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김봉정 기자] 국제 금값이 사상 처음 온스당 5200달러선을 돌파하는 초강세에도 한국은행은 지난 2013년 이후 13년째 금을 추가 매입하지 않고 있다. 급등하는 금 가격과 달리 한은이 금 비중 확대에 신중한 이유에 시장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28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오전 11시34분(한국시간) 기준 금 현물 가격은 온스당 5224.31달러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가를 또 경신했다. 금값은 지난해 65% 급등에 이어 올해 들어서도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팬데믹 직전인 2020년 초 약 1500달러 수준이었던 금 가격은 전례 없는 글로벌 유동성 확대와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 속에서 꾸준한 상승세를 보여 왔다.
금값 급등의 배경으로는 대규모 유동성 공급, 장기간의 완화적 통화정책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강화, 달러 약세 우려,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격적 대외정책에 따른 지정학적 긴장 고조 등이 지목된다.
그러나 한은은 금 매입 확대에는 여전히 신중하다. 금은 채권·단기금융상품보다 유동성이 낮고 가격 변동성이 큰 자산이어서 외환시장 변동 시 즉시 현금화해 투입하기에는 제약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 판단이다.
한은은 급격한 환율 변동 국면에서 ‘즉시 유동화 가능한 자산’의 비중을 중시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금 가격은 달러의 안전자산 지위와도 연관돼 고민이 필요하다”며 “외환보유액이 늘어날 때는 폭넓게 검토할 수 있지만, 현재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좋은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한은은 2013년 금 20t을 매입한 뒤 금값 하락으로 ‘금투기 손실’ 논란이 불거지면서 매입을 중단했고 이후 지금까지 같은 기조가 이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2010년대 초반 김중수 한은 총재 시절 금을 비교적 많이 사들였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직후 금값이 하락하면서 내부적으로 부담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며 “그 경험이 남아 있다 보니 최근처럼 단기간 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다시 매입 결정을 내리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개인 투자자들도 가격 급등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시기라, 중앙은행이 뒤늦게 매입에 나서는 것이 적절한지 판단하기가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최근 몇 년 동안 금 보유를 꾸준히 늘려 왔지만 한은은 이 흐름에 적극 동참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여러 나라 중앙은행들이 금 비중을 꾸준히 확대한 것과 달리 한은은 이런 흐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며 “금값이 오른 뒤 왜 사지 않았느냐는 건 사후적 시각이고 당시 어떤 판단 근거가 있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조금 더 사들였다면 외환보유 운용에 도움이 됐을 수는 있지만, 최근처럼 가격이 높은 시점이 매입 적기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은 기조는 작년 국정감사에서 총재가 밝힌 방향성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은 관계자는 “금 매입은 단기 가격 변화만으로 판단할 사안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며 “외환보유액 규모나 시장 여건 등을 고려하면 지금은 논의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중앙은행들의 매입 확대는 각국의 대외 환경 차이에서 비롯된 흐름일 뿐, 이를 이유로 한은이 바로 스탠스를 조정해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봉정 기자 space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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