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연필 쇼묘 자화상 공개
김환기의 반추상 인물화도 출품
천경자 벗거벗은 ‘미인도’ 눈길
얼굴 그림은 언제나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인물화는 단순한 초상을 넘어 각 시대가 품은 감정과 가치, 예술가의 시선을 담아내는 중요한 회화 장르로 자리해왔다.
미술 대가들은 대부분 얼굴을 그릴 때 대상을 만나 성격을 파악하고 나서야 붓을 든다. 인물화란 겉모습만이 아니라 그 인물의 정신과 개성까지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대상 인물을 많이 보고 스케치하는 게 중요하다. 일부 작가들은 전체적인 분위기나 포즈, 표정 등에 대한 의견을 듣기도 한다. 전통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인물의 자세를 자유롭게 표현하면서도 개성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인물화는 삶의 흔적과 정신이 지문처럼 남는다.
![]() |
| 새결화랑이 다음달 17일까지 여는 ‘현대미술가 11인 인물화전’에 출품된 거장들의 작품들이 미적 아우라를 한껏 품어내고 있다. 사진=김윤섭 제공 |
한국 근현대미술의 대가 김인승을 비롯해 이인성, 김원, 김환기, 이중섭, 최영림, 이준, 박래현, 권옥연, 천경자, 정형모 등의 인물화 그림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22일부터 내달 17일까지 서울 청담동 새결화랑(대표 김시현)에서 열리는 기획전 ‘얼굴, 시대를 비추다’에는 대가들이 그린 인물화 수작 12점이 걸렸다. 작가별로 서로 다른 조형 언어와 기법을 통해, 한국 인물화가 어떻게 인간 존재와 시대의 풍경을 담아왔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인물화를 통해 ‘얼굴’ 을 매개로 시대의 정서와 인간의 내면을 조망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미술평론가 김윤섭 씨(예술공익재단 아이프칠들런 이사장) “새결화랑은 한국 현대미술의 큰 특징 중 하나인 다양성과 그 현대미술이 어떤 환경과 정서적 바탕에서 출발했는지에 큰 관심을 기울이며 출발했다”며 “ 이번 전시회는 그런 새결화랑의 비전이 담긴 전시로 작가 이름의 유명세에 앞서 한국 현대미술사에 의미 있는 작품들에 주목해온 작품 소장가의 의지와 도움으로 성사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사실적 재현에서 추상적 내면화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 얼굴들은 ‘시대의 초상’으로 읽힌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은 역시 이중섭의 자화상이다. 작고 1년 전에 작업한 연필 소묘 작품이다. 선율이 흐르는 얼굴 곳곳에 사랑과 희망이 쉼쉰다. 자화상을 ‘사랑과 희망의 산물’로 규정하는 그에게 그림은 이렇듯 절실함을 녹여내는 ‘삶의 용광로’ 같은 것이다. 삶과 예술이 하나로 응축된 작품으로, 예술가의 고단한 현실과 자존감을 동시에 전한다.
김환기의 인물화 역시 백미로 꼽힌다. 청색과 브라운 계통의 색을 주조로 작가가 사랑했던 단란한 가족이 담겨 김환기 작품의 원형을 보여준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가기 전 제작한 반구상 작품으로 도형과 형태가 어우러져 구상인 듯 추상화인 듯 보이는 작품이다. 점과 선, 색면을 거쳐 점진적으로 완전한 추상 세계인 전면점화에 도달하기 전 가느다란 검정색 필선으로 인물의 내면을 포착한 게 이채롭다.
한 발짝 옆으로 옮기면 천경자의 벌거벗은 ‘미인도’가 시선을 사로 잡는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여인의 나신을 사실적으로 잡아낸 작품이다. 외로움과 고독에 싸인 여인의 얼굴을 그려넣어 ‘정’과 ‘미’를 동시에 우려냈다. 우수에 젖은 검은 눈매에 얼핏 비치는 설렘은 고독한 감정을 극대화한 장치로 여겨진다. 신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내면적 자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게 특징이다.
사실주의 화풍의 대가 이인성의 ‘소년’은 식민지 시대의 슬픔과 현실 인식을 응축한 표정 묘사가 인상적이다. 단아하고 세련된 화면 구성의 초상으로 전후 근대 회화의 품격을 보여준다.
김원의 ‘소녀(명순이)’에서는 일상의 따뜻함과 순수한 정서가 전해지고, 최영림의 ‘만개’는 토속적 신앙과 원초적 생명성을 결합한 인물 형상으로 민족적 전통미가 돋보인다. 또 이준의 ‘자화상’은 격렬한 붓질을 통해 인간 실존의 고통을 가감없이 묘사했고, 박래현의 ‘자매’는 간결한 수묵과 담채로 소녀들의 정감과 연대감을 느끼게 해 준다. 권옥연의 ‘여인’은 회색조의 깊이 속에서 현대적 여성의 내면을 포착했고, 정형모의 ‘박정희 대통령’은 연필 소묘만으로 한 시대의 인물을 기록한 게 눈길을 끈다.
김시현 새결화랑 대표는 “이번 전시는 단순한 인물화 전시를 넘어, 한국 근현대사가 품은 정서적 풍경과 인간에 대한 예술적 성찰을 함께 조명한다”며 “각기 다른 시선으로 그려진 얼굴들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우리가 지나온 시대와 그 속의 인간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고 설명했다.
김경갑 기자 kkk10@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