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단일 산업을 넘어 국가 안보와 경제의 핵심 축이다. 세계 각국이 수백조 원을 쏟아부으며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이유다. 미국은 보조금과 규제로 투자를 끌어들이고, 중국은 막대한 재정 지원으로 추격에 나서고 있다. 기술 격차를 놓치는 순간 회복에 수년이 걸리는 것이 반도체 산업의 냉혹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반도체 정책이 전력 수급 문제를 이유로 흔들리는 모습은 우려스럽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한 보고회에서 ‘송전 거리 비례 요금제’를 언급하며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남쪽 지방에서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도 언론 인터뷰에서 “용인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입주하면 원전 15기 분량의 전력이 필요하다”며 “전기가 많은 지역으로 입지를 재검토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일부 지역 정치권과 시민단체까지 가세하면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론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전력 문제는 산업 입지를 뒤흔들 명분이 될 수 없다. 반도체는 전력 집약 산업인 동시에 전형적인 생태계 산업이다. 생산라인뿐 아니라 소재ㆍ부품ㆍ장비 기업, 연구개발 인프라, 숙련 인력이 유기적으로 집적돼야 경쟁력이 완성된다. 용인 산단은 기흥ㆍ화성ㆍ평택으로 이어지는 기존 반도체 벨트와 연계돼 최적의 입지로 평가돼 왔다. 이미 국가 전략으로 확정돼 토지 보상이 진행 중이고 착공을 앞둔 사업을 정치적 논란으로 흔드는 것은 산업정책의 신뢰를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다.
반도체는 타이밍 산업이다. 일정이 지연되면 그 공백은 곧바로 글로벌 경쟁국의 기회로 이어진다. 전력이 부족하다면 해법은 분명하다. 공장을 옮길 것이 아니라 전기를 공급해야 한다. 정부는 이전론을 키울 것이 아니라 논란을 조기에 차단하고, 전력 공급과 송전망 갈등 해소를 위한 명확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