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층부터 작업…절차 위반 의혹”
정규직 1명ㆍ비정규직도 다수 투입
李대통령 “책임자 지위 불문 엄정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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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사고 8일째인 지난 13일 마지막 남은 매몰자 1명을 찾기 위해 동원된 중장비가 무너진 보일러 타워 구조물을 해체하고 잔해를 옮기고 있다. / 사진 : 울산소방본부 제공 |
[대한경제=박호수 기자]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 사고의 매몰자 수습이 모두 완료되면서, 사고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향한 정부 수사가 본격적으로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엄정한 진상 규명을 지시한 데 이어,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까지 발주처 책임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수사 강도는 한층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7명이 사망하고 2명이 다친 이번 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16일 밝혔다. 이날 이 대통령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현장 안전관리가 부실하지는 않았는지, 공기 단축에 쫓겨 무리한 작업이 강행된 것은 아닌지 면밀히 조사하겠다”며 “책임자는 지위나 직책을 가리지 않고 엄정히 처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관계 부처는 전 사업장의 안전 실태를 제로베이스(원점)에서 다시 검토하라”며 “겨울철 위험 작업장 안전 점검도 한 치 소홀함 없이 진행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번 사고는 44년 된 노후 보일러 타워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발주처는 한국동서발전, 시공사는 HJ중공업, 발파 전문업체는 코리아카코다. 부산고용노동청은 세 기관 관계자를 모두 조사 대상에 올렸으며, 매몰자 수색 때문에 미뤄졌던 해체 공사 주요 관계자 소환도 곧 이뤄질 예정이다. 현장 합동감식과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도 조만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 당국은 △안전관리 미비 여부 △위험 보고 여부 △개선 지시 여부 △이행 여부 등 사고 전 과정의 절차 준수 여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번 참사의 핵심 쟁점은 ‘사전 취약화’ 작업이다. 붕괴 당시 작업자들은 발파 전 타워가 목표 방향으로 쉽게 무너지도록 기둥과 철골 구조물을 미리 잘라 안정성을 낮추는 취약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HJ중공업이 작성한 ‘울산 기력 4ㆍ5ㆍ6호기 해체공사 안전관리계획서’에는 취약화를 지상 1m와 12m 두 곳에서만 하도록 돼 있다. 이를 위해 지상부터 14m 사이 설비류와 철골이 모두 철거된 상태였고, 63m 높이의 타워는 네 개 기둥만 남아 상부를 지탱하는 불안정한 구조였다.
그런데 사고 당시 작업자들은 계획서에 없는 25m 지점에서 취약화와 방호(비산물 방지와 소음 저감)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미 불안정한 기둥 위에서 상층부까지 추가 취약화를 건드린 셈이다. 중앙사고수습본부도 브리핑에서 이 위험성을 시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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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화력발전 붕괴 사고 중앙사고수습본부 공동 본부장인 김영훈(가운데)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5일 오전 사고 현장 앞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사진 : 연합 |
지난 10일 현장에서 취약화 현황을 묻는 질문에 오영민 중수본 대변인은 “25m는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취약화를 안 한다”고 답했다. 이 작업은 앞선 4호기에서 100% 완료됐고, 5호기에서도 반복된 정황이 확인되면서 붕괴의 직접적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발주처인 동서발전의 ‘기력 4ㆍ5ㆍ6호기 해체공사 기술시방서’에는 ‘사전 취약화 작업은 최상층부터 하고, 상층 부재 작업이 끝나기 전에는 아래층 주요 지지부재 취약화를 해선 안 된다’고 명시돼 있어, 순서 위반 여부도 규명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시공사와 발파업체가 올해 3월 서천화력발전소 해체 과정에서 발파 후 건물이 넘어지지 않은 사례가 있었다는 점도 주목된다. 울산 현장에서 단번에 타워를 무너뜨리기 위해 계획보다 강도 높은 취약화 지시가 내려졌는지 여부도 수사선상에 있다.
안전관리 체계의 제도적 사각지대도 드러났다. 울산시 남구에 따르면 보일러 타워에 앞서 철거가 시작된 본관 건물(지상 5층, 연면적 3만8240㎡)은 지난해 11월 해체 허가를 받아 상주 감리 등 강화된 규정을 적용받았다. 그러나 철재 구조물인 보일러 타워는 건축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자체 해체 허가나 신고 대상조차 아니었다. 63m에 이르는 대형 구조물 해체가 법적 관리 밖에서 진행된 셈이다.
작업자 구성 문제도 조사 대상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번 사고와 관련 “(당시 작업자 중에) 정규직이 1명이고 나머지가 다 비정규직이었다”며 전문성 부족을 꼽았다.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는 “한 근로자는 플랜트 건설 일이 처음으로, 인력업체 소개로 3일부터 일용직으로 근무하다 6일 사고를 당해 숨졌다”고 밝혔다.
이는 기술시방서에 적힌 ‘우수한 기능공을 동원해 안전하게 작업하도록 한다’는 조항과 충돌할 수 있다.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비숙련 노동자들이 무리하게 투입된 것은 아닌지 규명돼야 한다”며 “이는 형태를 달리한 ‘위험의 외주화’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한편, 참사는 지난 6일 오후 2시 2분, 가로 25mㆍ세로 15.5mㆍ높이 63m 규모 보일러 타워 5호기가 붕괴하면서 발생했다. 현장에 있던 9명 중 7명이 매몰돼 숨졌고, 2명은 자력으로 탈출했으나 중경상을 입었다.
박호수 기자 lake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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