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김건완 기자] 전남 영광군 앞바다에는 변화와 도전에 맞서는 두 가지 파도가 일고 있다. 하나는 지방소멸과 기후 위기라는 현실의 파도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의 바람과 햇빛을 동력으로 위기를 넘어서려는 혁신의 파도다.
영광군은 바람과 햇빛 등 자연 자원을 군민의 공유부(共有富)로 규정하고, 재생에너지 개발로 발생한 이익을 지역화폐로 배당하는 ‘영광형 기본소득’, 이른바 ‘햇빛바람연금’을 시범 시행한다.
<대한경제>는 26일 장세일 영광군수를 군청에서 만나 이 프로젝트의 취지와 운영 방식, 기대 효과와 리스크를 들었다. 장 군수는 인터뷰 내내 “지역의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하며 영광군이 그리는 ‘바람과 햇빛 경제학’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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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세일 영광군수. |
◇시혜가 아닌 권리: ‘에너지 공유부’ 철학
인터뷰의 키워드는 ‘개념의 전환’이었다. 통상적 현금성 지원을 ‘수당’이나 ‘복지’로 부르는 대신, 영광군은 이를 연금이자 기본소득으로 명명했다. 장 군수는 그 이유를 “시혜(施惠)’가 아니라 ‘권리(權利)”라고 밝혔다.
기존의 복지정책이 가난을 증명해야 받는 시혜적 지원금이었다면, ‘햇빛바람연금’은 영광군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천연자원인 바람과 햇빛에 대한 정당한 배당금이란 설명이다.
재생에너지 개발로 발생하는 이익은 자본을 댄 사업자만의 독점물이 아니라, 삶의 터전을 내어준 지역 주민들과 나누는 것이 정의롭다는 철학에서 이 프로젝트는 출발한다.
장 군수는 이러한 구조개혁만이 “기후 위기 시대에 지역이 살아남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책이자 가장 공격적인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영광군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해 말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군민참여 및 개발이익 공유 조례’를 제정하고 전담 기구와 민관 협력단을 꾸리는 등 불과 1년 사이에 법적·조직적 기반을 빠르게 갖췄다.
이론적 논의에 머물지 않고 즉각적인 실행력을 보여준 덕분에, 올해 4월부터는 총사업비 260억 원 규모의 전남형 기본소득 시범사업(1인당 50만 원 지급) 대상지로 선정돼 제도의 실증 무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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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20일 열린 영광군기본소득위원 위촉식. |
◇투 트랙 전략: 지속 가능한 재원 확보
재원의 지속성은 정책의 핵심 변수다. 아무리 이상적인 정책이라도 재원이 없으면 지속 불가능하다. 영광군은 이를 위해 투 트랙 전략을 쓰고 있다.
첫 트랙은 기업 기여다. 대규모 발전사업자가 공유자원을 이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만큼, 계약 단계에서부터 발전기금 등으로 지역에 환원하도록 유도하고 공공부지에서 발생하는 발전수익을 기금에 적립한다.
두 번째 트랙은 주민 직접 참여다.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해 발전사업에 지분을 투자하고 배당을 받는 구조를 확산시킨다.
실제 사례로 관내 영농형 태양광 협동조합은 28가구가 지분 52%를 확보해 1인당 연 142만 원 수준의 배당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이는 주민이 단순 수혜자가 아니라 에너지 생산자이자 투자자가 되는 모델을 보여준다.
영광군이 주목하는 핵심 승부처는 해상풍력이다. 영광 앞바다에는 약 11GW(기가와트), 사업비 80조 원 규모의 해상풍력 클러스터 조성이 추진 중이다.
당장 내년부터 낙월해상풍력이 상업 운전을 목표로 하는 가운데, 군은 단계적 가동에 따라 지급 규모를 확대해간다. 2027년 연 20만 원 지급을 시작하고, 모든 단지 가동 시점인 2037년에는 군민 1인당 최대 연 353만 원 지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4인 가족 기준 연간 1400만 원이 넘는 소득 효과가 기대된다는 설명이다.
| 지난 5월 8일 전남 영광군 염산면 야월리 월평마을에서 열린 '영농형 태양광 발전' 준공식. |
◇현금을 넘어 생태계로: 자립 도시 건설
장 군수는 “돈은 마중물일 뿐”이라며 배당금이 산업 생태계로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휘발성 정책’에 머물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핵심은 운영·유지관리(O&M) 센터 조성이다. 해상풍력 단지는 장기간 가동되므로 정비·관리 인력이 필요하고, 이를 지역에서 충당하면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또한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지역에서 우선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 원칙을 통해 RE100 기업과 데이터센터를 유치하고, 수소특화단지 등과 잇대어 ‘전기 생산→기업 유치→일자리 창출→인구 유입’의 선순환 고리를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정부의 분산 에너지 특구 지정은 이 전략에 결정적 동력을 제공할 것이다. 배당금을 보고 왔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어 지역에 영구히 정착하게 만드는 궁극적인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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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30일 열린 영광군 재생에너지 주민 참여제도 설명회. |
◇성공을 위한 투명성·공정성 확보와 리스크
대규모 자금이 오가는 만큼 갈등 관리와 신뢰 확보가 필수다. 영광군은 투명·참여·형평을 3대 원칙으로 제시했다.
날씨나 전력 도매가격(SMP) 등에 따른 수익 변동성에 대비해 수익이 많을 때 저축하는 ‘완충 기금’을 도입해 지급 안정성을 확보해 둔다. 또 기금 운용과 지급 현황을 공개하는 데이터 대시보드를 구축해 투명성도 높일 계획이다.
분배의 공정성을 위해 어업인 등 직접 피해를 보는 주민에 대한 우선 배려, 거주기간 가중치 등 정교한 분배 기준을 다듬고 있다. 초기 자본이 없는 주민을 위해서는 소액 참여 펀드와 금융교육을 제공해 누구나 투자자가 될 수 있는 구조를 지향한다. 장 군수는 “누구나 투자자가 되는 열린 구조로 만드는 것을 핵심 가치”라고 귀띔했다.
주요 리스크로는 수익 불안정, 분배 갈등, 해상풍력 사업 지연, O&M 인력 부족 등이 있으며, 영광군은 완충 기금·투명한 정보 공개·교육·지원 프로그램으로 이를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 올해 전남영광군은 합계출산율 6년 연속 전국1위를 달성했다. |
◇인구 10만 자립 도시를 향한 항해
장 군수가 그리는 최종 목표는 외부 교부금에 의존하지 않는 인구 10만 자립 도시다. 영광군은 단기적으로 해상풍력 단계적 가동과 O&M 거점 착공을 통해 제도를 안착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산업 클러스터 완성과 상시 고용 확대를 통해 자립 도시를 완성하겠다는 이정표를 제시했다.
영광군의 ‘햇빛바람연금’은 지방소멸에 맞서는 실험적 저항이자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역발상이다. 장 군수는 “제도적 투명성 확보와 재원 안정화, 주민참여 확대가 뒷받침된다면 다른 농어촌 지자체에 시사점을 제공하는 모델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확신했다.
영광 앞바다의 바람이 군민의 지갑뿐 아니라 지역의 희망까지 채워줄 수 있을지, 전국 최초의 ‘자립형 소득재분배’ 실험의 항해가 이제 막 닻을 올렸다.
김건완 기자 jeon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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