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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20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는 20일 2019년 4월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발생한 여야 충돌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에서 국민의힘 전·현직 의원 26명 전원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로서 소속 의원들을 투쟁 노선으로 이끌었던 나경원 의원에게는 특수공무집행방해와 국회법 위반 혐의가 모두 인정돼 총 2400만 원의 벌금형이 내려졌다. 법원은 이번 사건을 “국회의 의사결정 규칙을 국회의원이 스스로 깨뜨린 첫 사례”라고 규정했다. 다만 형량 수준으로 볼 때 의원직 상실 기준에는 미치지 않아 이들 모두 공직을 유지할 가능성은 높아졌다.
이번 판결은 정치 지도자의 리더십에 대해 심각한 질문 하나를 던진다. “리더의 잘못된 판단은 어디까지 조직의 비용이 되는가.” 당시 나 의원이 보여준 리더십은 이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좋은 사례다. 그는 “입법 독주 저지”라는 명분에 몰입한 나머지, 법적 리스크와 예상되는 결과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소홀히 하고 자기 확신과 신념에 기대어 조직을 이끌었다.결과는 동료 의원들의 무더기 유죄 판결과 벌금형이라는 엄혹한 현실로 돌아왔다.
물론 다수당의 입법 독주에 비판과 저항은 필요하다. 그러나 명색이 법을 만드는 입법자로서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정당한 범위 내에서 움직여야 명분이 유지되고 국민 지지도 얻을 수 있다. 설령 합법의 영역에서 답을 찾을 수 없다면 경계선에서 멈춰 서서 국민 여론에 호소해야 하는 게 합리적 수순이고 전략적인 선택일 것이다. 더욱이 1년 뒤에는 2020년 4월 21대 총선이 예정돼 있어 잘잘못을 심판받을 수 있는 기회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 후신)이 참패한 사실을 보면,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자유한국당의 대처는 국민 기대와 상당히 거리가 있었음을 방증하고 있다.
나 의원은 이번 판결을 두고 “정치적 항거의 명분이 인정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판결문에서 ‘정치적 동기가 있었다’는 사실만 양형 사유로 언급했을 뿐, 행위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이 아니었다. 이를 ‘명분 승인’으로 해석하는 것은 여전히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확증편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에도 절차적 하자 등을 이유로 대며 “4대 4로 기각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결과는 ‘8 대 0’ 만장일치로 파면 결정이 나왔다.
정치 리더의 오판은 개인의 불행에서 그치지 않는다. 확증편향에 빠진 리더는 언제나 스스로 옳다고 믿고, 그 믿음에 맞춰 현실을 재해석하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리더를 따르는 구성원들은 합리적 선택보다는 내부 기류에 휩쓸려 집단 행동의 일원이 된다. 자유한국당의 패스트트랙 유죄 선고는 리더의 잘못된 판단으로 떼지어 절벽 아래로 떨어진, 한국 정치사의 ‘레밍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작금에 국민의힘 지지율이 고정지지층에 머물러 외연 확장에 실패하고 있는 배경에는 당 지도자급 인사들의 오판과 확증편향, 책임 회피 등이 반복되는 조직문화가 내부에 자리 잡아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국민의힘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도층 표심을 끌어안기는 어려울 것이다.
권혁식 논설위원 kwo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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