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특위서 김기남 전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발언
중국엔 화웨이 있지만…韓 반도체 생태계는 ‘물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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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남 전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삼성전자 상임고문)이 한국공학한림원 반도체특별위원회 포럼서 발언하고 있다./사진: 강주현 기자 |
[대한경제=강주현 기자] “국산 AI(인공지능) 반도체 칩은 누가 검증해 줄 수 있나요?”
17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공학한림원 반도체특별위원회 포럼. 김기남 전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삼성전자 상임고문)이 던진 질문에 현장은 잠시 침묵했다. 그런 역할을 맡을 만한 기업이 선뜻 떠오르지 않아서다.
그는 이 질문에 앞서 중국 사례를 들었다. 중국의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같은 빅테크 기업들도 미국 엔비디아 GPU(그래픽처리장치)를 쓴다. 중국 정부가 “투자금의 절반은 자국산 칩을 써라”고 요구해도, 기업 입장에서는 검증 안 된 칩을 선뜻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곳이 화웨이였다. 화웨이는 2018년부터 자체 AI칩 ‘어센드(Ascend)’ 시리즈를 개발해왔다. 단일 칩 성능은 엔비디아보다 떨어지지만, 수백 개의 칩을 하나로 묶어 성능을 끌어올리는 ‘클러스터’ 기술로 격차를 좁혔다. 성능은 자사 클라우드 서비스에 적용해보는 방식으로 검증했다.
이후 딥시크, 아이플라이텍 등 중국 주요 AI 기업들이 화웨이 칩으로 모델을 훈련하고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국산 칩도 쓸 만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중국 정부는 이런 검증 결과를 바탕으로 자국 기업들에 “이제 국산 칩을 써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됐다.
결국 중국은 화웨이라는 ‘검증자’ 역할을 해주는 기업이 있어서 국산 AI칩 생태계가 돌아갈 수 있었다. 반면 한국에는 그런 역할을 할 곳이 있느냐는 것이 김 전 회장 질문의 요지였다.
그는 “AI반도체는 기존 부품을 단순히 국산으로 바꾸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라며 “누군가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우리나라에서 누가 하면 좋을지, 어디가 가장 역량이 있을지 묻고 싶다”고 했다.
이어 네이버를 거론하며 “네이버가 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고, 이날 포럼에서 제안된 ‘AI반도체 기술원’ 설립안에 대해서도 “저게 만들어져서 제대로 작동하려면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질문은 현장에서 나온 실제 사례 때문에 더욱 무거워졌다. 박재홍 보스반도체 대표는 이날 “산업부 국책과제를 하려면 수요기업이 필요한데, 국내 자동차 회사와 부품사에 제안했더니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보스반도체는 결국 독일 자동차 회사를 수요기업으로 삼아 과제를 수주했다.
그는 “정부 자금으로 하는 과제인데 국내 기업은 관심 없고 독일 기업이 나서는 현실”이라며 “대기업이 전략적으로 국내 반도체 육성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단순히 수요자 얘기만 할 게 아니라, 훨씬 큰 개념에서 역할 분담이 이뤄지지 않으면 (스타트업들이) 계속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회장은 1메가 D램부터 4기가 D램까지 세계 최초 기술 개발을 이끈 반도체 분야의 거목이다. 삼성전자에서 메모리 반도체 역사를 써온 인물로, 미국전기전자학회(IEEE) 석학회원이자 미국 공학한림원 회원에도 선정됐다. 지난해 2월에는 반도체특별위원회 출범을 주도했다.
강주현 기자 kangju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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