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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호반건설, 608억 과징금 중 60%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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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11-20 14:07:50   폰트크기 변경      
‘무리수 과징금’ 부메랑… 법조계 “줄패소 가능성”

공정위, ‘벌떼입찰’ 제재 첫 성적표

“과다한 경제이익으로 보기 어려워”


실적 부풀리기식 과징금 논란
다른 건설사 처분도 취소 촉각
법적 전문성 부족 문제 도마위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이른바 ‘벌떼 입찰’을 통해 아파트를 건설할 수 있는 공공택지를 다수 확보한 뒤 총수 아들의 회사에 소유권을 넘기는 방식으로 내부거래를 한 호반건설에 부과된 과징금 608억원 중 약 60%인 364억여원을 취소해야 한다는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2년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의뢰로 시작된 중견 건설사 5곳에 대한 벌떼 입찰 제재의 첫 성적표다.


하지만 첫 성적표치고는 비교적 초라하다는 게 법조계의 반응이다. 공정위가 300억원이 넘는 과징금 환급은 물론 이자 격인 환급가산금까지 물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공정위의 ‘실적 부풀리기’ 식의 과징금 부과가 불러온 필연적 결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초동 대법원 청사/ 사진: 대법원 제공


◇“공공택지 전매, 과다한 경제상 이익 제공 아냐”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20일 호반건설과 8개 계열사가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명령을 취소해 달라”며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공정위는 2023년 6월 호반건설이 호반그룹 창업자 김상열 호반장학재단 이사장의 장남과 차남의 회사인 호반건설주택과 호반산업 등을 부당하게 지원하고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등 부당 내부거래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608억원을 부과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호반건설은 2013∼2015년 공공택지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여러 회사를 입찰에 참여시키는 벌떼 입찰로 낙찰받은 23곳의 공공택지를 호반건설주택과 호반산업에 양도(전매)했다.

이들 공공택지에서는 5조8575억원의 분양매출과 1조3587억원의 분양이익이 발생했는데, 이런 경제적 이익은 김 이사장 아들의 회사 몫으로 돌아가 경영권 승계의 밑거름이 됐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었다.

이 과정에서 호반건설은 벌떼 입찰에 동원된 계열사 19곳에 입찰 참가 신청금을 무이자로 빌려주기도 했다.

공공택지 입찰에 참여하는 회사는 택지 공급가격의 5% 수준에서 책정되는 입찰신청금을 내야 하며, 당첨되지 않으면 되돌려 받는다. 호반건설이 무상으로 대여해 준 입찰신청금은 1조5753억원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함께 호반건설은 택지 양도 이후에도 총수 2세 회사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지급 보증 2조6393억원을 지원하고, 호반건설이 일부 맡아 진행하던 936억원 규모의 건설공사도 2세 회사에 이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호반건설은 공정위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현행법상 공정위 처분에 불복하는 소송은 일반적인 3심제와 달리 ‘서울고법-대법원’의 2심제로 이뤄진다. 공정위 심결 자체가 사실상 1심으로 인정되는 구조다.

서울고법은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가운데 △공공택지 전매와 △입찰신청금 무상 대여 등 2건에 대한 과징금 364억6100만원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택지개발촉진법령상 공공택지를 ‘공급가격을 초과하는 가격’에 거래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아 호반건설이 공공택지를 공급가격에 전매한 것 자체를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제공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서울고법은 “공정거래법이 사업기회 제공행위를 부당지원 행위의 유형으로 정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공공택지를 전매함으로써 공공택지 시행사업의 기회를 제공한 행위를 부당한 지원행위로 제재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입찰신청금 무상 대여에 대해서도 서울고법은 지원 금액이 회사별로 820만∼4350만원에 불과해 ‘과다한 경제상 이익’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다만 △PF 대출 무상지급 보증과 △건설공사 이관 등 나머지 사안에 대해선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결정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판단했다.

호반건설과 공정위는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의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 등의 잘못이 없다”며 양측의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예견된 결과… 공정위, 법적 전문성 부족”

법조계에서는 이번 대법원 판단에 따라 대방건설ㆍ제일건설ㆍ우미건설 등에 부과된 수백억원대 과징금 부과 처분도 비슷한 이유로 줄줄이 취소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사실상 예견된 결과’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공정위는 조사 기능과 심판 기능이 분리돼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기능이 뒤섞여 있는 데다 심판 역할인 공정위원 중 법률가의 비중이 낮아 법적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 9월 취임한 주병기 공정위원장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법률 전문가는 아니다.

결국 법적 전문성이 충분하지 않은 공정위의 판단은 비슷한 사건인데도 처분 기준이 들쑥날쑥할 뿐만 아니라, 예측 가능성도 떨어진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실제로 공정위의 벌떼 입찰 제재 사례를 보면, 제일건설ㆍ중흥건설ㆍ대방건설 등은 모두 지원 대상이 총수 2세나 배우자 등 특수관계인의 회사였는데도 과징금은 100억~200억원 수준에서 결정됐다.

반면 우미건설의 경우 주병기 공정위원장 취임 이후 전원회의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최근 483억원의 과징금 부과와 함께 검찰에 고발됐다.

심지어 우미건설은 5개 지원 객체 중 4곳은 특수관계인 회사가 아니었고, 지원 의도 역시 입찰에 필요한 ‘최소 실적 확보’ 목적의 공동시공 기회 제공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건설업계에서도 특수관계인 등 ‘편법적인 부의 이전’에 대한 가벌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다른 업체에 비해, 일감 몰아주기 성격이 없는 우미건설에 더 큰 과징금이 부과되고 고발이 이뤄진 점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거래 사건 전문가인 A변호사는 “공정위의 사실관계 평가 기준이 ‘위원장이 누구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면, 공정위 처분에 사실상 1심 판결과 같은 효력을 부여해 2심제로 운영하는 현행 체계는 부당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공정위의 준사법적 기능을 강화하고 공정위원들이 객관적ㆍ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개선하지 않는다면, 공정위 처분에 대한 불복소송을 서울고법 전속 관할로 묶어둔 현행법을 개정해 3심제로 전환하는 등 기업의 방어권을 충실히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호반건설 “공사비 지급 보증은 업계 관행… 제도 정비 필요”

호반건설은 판결 직후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2019년 공정위 조사로 제기된 각종 의혹이 해소됨에 따라 앞으로 공정과 원칙을 기반으로 한 경영활동으로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소송의 핵심 쟁점이었던 공공택지 명의 변경을 통한 ‘2세 승계 지원’ 논란은 이번 판결로 해소됐을 뿐만 아니라, 벌떼 입찰과 관련해서도 올해 5월 검찰의 무혐의 처분으로 수사가 종결된 만큼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등의 의혹도 벗었다는 게 호반건설의 입장이다.

다만 호반건설은 PF 대출 무상지급 보증에 대한 과징금 부과 처분이 확정된 데 대해서는 “시공사가 시행사의 공사비에 대한 지급 보증을 해 주는 것은 업계의 관행으로 이를 인정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크다”며 “업계 차원의 논의를 거쳐 필요한 제도적 정비를 건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건설공사 이관에 대한 과징금 부과에 대해서도 “특수관계인에게 실질적으로 귀속되는 유ㆍ무형의 이익이 없음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을 냈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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