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진영 선봉장 활약한 ‘투사’
7선 의원ㆍ총리… 정권마다 핵심 역할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베트남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 향년 73세.
![]() |
| 고(故)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사진: 민주평통 제공 |
민주평통에 따르면 이 수석부의장은 아태지역 운영위원회 참석차 호찌민 출장 중이던 지난 23일 쓰러져 현지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고, 심근경색 진단과 함께 스텐트 시술을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한 채 이날 오후 2시48분쯤(현지시각) 숨을 거뒀다.
고인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선두에 섰던 ‘투사’이자, 7선 국회의원과 국무총리를 지내며 우리나라 민주 진영의 핵심이자 산증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덕수중ㆍ용산고를 졸업했다.
서울대 사회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3년 박정희 정권 유신체제에 맞서 학생운동에 투신한 이후 이듬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1년 가까이 옥고를 치렀고,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 재판에서 “이 땅이 민주화될 때까지 싸우겠다”고 외친 일화는 그의 삶을 상징한다.
모진 고문과 수감 속에서도 민주화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그는 1982년 성탄절 특사로 석방된 뒤 재야 운동을 이어갔고, 1987년 6월 항쟁 때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황실장을 맡아 직선제 개헌을 이끌었다.
정치권 입문 이후의 궤적도 굵직했다.
1988년 제13대 총선 당시 서울 관악을에서 당선해 여의도에 입성한 이래 제17대 총선까지 같은 지역구에서만 내리 5선을 기록했다.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위 청문회에서는 계엄군의 민간인 살상을 날카롭게 파헤쳐 ‘면도날’로 불렸고, 노동 입법에도 힘쓰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이상수 전 의원과 함께 ‘노동위 3총사’로 통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고교 평준화 확대 등 교육 정상화에 힘썼지만, 일선 고교 야간 자율학습 폐지에 따른 학력 저하 논란 등 이른바 ‘이해찬 세대’ 논쟁도 남겼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열린우리당 창당을 이끌며 국정 운영의 핵심에 섰다. 2004년 국무총리에 임명돼 행정수도 이전을 주도하는 한편 당정청 관계 복원에도 기여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과 유일하게 맞담배를 피울 정도로 두터운 신뢰를 받으며 ‘실세 총리’로 불렸지만, 2006년 이른바 ‘3ㆍ1절 골프’ 논란으로 물러나는 불명예도 안았다. 총리 시절 직설적인 화법과 함께 야당 의원들과의 설전으로 ‘버럭 해찬’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2007년 제17대 대선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했고, 대선 패배 후 제18대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았다. 이후 민주통합당 대표에 올랐지만, 제18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ㆍ안철수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사퇴 압박을 받은 끝에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그는 민주 진영의 전략가이자 원로로서 영향력을 이어갔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세종시에 출마해 6선에 성공했고,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 친노(친노무현) 진영의 좌장 역할을 맡았다. 2016년 제20대 총선을 앞두고는 컷오프(공천 배제)됐지만, 탈당 후 무소속으로 세종에 다시 출마해 7선 의원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복당 이후에는 2018년 당 대표로 선출돼 문재인 정부를 뒷받침했을 뿐만 아니라, ‘민주당 20년 집권론’을 제시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게다가 코로나19가 대유행하던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는 시스템 공천 등을 통해 민주당의 압승을 이끌었다.
이재명 대통령과의 인연도 각별했다.
2024년 제22대 총선에서는 당시 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 김부겸 전 총리와 함께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총선 승리를 다시 이끌어냈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로 불리며 지난해 대선에서는 원로로서 집권 청사진을 만드는 조언자 역할을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돼 대북ㆍ통일 정책 자문을 맡았다.
민주평통은 고인이 26일 밤 대한항공편으로 현지를 떠나 27일 오전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다.
이승윤 기자 leesy@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