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입대의, 시공사 상대 소송… 파기환송
“단순히 두께 부족으로 하자 인정 안돼”
법조계 “액체방수 하자기준 재검토 필요”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대법원이 아파트 하자소송에서 시멘트 액체방수 시공에 대한 하자 판단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그동안 법원 감정과 하급심에서 관행적으로 적용돼 온 ‘두께 중심’ 판단에서 벗어나, 실제 방수 성능을 중심으로 하자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현장 조건이나 자재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방수층 두께 기준만으로 결론을 내리는 기존 관행에 제동이 걸릴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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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시공사인 B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의 피고 패소 부분 중 일부 공용ㆍ전유부분의 액체방수 두께 부족에 따른 하자보수비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6개동 562세대 규모인 충남 공주시 A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 공용부분에 하자가 발생했다며 2020년 9월 30억여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시멘트 액체방수 시공에 대한 하자 여부가 주요 쟁점 중 하나로 떠올랐다. 시멘트 액체방수는 방수제를 물ㆍ모래 등과 함께 섞어 반죽한 뒤 이를 콘크리트 구조체의 표면에 발라 방수층을 만드는 시공방법으로, 주로 욕실이나 발코니, 지하실 등에 시공된다.
시멘트 액체방수 공정과 관련해 과거 1994년 건축공사 표준시방서는 ‘벽은 6~9㎜, 바닥은 10~15㎜’를 두께 기준으로 정하고 있었지만, 1999년 개정 당시 두께 기준이 삭제됐다.
이후 2006년부터는 액체방수 표준 작업 방식이 기존 5~8단계에서 4~5단계로 대폭 축소되는 등 성능 중심의 품질 관리 체계로 개편됐다. 다만 2013년 개정에서는 ‘부착강도 측정이 가능하도록 최소 4㎜ 두께 이상을 표준으로 한다’는 내용이 도입되기도 했다.
문제는 통상 하자소송에서 주민 측이 ‘과거 두께 중심의 표준시방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법원 감정인이나 재판부마다 판단 기준도 다르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액체방수 시공에 대한 하자 여부는 현재 모든 하자소송에서 빠지지 않는 항목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아파트 단지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액체방수 시공에 대한 하자보수비가 많게는 수십억원에 이를 정도로 큰 경우도 있다.
A아파트 공사시방서의 경우 방수층 두께를 특정해 기재하는 대신 ‘도면 및 본 시방서에 기재되지 않은 사항은 건축공사 표준시방서에 따른다’, ‘시멘트 액체방수는 방수 성능에 우선해 시공하고 두께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정한 상태였다.
2심은 “준공내역서가 액체방수를 2차 적용하도록 정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벽 8㎜, 바닥 8㎜를 기준으로 하자보수비를 산정해야 한다”며 주민 측의 손을 들어줬다.
방수층 두께와 성능에는 상관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통상적인 방수 성능을 충족하려면 일정 두께 이상의 액체방수가 시공돼야 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A아파트 공사시방서에는 건축공사 표준시방서 개정 취지를 반영해 시멘트 액체방수 공사를 ‘성능 중심’으로 시공한다는 기재가 있었던 만큼 그에 따라 하자 여부를 판단해야 하고, 실제 방수 성능에 문제가 없다면 단순히 두께가 부족하다는 사정만으로 하자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A아파트 공사시방서에 대해 “시멘트 액체방수 두께에 대한 지시가 없는 게 아니라, ‘두께는 고려하지 않고 방수 성능을 우선 시공 기준으로 삼는다’는 지시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대한건축학회와 한국건설방수학회 등 관련 학회의 의견을 참고해 “결국 2013년 표준시방서에 기재된 ‘최소 4㎜ 이상’의 두께 기준을 방수 성능 확보에 관한 두께 기준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시멘트 액체방수와 관련해 A아파트 준공내역서에 ‘바닥, 1종’, ‘벽, 1종’이라는 기재가 있긴 하지만, 이를 2심 판결처럼 ‘액체방수를 2차로 적용하도록 정한 것’으로 인정할 근거도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2013년도 표준시방서에 기재된 두께 기준(최소 4㎜ 이상)의 2배인 8㎜ 두께를 기준으로 하자로 인정하고 보수비를 산정한 원심 판단에는 설계도서 적용의 우선순위, 액체방수 관련 하자의 개념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대법원 판결은 최근 발표된 ‘건설감정실무 2026년 개정판’의 내용과도 결이 다른 만큼 향후 다른 하자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개정판은 액체방수 시공과 관련해 두께 기준에 대해 명확한 지시가 없다면 감정인이 시공 부위, 누수의 심각성 등 현장 여건을 감안해 △4㎜ △6㎜ △벽 6㎜ㆍ바닥 10㎜ 중 적정한 기준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정리됐는데, 이는 여전히 30여 년 전의 ‘두께 중심’ 기준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액체방수 하자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B사를 대리한 법무법인 화인의 황석현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 대해 “시멘트 액체방수 하자의 경우 현장과 자재의 구체적인 특성, 건축공사 표준시방서의 개정 취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판결을 하는 하급심 재판부도 많은 상황에서 ‘논리와 규범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되새긴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건축공사 표준시방서 개정에 참여해 온 대한건축학회마저도 ‘두께 중심의 기준은 타당하지 않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의 판시 취지가 개정된 건설감정실무의 기준보다도 합당한 의견이라는 점은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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