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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대법원 판결이었다. 문화재 인근 고층 건축물 규제 완화를 두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의회 소송에서 대법원이 시의회의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이에 종묘에서 약 180m 떨어진 세운4구역에 고층빌딩을 세울 길이 열리는 듯 보였다.
그러나 중앙정부 관리들이 막을 방법을 찾겠다고 나섰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가세했다. 시민의 재산권을 지켜야 하는 서울시장이 세운4구역을 방치할 수 없듯이 문화재 소관 부처인 문체부나 국가유산청의 입장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총리의 개입은 결이 다르다. 대법원의 판결에도 멈추지 않는 갈등 사이에서 총리가 한쪽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대목은 세계문화유산은 종묘이지 종묘에서 보이는 경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종묘에서 보는 경관이 아름답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고 경관 때문에 세계문화유산이 된 것도 아니다. 종묘는 관람대나 전망대가 아니다. 같은 논리라면 역시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이나 수원 화성 등에서 바라보는 경관도 규제해야 할 것이다. 현재 종묘 돌담길에는 술집이나 상점들이 즐비하다. 먹고 마시고 사진 찍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멀리 시각적 훼손이 문제라면 바로 옆 청각적 방해는 이대로 방치해도 될까.
종묘에 고층빌딩을 가릴 커다란 나무를 심자는 농담도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농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접점을 찾자는 의견을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한강버스가 멈춰 서자 총리는 다시 일갈했다. 시민 안전 문제라 오세훈 시장으로서는 할 말이 없게 됐다. 왜 이리 서둘렀을까. 한강버스가 서울시 교통지옥을 해소할 묘안도 아니고 유람선에 머물 것이 뻔한데 무리수를 뒀다. 역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안전 문제가 불거진 것은 정해진 결론이었을지 모른다.
총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또 한 번 문제를 제기했다. 이번에는 ‘감사의 정원’이었다. 서울시는 한국전 참전 연합국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광화문에 담을 예정이다. 여기서도 납득이 안 되는 대목이 있다. 무릇 기념물은 그곳과 연관이 있는 곳에 설치하는 게 자연스럽다. 광화문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는데 세종대왕 동상을 또 만들 때도 탐탁지 않았다. 새로 선출된 시장마다 하나씩 들여놓으면 광화문은 금세 꽉 차버릴 것이다. 당초 광화문에 커다란 태극기를 게양하자는 계획도 추진됐는데 ‘태극기 부대’가 광화문을 점령했을 때였으니 의도가 의심스러웠다. 역동적인 공간인 광화문을 추모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생각도 의아스럽다.
이래저래 총리의 지적에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시점은 의심스럽다. 원투를 맞은 오 시장에게 한방 더 먹이는 모양새인데 아무래도 내년에 지방선거가 치러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김 총리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은 더욱 잦아진다. 물론 총리가 출마하지 않겠다고 거듭 확인했지만, 이재명 정부에게 내년 지방선거는 국정에 대한 국민의 첫 평가라는 점에서 승리가 절실하다. 여야 모두 벌써부터 지방선거 준비에 나서고 있다. 그리고 서울은 가장 치열한 전장이 될 것이다.
총리와 시장의 공방을 보고 있자면 지방선거는 이미 시작됐다. 과열 조짐까지 보인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책이나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상대방을 공격하는 정쟁이 지배한다.
올해는 지자체장을 주민이 직접 뽑기 시작한 지 30년이 된 해이다. 그러나 여전히 중앙정부, 정권에 대한 평가가 지방선거에서의 당락을 좌우한다. 지자체장도 행정이 아닌 정치적 선명성을 부각하는 데 노력한다. 지방자치 성숙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정치적으로는 아직도 자치를 이루지 못한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여전히 유권자들은 지방선거를 통해 중앙정부를 심판한다. 정치권은 그렇게 하자고 선동한다.
그러나 지자체장 선거는 이재명이나 윤석열을 평가하거나 심판하는 자리가 아니다. 지방자치행정의 성과와 새로운 비전에 대한 평가가 온전히 당락을 가를 때 지방자치가 더욱 성숙해질 것이다.
김정석 정치사회부장 j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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