊은 영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중 가장 감명 깊었던 작품은 ‘원반 던지는 사람 (Diskobolos)’이었다. 이 작품은 알몸의 육상선수가 원반을 던지기 직전의 찰나를 포착하고 있다. 동(動)과 정(靜)이 조화된 순간을 통해 생동감 있는 모습을 표현하며,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그리스의 정신을 잘 구현하고 있었다.
또한 ‘제우스’, ‘헤라’, ‘아프로디테’, ‘헤라클레스’ 등 그리스 신화의 신과 영웅 조각상은 물론, 고대 올림픽 장면이 새겨진 화려한 장식병들이 대거 전시되어 마치 신들의 향연에 초대된 것 같았다. 영화 ‘알렉산더’에서 여주인공 안젤리나 졸리가 착용한 귀걸이의 진품을 비롯해 매혹적인 금장식품들도 필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 전시회를 통해 받은 깊은 인상은 이후에도 필자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영향을 주었으며, 최근에는 그리스 관광부 장관과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지난 8월 27일 필자는 서울 마포 나루호텔에서 열린 올가 케팔로지아니(Olga Kefalogianni) 그리스 관광부 장관 방한 환영 축하연에서 그녀를 직접 만나는 영광을 가졌다. 이번 방한은 단순한 관광 홍보를 넘어, 오랜 세월 그리스와 한국을 이어온 깊은 문화·역사적 유대를 재확인하는 뜻깊은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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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8월 27일 서울 나루호텔에서 열린 그리스 관광부 장관 올가 케팔로지아니(Olga Kefalogianni)환영 축하연에서 최정대 대표와 케팔로지아니 장관이 환담을 가진 뒤 기념 촬영을 했다. /사진: 최정대 대표 제공 |
“관광은 단순한 즐거움만이 아니다. 그리스에서 관광은 정체성의 표현이자 경제 활동이며, 꿈을 실현하는 방식이다.” 케팔로지아니 장관의 이 발언은 관광이 그리스의 문화유산을 공유하고, 국가 간 상호 이해를 증진하는 문화외교의 수단임을 잘 보여주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모습을 한 신들을 찬미하였고, 로마 제국은 그리스를 지배하면서 그 문화를 흡수하고 계승하여 세계 곳곳에 확산시켰다. 오늘날 그리스는 고대 유적과 유서 깊은 도시들이 매일 황금빛 햇살에 물드는, 영원한 매력의 땅이다.
그리스는 철학, 연극, 과학, 수학, 민주주의, 올림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양 문명의 요람’으로 평가받는다. 이 오랜 가치와 전통은 시대와 공간을 넘어 현대인의 삶과도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인본주의적 가치는 민주주의의 태동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놀랍게도 한국의 역사 속에서도 그리스 문명의 간접적 흔적이 발견된다.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1975년에 발굴된 황남대총 유리병은 목이 길고 계란형 몸통에 굽이 있으며, 손잡이가 달린 형태로, 주둥이가 새의 부리처럼 생긴 ‘봉수형(鳳首形) 유리병’으로 불린다. 이러한 형태는 고대 그리스의 포도주 주전자인 오이노코에(Oinochoe) 양식에서 유래하였다.
이 유리병은 4~5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제작 기법상 ‘로만 글라스(Roman Glass)’ 로 분류된다. 신라에서 자체 제작된 것이 아니라, 로마 제국이나 사산조 페르시아, 시리아–팔레스타인 등 서역 지역에서 실크로드 또는 해상 무역을 통해 신라로 전래된 수입품이다.
당시 신라에서 유리는 매우 귀한 재료였기 때문에, 이 유리병은 손잡이가 파손되자 금실로 감아 수리하여 재사용할 정도로 소중히 다루어졌다. 이는 단순한 장식품을 넘어, 신라 사회에서의 높은 가치와 위상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황남대총 유리병(국보 제193호)은 고대 그리스의 특정 주전자 형태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수백 년 후 로마 시대 혹은 그 주변 서역 지역에서 제작되어 신라로 유입된 귀한 외래 유물로, 한–그리스 고대문화교류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렇듯 고대에 맺어진 문화의 인연은 세월의 강을 건너 현대사 속에서도 변함없이 두 나라를 이어주고 있다.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리스는 먼 이국의 땅에 1만 명이 넘는 병력을 파병하며 자유와 인류애를 실천했다. 그들의 희생은 오늘날에도 한국인의 마음속에 따뜻한 감사와 존경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 그리스가 관광을 통해 한국과의 새로운 교류를 모색하는 노력은 단순한 산업적 행보가 아니다. 그것은 수천 년에 걸친 문화의 인연과, 전쟁 속에서 피어난 우정을 다시금 확인하며 서로의 마음을 잇는 인류적 가교라 할 수 있다.
최근 그리스는 한국 및 국제 항공사들과 협력해 아테네와 인천을 연결하는 최초의 직항 노선 개설을 추진 중이다. 이는 양국 간 이동을 한층 편리하게 할 뿐 아니라, 두 나라를 상징적으로 이어주는 새로운 가교가 될 전망이다.
오늘날 아테네는 세계적인 관광지이자 그리스의 수도로, 서양 문명의 뿌리이자 고대 그리스 문명의 상징으로 자리한다. 또한 그리스 신화 속에서도 아테네와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가 전해지며, 예술과 철학의 도시로서 변함없는 빛을 발하고 있다.
그리스 관광부 장관의 방한 두 달 후인 10월 3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Yiayia and Friends(이아이아와 친구들)’에서는 ‘Greek Day in Seoul’ 행사가 열렸다. 그리스의 전통 제품과 음식, 와인이 한자리에 모인 이 자리에서, 주한 그리스 대사관의 콘스탄티노스 다스칼로풀로스(Konstantinos Daskalopoulos) 경제외교 참사관은 손님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며 그리스의 환대와 활기찬 요리 문화를 생생히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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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10월 30일 서울에서 열린 “Greek Day in Seoul” 행사에서 최정대 대표와 주한 그리스 대사관의 콘스탄티노스 다스칼로풀로스(Konstantinos Daskalopoulos) 경제외교참사관가 한-그리스 문화교류에 대해 환담한 뒤 기념 촬영을 했다. /사진: 최정대 대표 제공 |
행사장 한쪽에서는 그리스 와인이 잔을 채우며 은은한 향을 풀어내었다. 필자는 ‘그랑 리저브 (Grand Reserve 2019)’ 한 모금을 음미하며, 마치 고대 그리스의 영혼과 순간적으로 교감하는 듯한 감동을 느꼈다. 예술, 지혜, 문화, 조화의 정수로 빛나던 그리스의 세계가 눈앞에 생생히 펼쳐지는 듯했다.
그리스의 맛과 향, 그리고 따뜻한 환대가 서울 한복판에서 펼쳐진 "Greek Day in Seoul"은 단순한 문화 체험을 넘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감각적인 순간이자 두 나라의 우정을 깊이 체감할 수 있는 특별한 장이었다.
필자 역시 이번 만남과 행사를 통해 그리스의 유산과 정신이 한국과 얼마나 깊은 공명(共鳴)을 이루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이러한 문화 교류의 장은 단순한 교감에 그치지 않고, 두 나라 국민 간의 상호 이해와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하는 민간 외교의 소중한 발걸음이기도 하다. 두 나라가 각자의 찬란한 전통을 지키면서도 서로를 존중하고 배우며 함께 나아간다면, 그 길은 단순한 왕래가 아닌 미래 세대를 위한 진정한 문화적 동행이 될 것입니다.
최정대 칼럼니스트 (대광상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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