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을 뒤엎고 창의성을 살려야 성공한다는 점에서 예술과 경영은 비슷하다. 경영과 미술은 상업성과 함께 공공성도 추구하기 때문에 한 뿌리에서 뻗어나간 다른 가지다. 두 분야에는 소통을 일깨워주는 '메세나'란 연결 고리가 있다.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미술은 아직도 변방 수준이다. 경영에 미술을 접목해 당당히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그룹은 K-아트를 세계 톱 클래스가 되도록 유망한 미술가 발굴과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 알렉산드라 카슈바의 '스펙트럼 통로' 사진= 아고스티노 오시오 제공 |
삼성그룹이 내년에도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 등에서 다채로운 미술 메세나를 통해 초일류 경영에 나선다. 예술가를 육성하고 전시 기획, 아트 마케팅까지 프로모션하며 세계적 기업의 문화사랑을 여지없이 보여줄 계획이다.
리움과 호암은 내년에 미술사와 비평 담론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여성 작가들의 선구적 작업을 비롯해 근현대미술 소장품을 새롭게 재조명할 방침이다. 특히 미술을 넘어 음악, 퍼포먼스, 디자인, 건축 등을 포괄하는 역동적 동시대 현장이 어우러지는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꾸며 삼성의 또 다른 예술사랑의 면모를 드러낸다는 전략이다.
우선 리움은 한국의 1세대 여성 설치미술가들의 작업을 선보이는 국제 교류 기획전을 대대적으로 준비 중이다. 김수자 이불 양혜규 문경원 등이 참여해 과학과 예술을 결합한 한국의 색다른 조형 아트를 국제 미술계에 드러낸다.
1990년대 이후 동시대 미술을 대표하는 국내외 작가의 개인전도 관전 포인트다. 2010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로 주목받은 독일 아티스트 티노 세갈(51)의 국내 첫 개인전(2월)이 대표적이다. 세갈은 ‘연출된 상황(constructed situations)’을 테마로 관람객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 과정을 여과없이 보여준다는 계산이다. 세갈의 25년 작품 세계를 응축한 신작은 물론 리움 소장품을 창의적으로 재구성해 만든 장소 특정적 라이브 작업 등이 벌써 눈길이 간다.
| 독일 아티스트 티노 세갈 사진=볼프강 틸만스 제공 |
세계 1세대 여성 설치미술가들의 선구적 작업을 모은 그룹전 ‘환경, 예술이 되다-여성 작가들의 공감각적 실험 1956-1976’ 역시 내년 전시의 백미로 꼽힌다. 5월 아동교육문화센터에 마련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알렉산드라 카수바, 주디 시카고, 마르타 미누힌, 리지아 클라크, 야마자키 츠루코 등의 작업을 만날 수 있다. 지구촌의 공동 과제인 기후 위기에 선재 대응하면서 환경의 중요성을 집중 조명한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뮌헨의 ‘하우스 데어 쿤스트’와 함께 열어 미술 애호가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겠다는 기획 의도가 깔려 있다. 빛, 소리, 일상적 소재 등을 활용해 제작한 작품을 통해 관람객이 직접 느끼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몰입형 환경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여성 자가들의 실험정신이 주목된다.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 구정아의 작품 세계 기획전(9월)도 독특한 볼거리로 여겨진다. 구정아는 자력이나 향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에너지의 흐름을 탐구하며, 세밀하면서도 모호하게 우리의 감각 질서를 교란시키는 독창적 작업을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작가가 구축한 개념 세계 ‘우쓰(OUSSS)’를 중심으로, M2전시장은 물론 로비, 벽 뒤, 고미술품 사이 등 미술관 곳곳에 작품을 배치해 관람객이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마주하는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호암미술관은 한국의 선구적 여성 조각가를 조명하는 회고전과 동시대 아시아미술 현장을 적극 반영하는 ‘아트스펙트럼’전을 기획한다.
3월에는 한국 여성 조각 1세대 작가 김윤신의 70여 년에 걸친 예술세계를 집중 조명한다. 호암이 처음 기획한 한국 여성작가 개인전이어서 벌써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전쟁 전후의 척박한 미술 환경을 극복하고 삶과 자연과 예술이 합일된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확립한 김윤신의 예술 전모를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합이합일 분이분일’로 대표되는 그의 나무 조각은 물론 초기 판화와 회화들까지 그의 ‘예술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유럽 최대 아트센터인 팔레 드 도쿄와 공동기획한 신진 작가 등용문 ‘아트스펙트럼 2026’을 리움에서 호암으로 옮겨 연다는 것도 미술계 관심거리다. 한국 신진 작가들의 발굴과 지원을 위한 플랫폼 '아트스펙트럼'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서다. 호암 측은 “아시아의 미술, 영화, 디자인, 건축, 실험 음악 등을 포괄하는 실험적 전시 형태를 시도한다”며 “미술관의 내외부와 기타 공간을 생동하는 무대로 변모시킬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리움과 호암의 전시 이외에도 4월에 리움 데크에 상설 전시될 특별 프로젝트도 눈길을 끈다. 멕시코 출신 작가 가브리엘 오로즈코가 세한삼우 (歲寒三友)를 주제로 한 신작들이 데크 공간을 자연 친화적이고, 개방적인 플랫폼으로 변모시킬 예정이다.
빅민선 삼성문화재단 홍보팀 수석은 “미술은 굴뚝 없는 콘텐츠 산업이기 때문에 미래의 유망 업종“이라며 ”미술에 관심을 갖는 관람객들을 위해 다양한 전시를 기핵했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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