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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고창신의 대승적 화업 60년...한국화 기운생동 "살아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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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3-05 15:05:24   폰트크기 변경      
오용길 화백,청작화랑에서 18일까지 개인전...최근작 30여점 선봬


유석(裕石) 오용길 화백(79)이 대학을 갓 졸업하고  등단한  1970년대는 한국화 장르가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던 시기였다.  패기 넘치고 재능있는 젊은 화가들은 서양의 추상 양식을 과감하게 도입하거나, 한국적 재료를 완전히 탈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 화백은 흔들리지 않았다. 수묵을 고수하며 실경에 충실한 그림을 고집하며 자연이나 풍경의 속살을 잡아내는 데 붓 끝에 힘을 줬다. 그림의 소재나 필치, 색조의 새로운 시도에 있어서도 조화로운 질서와 성취를 위해 차곡차곡 다져갔다. 수묵의 비중 역시 서서히 채색이 짙어지는 추세로 변했다. 아마 조용함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몸짓이었다.  대학 강의가 끝나면 매일 작업실에 파묻혀 죽어라 그림에만 매달렸다. 수묵과 채색을 자신의 조형 언어로 채택한 그는 이제 싱그러움이 철철 넘치는 한국화의 새로운 영역을 호령하고 있다.

오용길 화백이 서울 압구정동 청작화랑의 개인전에 출품 작품 ‘봄의 기운-용원정’.    사진=청작화랑 제공


지난 60년간 한국화의 신념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살아온 오 화백을 또 한번 전시장으로 불러냈다. 서울 압구정동 청작화랑(회장 손성례)이 지난 4일 시작해 오는 18일까지 여는 그의 개인전을 통해서다.

‘사계절의 향연’이란 주제를 걸고 작업실에서 몸부림치며 작업한 미학 세계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리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대차게 꾸린 10호 소품에서 100호에 달하는 근작 30여 점을 풀어놓았다. 한결같이 한국화의 정통성을 고수하며 장식적인 것이나 시류에 빠지지 않고 전통 수묵담채화를 여지없이 계승한 작품들이다. 예전보다 훨씬 서정성이 두드러지고 색채도 화사해졌다. 빛을 따라 점점이 붓질한 점묘 기법의 독특한 변주도 돋보인다.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오용길 화백. 사진=청작화랑 제공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난 오 화백은 서울대 미대 회화과와 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27세 때인 1973년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받아 일찍 두각을 나타냈다. 이화여대 교수로 일하며 예술대학장을 지낸 그는 1978년 동아미술상을 비롯해 1991년 월전미술상, 2011년 마니프 대상 등을 잇달아 수상하며 국내외 화단에 명성을 알렸다. 지난해부터 대한민국예술원 신입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얼마전에는 1970년대 초기 작품들부터 근작들까지 다 모은 전작도록 분량의 이미지들로 개인 영상쇼를 펼쳐 미술계 주목을 받았다.

전시장에 화사한 작품들은 자연의 단순한 재현에서 벗어나 고향의 장맛처럼 감성이 우러나고, 무엇보다 사계절을 생각나게 한다. 회화적 상상력과 감성적 에너지를 선명한 색채로 응축해서인지 화려한 미감을 힘껏 뿜어낸다. 실제로 오 화백의 작품에는 순백의 화선지 위에 숭고한 지필묵 행위를 통한 세계와 자아가 합일되는 직관적 깨달음이 녹아 있다. 사회 정치적 메시지를 덧대는 것을 거부하며 한국 고유의 전통성과 함께 내면 깊이 자리한 자유의 열망을 담고 있는 게 특징이다. 그림의 요체로 꼽은 촉각과 감성, 행위는 한 공간에서 겹치거나 서로 맞물리며 하나의 지점을 향해 퍼져 나간다.

단연 눈길을 붙잡는 작품은 역시 ‘봄의 기운’ 시리즈다. 경남 거창군 덕유산 자락 병항마을에 있는 용원정 앞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 풍경을 차지게 잡아냈다. 용원정은 구화 오수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누각이다. 용정원을 가득 채운 꽃들은 금방이라도 바람에 흩날릴 듯 가볍고, 개울가 바위는 오랜 세월이 서린 듯 묵직하다. 시간을 거슬러 여름으로 들어서면 짙푸른 나무가 눈에 띈다. 최근작 ‘록음’은 도로에 줄지어 늘어선 연초록 사이로 빨간 승용차가 달리는게 이채롭다.

오용길 화백의 '가을 서정-홍시'       사진=청작화랑 제공


‘가을 서정-홍시’라는 작품에선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감성을 일깨운다. 초가집 옆에 감나무에 걸린 빨간 홍시들이 소곤소곤 대화를 즐기는 모습처럼 돋보인다.

그는 “내 그림이 수채화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붓의 선이 다르다”며 “수묵의 맛을 한껏 살리고 풍부한 색감으로 ‘기운생동’에 역점을 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작가가 즐겨 그린 산수유 봄풍경이든, 서울이나 지방 풍경은 공통적으로 기운생동의 생명력과 신비감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풍경들이 구도나 앵글에서 기발하거나 아주 색다른 점을 부각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화면의 색감들은 서로 교감에서 커다란 흡입력을 뿜어낸다.

그럼 그 비결이 무엇일까. 사실 오 화백 그림의 심미적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작은 차이들 혹은 평범함들이 모여 큰 경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종종 과정의 작은 차이가 커다란 격차를 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적 판단에는 주관적, 상대적 척도들이 난무한다지만, 미세한 차이에 의해 좋음과 진부함이 구별되곤 하죠. 음식의 경우도 소문난 맛집의 레시피나 재료가 아주 특출난 경우는 별로 없지만 내공과 감각, 스킬 등의 작은 차이에 의해 결과물이 상당한 격차를 낳곤 합니다. 제 그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오 화백은 최근 한국화 시장이 침체에 빠져 있지만 한국화의 정체성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계속 지켜야 할 우리 자산이란 점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화는 서양화와 엄연히 달라 한국화의 지필묵 맛은 가장 한국적인 것”며 “한국화를 법고창신의 대승적 화업으로 승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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