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IPO 단계의 딥테크 현장엔 MIT·KAIST 출신 천재들이 넘쳐난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은 없다”는 자부심을 가진 창업가들이 AI 반도체, 피지컬 AI, 신약개발 등 국가 전략 기술의 최전선을 누빈다. 이들을 둘러싸고 국정과제를 추진하는 정부 부처, 기술 인사이트를 쫓는 미디어, 자본 회수를 고민하는 투자자들이 얽히며 딥테크 생태계는 또 하나의 정글이 된다. 이 정글을 통과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통로가 바로 ‘기술특례상장’이다.
수많은 기술 창업가들이 이 제도를 통해 이른바 ‘죽음의 계곡’을 넘으려 한다. 매출이나 이익이 없어도 기술력만으로 주식시장에 입성할 수 있는 기술특례상장은 2005년 도입 이후 300개 안팎 기업을 제도권에 올려놨다. 그러나 촉망받던 팹리스 기업 파두(FADU)의 ‘뻥튀기 상장’ 논란은 이 제도의 명암을 드러냈다. 혁신 기업이 자본과 만나 퀀텀 점프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했다.
파두는 2023년 상장 당시 연매출 1203억원 전망을 제시하며 기업가치 1조5000억원을 인정받았지만, 실제 반기 매출은 17억7000만원에 불과했다. 검찰은 파두 경영진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거래정지라는 극단적 조치가 내려졌고, 재판 결과는 국내 IPO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칠 변수로 떠올랐다. 비단 파두만의 문제일까. 2024년 기준 기술특례로 상장한 285개 기업 중 85%가 적자를 냈다. 상장 이후의 지속적인 검증은 사실상 방치됐다. 상장 후 5년 특례기간이 끝난 뒤 셀리버리, 파멥신 등 다수 바이오 기업이 줄줄이 퇴출됐다.
그럼에도 IPO 시계는 돌아간다. 웨어러블 재활로봇 기업 코스모로보틱스, 자가면역·섬유증 치료제를 개발하는 넥스트젠바이오사이언스 등 바이오사들이 기술특례상장을 준비 중이다. AI 분야에선 업스테이지가 정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관문을 통과하며 상장 기대감을 키웠고, SDT는 양자·AI 하이브리드 기술과 액침냉각 기반 상용화 성과를 앞세워 기술특례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파두는 국내 팹리스 스타트업 가운데 드물게 글로벌 시장에서 실제 매출을 일으키고 있는 기업이다. 파두의 2025년 공시 기준 신규 수주 물량은 약 1160억원이다. SSD 컨트롤러 기술은 글로벌 빅테크의 검증을 통과했고, 실제 납품으로 이어졌다. 테크 스타트업이 지켜야 할 핵심 가치는 ‘기술’이며, 이 기술이 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이 ‘자본시장’이다.
파두 재판은 단순히 경영진의 유무죄 판단을 넘어, IPO 시스템의 허점을 심판하는 시험대다. 기술을 평가하는 잣대는 엄격해야 하지만, 기술을 질식시키는 방식이어선 안 된다. 실패 가능성이 내재된 혁신을 상장 이후 곧바로 단죄하는 구조라면 이는 산업 포기 선언에 가깝다. 과거 위법성은 법원이 가리되, 현재의 사업 실체와 미래 가치는 시장에 맡기는 것이 자본시장의 역할이다. 자본시장이 기술을 벤다면, K-팹리스와 K-바이오의 미래 역시 함께 베어질 수밖에 없다.
심화영 기자 doroth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