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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라면을 고르고 있다./사진=연합 |
[대한경제=오진주 기자] 식품사들이 가격 딜레마에 빠졌다. 정부의 물가 안정 압박과 원가 상승 사이에서 가격을 내리지도 올리지도 못한 채 눈치만 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11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식품사들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물가 관리 기조가 강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외부 충격이 민생과 경제, 산업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모든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며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물가안정"이라고 강조했다. 미국ㆍ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으로 물가가 다시 들썩이기 전에 먼저 관리해야 한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에 정부가 식품 물가 중에서도 소비자 체감도가 높은 품목 중심으로 가격 압박을 이어가면서 이제 시선은 라면ㆍ제과업계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라면 가격 인하가 전체 물가에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다.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라면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진 않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국민들이 자주 사는 물건을 모아 가격이 얼마나 변했는지 보여주는 지표를 만드는데, 이 물건들에는 각각 다른 가중치를 둔다. 모든 물건이 물가에 같은 영향을 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라면은 자주 구매하지만 지출 금액 자체는 크지 않아 2020년 기준으로 2.4의 가중치를 적용한다. CPI 전체 가중치를 1000으로 볼 때 라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0.24% 수준이라는 뜻이다. 반면 휴대전화료는 29.8의 가중치를 적용해 비중이 2.98%에 달한다.
그럼에도 역대 정부가 가공식품 업계를 압박해온 건 소비 빈도가 높은 대표 필수 식품으로 가격 변화가 체감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4일과 5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주요 식품 업체와 라면업체를 불러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대표 기업이 가격을 내릴 경우 다른 기업들도 따라 내리면 정부 입장에서는 물가가 안정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 실제 지난달 가격 담합으로 제분ㆍ제당사들이 가격을 내린 데 이어 파리바게뜨가 제품 가격을 인하하자 뚜레쥬르까지 베이커리업계의 가격 인하가 이어졌다.
문제는 기업들이 처한 현실이다. 밀가루와 설탕 가격이 내린 만큼 가공식품도 내려야 한다는 이유가 있지만, 식품사들은 전체 원가 구조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라면이나 제과 제품 가격에는 밀가루와 설탕 외에도 포장재와 물류비 등 다양한 비용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최근 중동 사태가 격화하면서 압박이 더 커진 원가도 가격 인하 논리를 방어하기에 충분하다.
라면업계에서는 제품 가격에서 밀가루 비중은 10~15%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제과업계 관계자도 "설탕 원가 비중은 2%도 안 된다"며 "인건비와 물류비가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가격을 올리기도 쉽지 않다. 이미 담합 논란으로 소비자들로부터 비난 여론이 확산하고 있는 데다 정부의 물가 관리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당장 가격 조정보다는 할인 행사 등 다양한 프로모션을 통해 정부와 소비자를 향해 물가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는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가격을 유지하는 방법을 택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한 번 내린 가격은 다시 올리기 쉽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시장 상황을 지켜보면서 시간을 벌겠단 계산이란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가와 환율 등 외부 변수가 워낙 불확실해 섣불리 가격을 내릴 수 없다"며 "소비자 부담을 낮추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진주 기자 ohpea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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