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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해운시장 호령한 ‘선박왕’...“한국 땅에 갇혀 국익손실 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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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3-10 16:19:06   폰트크기 변경      
윤종훈 전 서울지방국세청장, 권혁 회장의 역외탈세 혐의 문서로 정면 반박


세계 경제가 글로벌화 되면서 역외탈세 문제가 조세 행정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역외탈세는 국내 법인이나 개인이 조세피난처 국가에 유령회사를 만든 뒤 그 회사가 수출입 거래를 하거나 수익을 이룬 것처럼 조작해 세금을 내지 않거나 축소하는 것을 말한다. 국내 거주자의 경우 외국에서 발생한 소득(역외소득)도 세금을 내야 하지만 해외 소득은 숨기기 쉽다는 점에서 적발되면 징벌적 과징금의 대상이 된다.

권혁 시도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국세청은 그동안 국내 재산 무단반출 등 역외 탈세를 차단을 위해 많은 국가들과 조세 공조를 위한 행정협정을 맺어왔다. 국내 재산 불법 반출 등 탈세를 막기 위해서다. 상대국 거주자의 해외 신탁 계좌 등 금융정보를 정기적으로 교환해 과세에 활용하기도 한다.

국내에서 이런 역외탈세 조사업무를 처음  맡은  인물은 1986년 서울지방국세청장에서 과장으로 근무한  윤종훈 씨(전 서울지방 국세청장)로 알려져 있다.  그의 역외탈세 추적업무는 경제가 대외에 완전 개방되면서 시동이 걸렸다. '국부의 불법적인 해외 유출을 방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국익 보호'라는 당시 대통령의 특별지시가 힘을 실어줬다.  윤 전 청장은 1980년대말 한국이 남북 분단과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 때문에 국부유출의 위험성이 매우 높은 환경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는 5년간 역외 탈세조사 업무에 숨쉴 틈없이 매진했다. 불법적인 국부유출을 철저히 추적하면서도  기업인의 경제활동에  불안감을 주지않기 위해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기업인의 사업이 망가질 경우 막대한 국익 침해를 초래할 수 있어서다.  더구나 역외탈세 조사가 자본 이탈 등 위험이 크기 때문에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 필요했다.  복잡한 국제거래 기법을 상대해야 하는 초고난도의 영역이어서 프로의식이 강한 조사관들로 팀을 꾸렸다.  외국어, 국제무역, 외환 및 국제금융에 대한 전문지식과 사명감을 가진 조사관들은 오직 국익만을 위해 은밀하고 조용히 엄부를 집행했다.

​ 서울지방 국세청의 역외탈세 조사팀의 진가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최고조에 이르렀다.   당시 부유층이 수백만 달러 규모의 외화를 해외로 빼돌리는 사례를 소속 적발했다. 하지만 서울지방 국세청은 일체의 홍보를 자제했다. 대신 내실 있는 자료 축적과 내부적인 분석에만 집중했다.

국세청은 1999년 단 한 건의 대표적인 적발 사례만을 언론에 공개했다. 모 항공회사를 상대로 표본조사를 실시해 역외 탈세혐의로 3300억원을 추징했다. 사주 역시 검찰에 고발했다. 이후 서울지방 국세청은 윤 전 청장의 주도하에  500명의 최정예 요원을 양성하며 역외탈세 조사의 황금기를 열었다.

그러나 2010년대에 접어들며 국세청의 이러한 신중함과 고도의 전문성은 다소 정치적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세청이 '역외탈세와의 전쟁'을 과도하게 벌인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윤 전 청장은 당시를 이렇게 적었다. "이른바 선박왕, 구리왕, 완구왕 등 이른바 '왕시리즈' 이벤트 조사들은 공명심이 부른 참사 입니다. 정무적인 판단에 따라 무리하게 세무행정을 벌인 역외탈세 사례였죠."
 권혁 시도그룹  회장이 2010년대 역외탈세 혐의로 고욕을 치른 ‘왕시리즈’의 대표적인 희생양이었다는 시각이 흘러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권 회장은 대한민국 해운업계에서 수많은 대선단을 거느리며 '한국판 오나시스'로 불리며 명성을 알리던 시기와 맞물린다.  윤 전 청장은 권 회장에 대한  당시 조사에 대해  “역외탈세조사 업무의 역사적 배경과 목적으로 보더라도 단추를 잘못 꿰맞춘 조사”라고 꼬집었다.

권 회장은 조세회피처에 거주하는 것처럼 위장해 세금을 탈루한 혐의를 받아 2010년 국세청의 집중 조사를 받았다.  당시 국세청이 산정한 추징금은 4101억원에 달했다. 국세청 고발 이후 검찰 수사가 이어졌다. 권 회장은 횡령, 저축 관련 부당행위, 조세범 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3년 2월 1심 재판부는 권혁 회장에게 징역 4년과 벌금 2340억원을 선고했다. 종합소득세 1672억원과 법인세 582억원이 포함된 액수였다. 이 판결로 권혁 회장은 법정구속됐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판단이 달라졌다. 시도그룹 핵심 해상운송 계열사인 시도카캐리어서비스(CCCS)를 둘러싼 법인세 포탈 혐의가 무죄로 인정되면서 판결의 방향이 바뀌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법인세 포탈 혐의를 제외하고 종합소득세 2억4000여만원 포탈 혐의만을 유죄로 판단했다. 형량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대폭 줄었다.

유죄로 인정된 부분은 선박 중개업자 명의 해외 계좌에 입금해 관리한 중개수수료와 배당소득 7억원에 관한 사안이었다. 2016년 2월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이 판결로 권 회장을 둘러싼 형사 절차는 사실상 일단락됐다.

권 회장은 국세청의 주거지에 대한 판단 착오와 관행 때문에 장기간 소송에 시달렸다.  역외 탈세조사가 잘못됐다는  뒷 이야기도 흘러 나온다.  실제로  국부유출이 없었다는 점에서다.  윤 전 청장은 권 회장에 대해 “국내에서 단돈 100만원도 해외에 가져가지 않고 순전히 해외에서 벌어서 국내에 가져온 것”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하지만 무리한 과세 행정이 남긴 4000억원대의 체납액과 15년째 이어진 출국금지 조치는 지금도 권 회장의 뒤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실제로 권 회장은 일본과 홍콩을 무대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2004년경부터 신규 선박건조를 한국 조선소에도 집중적으로 주문했다.  2014년까지 3조6000억원 규모의 선박 70척을 모두 해외은행으로부터 차입해 미화로 발주했다. 또한 국내 협력업체 356개 업체와 거래를 텄다. 17년동안 국내 조선소에 약 9조원 규모의 선박 121척을 발주했고, 선박관리와 보험료 등을 합쳐 총 13조가 넘는 막대한 자금을 국내로 끌어들였다. 

이같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윤 전 청장은 문건에서 “권혁 회장의 경우는 제가 감시대상으로 한 역외탈세에 해당하지 않고 표창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리한 세무행정이  글로벌 해운산업을 호령하던 거인 ‘선박왕’을 사실상 한국 땅에 가둬버린 셈이다. 윤 전 청장은 권 회장에 대한 무리한 세무조사로 인한 국익 침해가 “숫자로 계산하기 어렵지만 실로 막대하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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