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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롤드 로저스 대표와 염태영 의원이 배송체험에 앞서 택배물품 상차 등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쿠팡 제공 |
[대한경제=문수아 기자]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가 국회 청문회에서 약속한 새벽배송 체험을 마쳤다. 지난해 12월 개인정보 유출 청문회 당시 나온 야간배송 동행 제안을 수용한 지 약 3개월 만이다. 한국 정부·정치권과 대립각을 세워온 쿠팡의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쿠팡에 따르면 로저스 대표는 19일 저녁 8시30분부터 20일 오전 6시30분까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와 중원구 일대에서 새벽배송 전 과정을 체험했다. 쿠팡 최고경영자가 직접 심야 배송 현장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로저스 대표와 염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성남시 분당구 야탑 쿠팡로지스틱스(CLS) 배송캠프에서 안전교육과 상차 작업을 마친 뒤, 쿠팡 직고용 배송기사인 ‘쿠팡친구’와 각각 동승해 분당구 야탑동 일대 아파트, 중원구 도촌동 일대 빌라와 단독주택 지역을 돌며 물건을 배송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짜리 빌라에 로저스 대표 직접 프레시백을 들고 오르내렸다.
이번 체험은 지난해 12월 30~31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쿠팡 침해사고 연석 청문회’에서 비롯됐다. 당시 청문회는 수천만 건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 경위를 따지고자 열렸으나, 쿠팡의 경영 방식과 노동환경 전반으로 질의가 확대됐다. 이 자리에서 염 의원이 로저스 대표에게 “주간 업무보다 훨씬 고된 야간 노동의 실상을 몸소 느껴봐야 한다”며 심야 배송 동행을 제안했고, 로저스 대표가 이를 수락하면서 체험이 성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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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이번 체험을 쿠팡이 정부와 정치권에 던지는 유화 제스처로 보고 있다. 로저스 대표는 지난해 11월 개인정보 유출 사태 수습을 위해 임시대표직에 올랐으나, 청문회에서 동시통역기 대신 자체 통역사를 고집하거나 의원 질의에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 등 강경한 이미지가 굳어졌다. 그러나 올해 들어 로저스 대표는 경찰 조사에서 “정부 조사에 전적으로 협조하겠다”고 강조하는 등 몸을 낮추는 행보로 선회했고, 이번에 여당 의원과 나란히 배송 현장에 나서면서 변화를 가시화했다.
쿠팡을 둘러싼 한ㆍ미 간 통상 긴장도 완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지난 1월 밴스 미국 부통령은 방미한 김민석 국무총리에게 “미국 테크 기업을 표적으로 삼지 말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검토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하지만 3월 10일 쿠팡의 주요 주주인 미국 투자사들이 미 무역대표부(USTR)에 제기했던 무역법 301조 조사 청원을 자진 철회했고, 밴스 부통령도 3월 12일 김 총리와의 2차 회동에서 “한국의 법적 시스템 하에서 법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한발 물러섰다. 미국 정부의 태도가 ‘직접 개입’에서 ‘비차별적 법 집행 모니터링’으로 선회하면서 쿠팡으로서도 외부 압박에 기대기보다 한국 내 여론과 정치권과의 관계 개선에 무게를 싣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배송 체험을 계기로 쿠팡이 풀어야 할 과제로 꾸준히 지목됐던 새벽배송의 높은 노동강도 문제 역시 해결 실마리를 찾을지 주목된다. 2025년 택배노조 실태조사에 따르면 쿠팡 배송 노동자의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11.1시간, 일평균 배송 물량은 388건에 달한다. 하루 평균 휴식시간은 약 22분에 불과하며, 응답자의 82.2%가 “자유롭게 휴가를 쓸 수 없다”고 답했다. 야간 배송 중 과로로 말미암은 사망 사고가 잇따르면서 산업재해로 인정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로저스 대표는 체험을 마친 뒤 “고객을 위해 수고해 주시는 배송 인력을 포함한 쿠팡 사업장의 모든 근로자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앞으로도 안전하면서도 선진적인 업무여건을 조성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문수아 기자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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