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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일본 전역에서 운행 중인 레벨4(정해진 영역 안에서 운전자 개입 없이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한 단계) 자율주행차는 11대 뿐이었다. 같은 시기 미국에서는 웨이모가 누적 2000만건의 유상 운송을 돌파했고, 중국 주요 도시에서는 3100대 넘는 무인 로보택시가 24시간 달리고 있었다. 일본이 2020년부터 밀어붙인 ‘RoAD to the L4’ 프로젝트는 이 숫자 앞에서 초라해졌다.
그럼에도 일본은 멈추지 않았다. 실패를 정면으로 인정한 뒤, 2030년까지 자율주행 서비스 차량 1만대를 도입하겠다는 새 목표를 내걸고 보조금 구조부터 성과 관리까지 정책 전체를 재설계하기 시작했다.
◆안전 제일이 만든 함정
‘RoAD to the L4’의 정식 명칭은 ‘자동운전 레벨4 등 선진 모빌리티 서비스 연구개발ㆍ사회구현 프로젝트’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대중교통이 사라지는 지역에 자율주행 셔틀을 투입해 MaaS(다양한 이동 서비스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 제공하는 개념)를 구현한다는 게 목표였다. 2023년 5월 레벨4 운행 허가를 시작하며 속도를 내는 듯했으나, 2025년 50개 지역ㆍ2027년 100개 지역이라는 당초 목표는 사실상 달성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
안전을 앞세운 실증 설계가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저속 차량을 제한된 전용 환경에서만 운행하는 방식이었는데, 재무성 조사에 따르면 2024년도 실증 가운데 약 40%가 운행거리 3㎞ 미만이었다. 전자 유도선, 자기 마커, RFID(무선 식별 시스템) 등 도로 인프라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라 특정 구간의 안전성은 확보했지만, 노선을 늘리려면 인프라를 통째로 깔아야 했다. 그사이 해외에서는 카메라와 인공지능(AI) 기반의 E2E(센서 인식부터 차량 제어까지 AI가 일괄 처리하는 방식) 기술이 빠르게 퍼지며 범용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잡았고, 격차는 갈수록 벌어졌다.
레벨4를 향한 실증이 레벨2(부분 자동화)에 갇혀버린 것도 문제였다. 디지털청과 재무성 데이터를 종합하면 2024년도 기준 약 90%의 실증이 레벨2에 머물렀다. 레벨4 인가를 받은 지역은 2025년 12월 기준으로도 후쿠이현 에이헤이지초, 도쿄 하네다 공항, 홋카이도 가미시호로초 등 전국 11곳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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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 필자 제공 |
◆보조금의 역설
정책 활성화를 위한 보조금이 역설적으로 발목 잡기도 했다. ‘RoAD to the L4’는 초기 100%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됐다. 재무성 예산 집행 조사에 따르면 전체 재원의 88%가 국비고, 지자체 부담은 10%, 운행 수입은 1%에 그쳤다. 약 90%의 지자체가 무상으로 운행하고 있었으니 수익 모델이라고 부를 것 자체가 없었다.
2025년부터 정부가 보조율을 80%로 삭감하고 지자체 부담 20%를 의무화하자 균열이 드러났다. 오사카부 사카이시는 보조 신청에 실패하자 실증을 중단했다가 이듬해 재신청으로 겨우 재개했고, 에히메현 이요시는 보조금을 받지 못한 뒤 실증 자체를 접었다. 와카야마시와 나가사키현도 같은 이유로 실증을 보류했다. 보조금이 끊기면 서비스도 멈추는 구조가 전국 곳곳에서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보조금을 받고도 상용화할 생각이 없는 지자체가 대다수였다는 점이다. 재무성이 2025년 6월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도 실증 노선 131건을 대상으로 ‘기존 유인 노선을 자율주행으로 대체할 의향’을 조사한 결과 대체하겠다는 응답은 27건(20.6%)에 불과했다. 66.4%인 87건이 ‘미정’, 상용화 예정 없음도 10건(7.6%)이었다. 보조금을 받은 실증 노선 5개 가운데 실제 사업화 의향이 있는 건 1개꼴이었다는 뜻이다. 보조금 수령 자체가 목적이 된 형식적 실증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결국 같은 해 12월, 재무성 재정제도심의회가 칼을 빼 들고 “실증이 상용화로 이어지지 않은 사례가 다수 보인다. 상용화가 없을 경우 보조금 일부 반환을 요구하는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공식 제시했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일본의 자율주행 정책은 방향 자체가 바뀌기 시작한다.
◆정책의 재설계
2026년 1월 16일, 일본 정부는 각의에서 ‘제3차 교통정책기본계획’을 결정하고 2030년까지 자율주행 서비스 차량 약 1만대 도입을 공식화했다. 6일 뒤 가네코 야스유키 국토교통대신을 본부장으로 하는 ‘국토교통성 자동운전사회실현본부’가 출범했다. 국토교통성 물류ㆍ자동차국이 주도하고, 디지털청ㆍ경제산업성ㆍ경찰청ㆍ총무성이 협력하는 범부처 체제다.
예산 규모가 전략의 진정성을 보여준다. 상위 사업인 ‘교통공백지대 해소를 위한 지역 교통 체계 재설계 사업’의 2026년 전체 예산은 2025년 추가경정 424억엔(약 3965억원)을 포함해 총 688억엔(약 6192억원)이다. 핵심인 ‘자율주행 사회구현추진사업’ 본예산은 205억6000만엔(약 1923억원)이며, 추가경정 중 일부도 투입됐다.
물류 위기 대응을 위해 자율주행 트럭에도 이례적으로 별도 예산이 편성됐다. ‘인력 부족 해소를 위한 자율주행 트럭 간선 운송 실증 사업’에 총 12억7600만엔(약 119억원)이 투입돼, 물류 거점 간 레벨4 트럭의 ‘허브 투 허브 모델’(물류 거점 사이를 자율주행 트럭으로 연결하는 운송 방식) 실증과 상용화를 지원한다. 세미 트레일러와 더블 연결 트럭까지 개발 대상에 포함됐으며, 2027년 고속도로 시범 운행이 목표다. 이 밖에 레벨4 법규 요건 제정과 AI 기반 운전지원시스템 국가 인증에도 예산이 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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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 필자 제공 |
구조적 변화도 주목된다. 일본 정부는 자율주행 지원을 중점지원과 일반지원으로 이원화했다. 중점지원은 교통공백이 심각한 지역에서 교통 체계 전체를 재설계하는 사업이 대상이다. 사업당 최대 4억엔(약 37억원)까지 지원되며, 실증을 넘어 상용화 단계까지 이어진다. 일반지원은 레벨4 도입을 준비하는 사업으로, 사업당 최대 2억엔(약 19억원)이 상한이다. 양쪽 모두 정부 80%, 지자체 20% 부담이다.
또한 중점지원을 받으려면 데이터 연계를 통한 수요ㆍ공급 최적화 방안을 포함한 3년간의 구체적 사업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단순히 차량을 투입하는 게 아니라 MaaS 플랫폼 연계, 실시간 수요 예측까지 포함된 지역 교통 생태계의 디지털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상용화도 의무가 됐다. 보조금을 받은 지자체는 2027년까지 전 구간 레벨4 실현 계획을 수립ㆍ공표해야 한다. 운행 노선, 차량 대수, 운영 주체, 재원 조달, 단계별 일정을 구체적으로 담아야 하며, 목표에 미달하면 보조금을 일부 돌려줘야 한다. 달성률 50% 미만이면 30%, 70% 미만이면 15%다. 실증이 끝나면 보조금 없이 운행 수입과 독자 재원으로 서비스를 이어가야 한다. 돈은 주되 반드시 결과를 내라, 결과가 없으면 돈을 돌려받겠다 — 이것이 2026년 일본 자율주행 예산의 메시지다.
다만 이 구조에는 역설도 있다. 재무성 조사 결과, 미정으로 응답한 87건의 상당수가 20% 부담금 확보의 어려움을 이유로 들었다. 보조금 반환 규정과 맞물리면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를 구조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 자율주행이 가장 절실한 교통공백 지역이 오히려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평균연령 60.9세의 현장
일본 정부가 이토록 급격한 정책 전환에 나선 데는 현장의 위기가 있다.
2025년 4월 교통공백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주민 이동이 어려운 전국 교통공백 지역이 2057개, 거주 인구는 전체의 12.5%인 약 1408만명이다. 면적으로는 국토의 26.7%에 해당하는 9만4212㎢다.
사람이 없다. 전국 법인 택시 운전사 수는 2024년 초 기준 약 22만명으로 코로나19 이전 대비 20% 이상 줄었다. 같은 해 인력난과 연료비 상승을 버티지 못한 택시 기업 82개사가 도산하거나 문을 닫으며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택시 기사 평균 연령은 60.9세. 오사카와 후쿠오카 등 대도시는 물론 수도 도쿄까지 버스 노선 폐지와 감축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물류는 더 급하다. 2024년 4월부터 트럭 운전사의 시간 외 근무 상한이 연 960시간으로 규제되면서 1인당 운송거리가 약 20~30% 줄었다. 트럭 운전사 평균 연령은 50세를 넘어섰고,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이 추세가 이어지면 2030년에 전국 화물의 35%가 배송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한다. 일본 정부가 트럭 자율주행에 별도 예산을 편성한 것도, 이 위기가 교통공백 못지않게 급박하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은 일본에게 더 이상 첨단 기술 경쟁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이 걸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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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 필자 제공 |
◆숫자와 현실
2030년 1만대는 5년간 연평균 2000대 이상의 양산이 필요한 목표다. 현재 자율주행 셔틀 1대 가격은 약 5000만~1억엔(약 4억6000만~9억3000만원) 수준이라, 양산 체제 구축을 통한 가격 인하와 E2E 기술의 조기 상용화가 전제돼야 한다.
비용만큼 운영 구조도 중요하다. 보조금 이후의 자립을 가능하게 할 핵심으로 일본 정부가 주목하는 것이 1:N 원격감시 시스템이다. 기존에는 자율주행차 1대마다 감시자 1명이 붙는 1:1 구조로, 인건비가 수익성의 최대 걸림돌이었다. 1:N 방식은 감시자 1명이 여러 대를 동시에 관리하는 것으로, 현재 일부 지역에서 1:3이 시범 운영 중이며 1:5, 1:10으로 단계적 확대가 계획됐다. 1:10이 실현되면 인건비를 최대 90%까지 줄일 수 있어, 교통공백 지역에서 보조금 없이도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경로다. V2X(차량과 도로 인프라 간 통신) 확대도 병행돼 자율주행차가 교통 생태계 전체와 데이터로 연결되는 구조를 지향하고 있다.
물론 가장 큰 고민은 수익 모델이다. 보조금이 끝난 뒤 지자체가 운임, MaaS 연계, 광고 등으로 자립할 수 있느냐가 1만대의 성패를 가른다. 기술이 준비돼도 돈이 안 되면 서비스는 멈춘다. RoAD to the L4가 남긴 가장 뼈아픈 교훈이다.
일본의 전략이 의미 있는 이유는 실패의 구조를 직시하고 제도 자체를 바꿨다는 데 있다. 고령화ㆍ인구 감소ㆍ지방 소멸이라는 문제는 일본만의 것이 아니다. 한국도 머지않아 같은 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일본이 지금 치르고 있는 시행착오는 남의 일이 아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정책 전환의 무대 위에서 실제로 뛰는 기업들을 살펴본다. 도요타와 웨이모의 전략적 파트너십부터 NTT모빌리티의 등장, 닛산ㆍ혼다의 E2E 제휴 러시까지 — 일본 자율주행 산업의 기업 경쟁을 해부한다.
■ 모빌리티 오디세이
세계는 그야말로 로보택시 전쟁터다. 〈대한경제〉가 창간 62주년을 맞아 국내 대표 자율주행 전문가인 차두원 퓨처링크 대표이사와 함께 글로벌 자율주행 시장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 독일, 영국, 두바이, 그리고 한국까지 — 7개국의 전략을 심층 해부하고, 한국이 ‘글로벌 자율주행 3대 강국’에 도달하기 위한 길을 모색한다.
차두원 퓨처링크 대표는 현대모비스, 현대차, 포티투닷,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등에서 자율주행 R&D와 정책 수립을 경험했다. 저서로 《잡킬러》, 《이동의 미래》, 《포스트 모빌리티》 등이 있다.
※본 기고는 퓨처링크의 공식 입장이 아닌 필자의 개인적 견해입니다. 본문에 포함된 원화는 관련 정책 발표 시점 환율로 환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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