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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910척 관리하는 선박왕...“K-해운의 기틀 다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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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1-18 15:49:26   폰트크기 변경      
권혁 시도해운 회장의 법인세 포탈혐의 무죄 판결 이후 관행과 합법


6·25 전쟁 발발 나흘 뒤 태어나 ‘전쟁둥이’로 자랐다. 1977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부모님과 친척 어른들이 그를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혼이 담긴 회사에 드나들면서 자부심으로 충만했다. 하지만 월급쟁이보다 사업 쪽에 더 마음이 땡겼다. 현대자동차 근무 경험은 이후 사업 방향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국산 자동차의 해외 수출 물량이 빠르게 늘어나는 흐름에 주목했다. 자동차 전용선을 중심으로 한 해상 운송사업을 준비했다. 1990년 전후 부산에서 동업자와 함께 시도물산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해운사업에 뛰어들었다.

1993년 일본 도쿄 신바시에 시도해운을 설립했고, 중고 자동차선을 확보해 선주사업을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사업을 확장했다. 사세는 빠르게 커졌다. 권혁 회장은 2004년 시도쉬핑 한국영업소와 유도해운을 설립하는 계기가 됐다. 2009년에는 시도항공여행사를 사들여 관광업에도 진출했다. 2005년 12월까지 모든 계열 회사들의 대표이사로 직접 운영했다. 2002년부터는 회장 직함으로 경영 전반을 총괄했다. 시도해운은 지난해 상반기 기준 선박 910척을 관리하는 13조 규모(거래 실적)의 초대형 해운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인 선박왕’이라고 불리는 권혁 시도해운 회장의 이야기다.

권혁 시도해운 회장                    서진=연합뉴스제공


권 회장이 과거 4100억원대 세금 포탈 혐의에 대한 국세청의 관행을 비롯해 회사경영 노하우, 나라 사랑을 담은 법원 탄원서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2013년 서울 고등법원 제4부 형사부에 제출한 탄원서에는 선박사업을 시작한 동기부터 재산형성 과정, 탈세 협의에 따른 결백함, 불우이웃 돕기 등과 같은 구구절절한 내용이 담겨있어 더욱 주목된다.

권 회장은 조세회피처에 거주하는 것처럼 위장해 세금을 탈루한 혐의를 받아 2010년 국세청의 집중 조사를 받았다. 당시 국세청이 산정한 추징금은 4101억원에 달했다. 국세청 고발 이후 검찰 수사가 이어졌고, 권 회장은 횡령, 저축 관련 부당행위, 조세범 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3년 2월 1심 재판부는 권혁 회장에게 징역 4년과 벌금 2340억원을 선고했다. 종합소득세 1672억원과 법인세 582억원이 포함된 액수였다. 이 판결로 권혁 회장은 법정구속됐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판단이 달라졌다. 시도그룹 핵심 해상운송 계열사인 시도카캐리어서비스(CCCS)를 둘러싼 법인세 포탈 혐의가 무죄로 인정되면서 판결의 방향이 바뀌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법인세 포탈 혐의를 제외하고 종합소득세 2억4000여만원 포탈 혐의만을 유죄로 판단했다. 형량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대폭 줄었다.

유죄로 인정된 부분은 선박 중개업자 명의 해외 계좌에 입금해 관리한 중개수수료와 배당소득 7억원에 관한 사안이었다. 2016년 2월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이 판결로 권 회장을 둘러싼 형사 절차는 사실상 일단락됐다.

권 회장은 “국세청의 주거지에 대한 판단착오와 관행 때문에 장기간 소송에 시달렸다”고 했다.
“1993년부터 2005년까지 일본에서 사업한 기간은 비거주자로 판단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국세청은 2006년 중국시장을 겨냥해 홍콩으로 이전한 이후 현재까지 국내 거주자로 판단한 것 같아요. 그러나 1993년 이후 2010년까지 저의 연중 체류기간이 가장 많았던 국가는 일본이었죠. 무일푼으로 사업을 일으킨 곳도 일본이고 거기서 사업활동을 했습니다. 일본 과세 당국도 2006년 4월까지 일본거주자로 인정해 원천소득세 및 현민세를 물렸구요. 한국대리점의 하도급 대리점에 불과해 매출액은 선주회사 매출액의 2~3% 수준이었죠. 해운 사업의 중심지가 한국이 아님은 말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는 “해외 사업자에게 국내 세금문제가 불거질거란 생각은 전혀 예상 못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미 2004년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았고, 해외 사업소득에 대해 세금신고하라는 얘기가 전혀 없었어요. 이때도 국내 거주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하면서 해외소득에 대해 과세를 했습니다. 탈세로 몰아 형사고발까지 당했구요. 사전에 세금부과에 대한 협의 통지 등 관련 절차를 생략하고 곧바로 세금부과와 출국금지를 한 것입니다.“

권 회장은 ”법치국가에서 전무후무한 일이 발생했다“며 ”정말 사업가로서는 청천벽력같은 사건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국세청은 내가 3000억원을 스위스 은행에 숨겨 놓았다는 허위소문을 퍼트리고 많은 돈을 번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당시에 돈을 번 곳은 국내 금융기관을 비롯해 조선소, 협력업체, 수리업체, 보험회사 등이었거든요.”

실제로 권혁 회장의 부는 해운 시황의 단기 변동에 의존하기보다 자동차 전용선이라는 특정 시장을 장기간 선점하며 축적됐다. 선박을 직접 보유하거나 실질적으로 지배하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장기 운송 계약을 맺는 방식은 운임 등락과 무관하게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을 가능하게 했다. 선박 자체의 희소성과 선박 확보 능력이 곧 경쟁력으로 작용한 셈이다. 이러한 방식은 국제 해운업계에서는 비교적 익숙한 사업 모델로 받아들여져 왔다.

모국에 돈과 일거리를 가져오려 노력한 권 회장은 ”조선소는  많은 납품 업체들이 하청으로 일하는 곳“이라며 ”조선 발주는 경제적으로 파급효과가 큰 경제민주화의 대표적인 산업“이라는 점을 덧붙였다.

시도는 1995년 선박관리회사를 부산에 설립했다. 싱가폴이나 일본, 중국등이 보다 유리한 조건이었으나 국내에 신규 일거리를 비롯해 국산 조선기자재 사용, 보험가입, 수리, 윤활유 및 페인트업계에 도음이 된다고 생각해서다. 부가가치가 워낙 높은 사업이어서 일본인 직원들의 반대는 당연했다.

권 회장은 2004년경부터 신규 선박건조를 한국 조선소에도 집중적으로 주문했다. 특히 현대 미포조선에 맡겼다. 2014년까지 3조6000억원 규모의 선박 70척을 모두 해외은행으로부터 차입해 미화로 발주했다. 또한 국내 협력업체 356개 업체와 거래를 텄다. 17년동안 납품업체에 구매대금을 단 하루도 밀리지 않고 현금으로 지불했다.

그는 ”한국 협력업체와 공존하는 것이 해운 사업의 신조였다“며 ”당시 한국 해운조선업계에 지불한 금액만도 약 4조3000억원이나 달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벌어서 유출한 돈은 거의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권 회장은 특히 2008년 금융위기 때에 일본에 발주한 선박 중 무려 37척은 자금이 조달되지 않아 계약금 2억4200만원을 포기하고 선조를 취소했다. 하지만 한국 조선소에 발주한 31척은 (약 1조6000억원) 한 척도 해약하지 않고 모두 인수 했다. 한국이 금융위기로 어려움에 처해 있었기에 미약하나마 조국을 지원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해상 운송사업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권 회장은 해외에 법인을 설립한 뒤 국내 회사에 업무를 맡기는 방식을 병행했다. 선박별로 단선회사를 두고 이를 통해 자산과 손익을 관리하는 방식은 선박금융 조달과 사업 확장 측면에서 유연성을 높였다. 이들 법인은 권혁 회장이 사실상 지배하는 형태로 운용됐다.

다만 이러한 사업 방식은 한국 해운업계에서는 흔치 않았다. 국내 해운 산업은 국적선과 법인 중심의 운영 체계 속에서 성장해 왔고, 개인 오너가 해외 법인을 축으로 대규모 선단을 사실상 통제하는 사례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차이는 국제 해운업계의 관행과 한국적 제도 환경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 대목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글로벌 해운업계에서도 조세와 국적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반복돼 왔다. 노르웨이의 최고 갑부 존 프레드릭슨은 국적과 조세 거주지를 둘러싼 논란 속에서도 합법적 절세라는 입장을 고수해 온 세계적 선주로 꼽힌다. 권혁 시도그룹 회장을 둘러싼 논란 역시 이와 비슷한 사례로 보인다.

세계 해운업은 선주업과 운항업으로 나누어진다. 운항업자는 빌린 배의 용선료가 비용에 해당되며, 이익이 발생해야만 세금을 내는 구조다. 특히 선주업은 금융기관의 이자도 금융시장의 상황에 따라 자주 변동된다. 또한 해난사고 (충돌, 좌초, 화재, 해상오염)의 위험성에 노출되어 위험부담이 엄청나다.

국제적으로 선박금융을 제공하는 은행들은 조세회피국에 회사를 설립하지 않으면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따라서 해운업(선주업)은 필연적으로 금융으로 인한 방대한 자산을 보유하게 된다. 그래서 해운은 자금조달과 외환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사업이다,

권 회장 역시 해상 운송사업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해외에 법인을 설립한 뒤 국내 회사에 업무를 맡기는 방식을 병행했다. 선박별로 단선회사를 두고 이를 통해 자산과 손익을 관리하는 방식은 선박금융 조달과 사업 확장 측면에서 유연성을 높였다.

지금까지 일본인들을 주로 고용해서 일본과 홍콩에서 사업을 해 온 권 회장은 ”선박 발주나 금융기관 대출 등이 개인 해운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구조“라고 했다.

”제 사업은 개인사업체 였기에 누구로부터도 보호받지를 못했습니다. 거래처와 직원 모두 일본인이라 은근히 한국인인 저를 무시하는 것을 참아야 했고, 혼자 외롭게 불안 속에서 사업의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해운업을 했으면 아마 정부로부터 제도적인 보호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선박이 늘어나니 해양사고로 인한 피해가 늘 존재하구요. 만약 사고가 생기면 개인의 연대보증으로 인해 연쇄적으로 피해가 생겨 회사 전체가 도산할 수도 있어서 늘 불안하죠. 그래서 금융단과 변호사와 상의했더니 명의신탁제도를 권해주더군요. 알아보니 대부분의 선진국 해외 선주들이 활용하더군요. 안전하게 회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저는 명의신탁을 활용한 겁니다. 이것은 세금 문제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고 2002~2004년에는 국내에서 세금 문제가 발생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권 회장은 한진해운 파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해운산업 재건의 일환으로 한국형 선주사 육성에 관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눈길이 간다. 

그는 “우리나라 해운기업은 외국의 경쟁기업에 비해 불리한 높은 금융비용과 재무구조의 악화를 방지하지 못한 결과, 한진해운 파탄과 같은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 별도의 선주사 육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와 같이 선주사와 운항사를 겸하는 구조에서는 불경기 때 재무구조가 나빠져 저가 선박을 매입할 수 없고, 호경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경쟁력을 갖추려면 반드시 선주사를 육성해야하는  까닭이다.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작년부터 한국형 선주사업을 시범 실시하는 등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어 주목된다.

권 회장의 나라 사랑도 뜨거웠다. 또 불우이웃 돕기에도 적극 나섰다.

”한국선급(KR)이 일본에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본 조선소에 발주한 선박을 거의 한국선급에 검사와 감리를 위탁하자 일본 업체 및 금융업계가 일본선급(NK)을 이용하도록 압력을 넣더군요. 저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과 일본 조선소를 설득하여 한국선급(KR)에 검사와 감리를 맡겼습니다. 그 결과 한국선급과 국산 선박기자재가 일본 조선소에 첫 수출됐고, 현재도 한국선급이 일본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 한국조선소에서 선박을 인도 받았을 때의 명명식도 한국방식을 고집했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대개 선주나 저명인사의 부인,  딸이 참석해 ‘갓 머더(GOD MOTHER)’의 역할을 하한다. 하지만 시도해운은 조선소가 있는 지역의 중-고등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하고 가정환경이 불우한 여학생을 갓머더로 설정해 명명식의 주인공 역할을 하게 했다. 장학금 지원 역시 수백명의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키워줬다.

평생 술, 담배와 사치마다하고 평생 검소하게 살아 온 그는 지금까지 회사 경영을 하면서 절약생활이 몸에 배어있다. 불필요한 경비를 최소시키면서 회사이익증대에 노력한 만큼 당연히 ‘짠돌이’란 별명도 얻었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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