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에선 선악 구도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난다. 악한은 갖가지 악행으로 관객의 분노를 자극하고, 약자를 괴롭히며 폭행을 서슴지 않는다. 때로는 생명까지 앗아간다. 그 와중에 선역의 역할도 분명해진다.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악행에 대한 응징이 그것이다. 물론 이 과정이 처음부터 순조롭게 흘러가면 재미가 없다. 몇 차례의 실패와 좌절, 극한의 위기를 거쳐 마침내 악이 무너질 때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에 비해 일상은 다르다. 현실에서 선과 악은 그렇게 선명하게 갈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 규범 안에서 살아가려 애쓰고, 노골적으로 반사회성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이기심과 욕망은 친절과 체면이라는 껍질 속에 감춰진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대체로 평온하지만 한편으론 밋밋하다. 사람들이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감정을 소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다행히 일상에도 드라마 같은 선악 구도가 형성되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바로 정치판이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가 그런 구도의 한 단면이었다. 장관 후보자의 해명은 국민 정서를 거슬렀다. 결혼한 아들을 미혼자녀로 간주해 수십억 원 시세차익의 아파트 특혜분양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아들 부부가 파경에 이를 정도로 사이가 나빠져 혼인신고를 안했다는 답변이 그랬다. 조부의 청조근정훈장을 근거로 장남이 국위선양자 자격으로 명문 대학에 입학했다는 답변에는 국민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통합 차원에서 장관 후보자를 지명했지만 결과적으로 거센 공분의 대상이 된 인물을 만들어냈다. 지명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의혹이 추가되면서 선악의 스토리는 갈수록 풍성해졌다. 그에 따른 국민 분노 게이지도 올라갔다. 한 국민의힘 소속 청문위원이 자신의 보좌진 멘트를 빌려 "악마를 보았다"고 전한 것은 선악 구도가 절정에 달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 구도가 허물어지는 순간 국민들은 한 달 가까이 쌓아온 분노의 방죽이 터지면서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그것을 이끌어낼 영광스런 역은 누구 몫인가? 공교롭게도 그 장관을 지명한 대통령이다. 아무리 국회 청문보고서에 '부적격' 의견이 올라가더라도 최종 결정자는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은 국민에게 병도 주고 약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이 장관 지명을 철회한다면 야당은 전자에 초점을 맞춰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며 공세를 취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후자 쪽에 비중을 두고 대통령에게 "현명한 결단을 내렸다"고 박수를 보낼 가능성이 높다. 국민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준 주인공으로 와닿기 때문이다. 장관 지명자는 억울한 심정이 크겠지만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희생양이 되는 셈이다.
일부 호사가들은 "지명 철회까지 당초 시나리오에 들어 있었다"면서 음모론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런 주장에 공감을 표시할 국민들도 있겠지만 예정된 결론인지, 예기치 못한 불상사인지는 지명자가 더 잘 알 것이다. 전자라고 생각되면 하루라도 빨리 스스로 물러나는 게 상책이다. 대통령을 선역으로 설정한 드라마의 마지막 퍼즐을 걷어찰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고 판단되면 국민 시선이 따갑고 스트레스도 막중하겠지만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극적인 엔딩을 맞을 수 있다. 꺼져가던 불씨에 정치 생명을 불어넣어 주려고 했던 선의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대통령 영광을 위한 불쏘시개가 못될 것도 없지 않겠는가.
권혁식 논설위원 kwo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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