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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을 도입하기 시작한 국내 건설산업은 설계체계의 혁신으로부터 건설과 유지관리단계의 업무들이 혁신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BIM 자체만을 두고 보면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이를 이용한 건설 프로세스와 체계의 변혁이 뒤따라야 한다.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IPD(Integrated Project Delivery)는 건설의 새로운 발주체계이자 혁신적인 프로세스의 변혁을 통하여 건설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신개념으로 부각되고 있다. 초기단계부터 설계자뿐만 아니라 공급자와 시공자 등 관련 전문가들이 설계에 참여하여 건설체계를 최적화하는 계획을 도출함으로써,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경제성을 극대화하는 방안이다. 현장시공보다는 공장제작(prefabricated)에 의한 시공의 비중을 높임으로써 공기단축과 인력절감 및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는 모듈러 공법은 IPD가 기반이 되어 건설생산체계를 혁신하는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BIM과 IPD, 모듈러 공법은 인프라와 프로세스, 생산체계 등 건설생산체계를 유기적으로 변화시키는 대안으로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본고에서는 국내 건설산업이 생존을 위하여 추구해야 할 하나의 대안으로서 이 3가지 요소에 대한 유기적인 관계와 향후의 도입방안에 대한 시사점을 알아보고자 한다.
1. 건설혁신의 인프라, BIM
미국 NIST의 보고서(Cost Analysis of Inadequate Interoperability in the U.S. Capital Facilities Industry)에 의하면 건설정보 상호호환성 부족으로 연간 150억달러 이상의 비용 낭비가 일어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BIM은 건설정보의 활용도를 높이고 업무수행에 따른 추가적인 가치들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정보 프레임으로서 만들어졌다. 더불어 건설되어질 설계요소들을 각 부재별 속성을 담고 있는 3차원의 객체로 설계함으로써 정보의 호환성뿐만 아니라, 3차원 가상건설환경을 이용하여 설계 및 건설계획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신개념의 건설인프라를 제공한다.
기존 CAD의 2차원 도면은 데이터라기보다는 그림 또는 심볼로서 작업자들이 분석하고 이해하여 수작업으로 수치데이터를 추출하였다. 작업자들의 업무영역에 따라서 도면을 이용하여 각기 다른 데이터들을 산출하였지만, 이 데이터들 간의 연계성은 작업자들의 머릿속에 존재할 뿐 통합적인 정보로서 존재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같은 작업을 서로 다른 작업자들이 중복적으로 수행하는 일도 많고, 데이터의 정합성을 보장하는 것도 용이하지 않았다. 즉, 건설정보인프라 자체가 파편화(fragmented)되어 있고, 유기적인 관계를 갖추지 못함으로써 건설업무를 효과적으로 지원하지 못하였다.
BIM은 이와 같은 파편화된 정보인프라를 통합화하고 유기적인 체계를 갖춤으로써, 각 작업자들의 업무결과가 데이터로서 연관된 작업자들의 손에 즉각적으로 전달됨으로써 통합적인 건설업무를 가능하게 하는 건설정보 인프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BIM은 기존의 설계프로세스와는 달리 통합적인 설계체계가 구축됨으로써 그 성과가 나타날 수 있다. 설계를 발전시키는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들과 방법, 체계가 변하지 않으면, BIM을 사용하더라도 그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2. 건설혁신 프로세스, IPD
최근의 건설사업들은 복잡하고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위한 그린건설 등의 필요성에 따라서 건설이전(pre-construction)에 검토하고 반영해야 할 전문적인 영역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시설물이 복잡해지고 규모가 커짐에 따라서 효과적인 건설을 위하여 설계단계부터 시공을 고려한 설계가 필요해지고 있다. 즉, 설계초기단계에 구매와 시공분야의 전문성이 도입될 필요가 있으며, 그에 따르는 특수한 계약체계가 필요해졌다.
기존의 계약방식에서는 설계가 앞서가고 이어서 구매와 시공주체가 결정되는 방식으로서 초기단계에 그들의 지식이 개입될 여지가 없었다. IPD방식은 설계, 제작, 시공 등의 모든 단계에 걸쳐서 프로젝트 결과물을 최적화하고, 발주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며, 낭비를 줄이고,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모든 프로젝트 참여자의 역량과 통찰력을 협력적으로 활용하는 프로세스에 사람과 시스템, 사업구도 등을 통합하는 체계로서 제시되었다.
일반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기 마련이지만, 한 주체의 성공이 전체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IPD의 요체는 서로 상이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업주체들에게 있어 프로젝트의 성공이 자신들의 성공이 될 수 있는 사업구도를 구축하는 것이다. 사업의 성패에 따르는 리스크와 보상을 공유하는 체계를 통하여 각 참여주체들의 성공이 프로젝트의 성공에서 비롯되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국내의 경우 건설관련법규에서 규정하고 있는 계약체계로는 제작과 시공분야의 초기 개입이 가능한 구조가 아니며, 사업의 성패에 따른 리스크와 보상의 공유를 위한 방안도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에는 AIA(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s)가 IPD를 수행하기 위한 지침을 마련하여 제공하고 있으며, 다수의 프로젝트에서 이미 적용이 되고 있다.
‘Spaceship Campus’로 명명되고 있는 애플사의 신축 본사는 BIM을 기반으로 한 설계와 IPD방식에 의한 건설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초기 단계부터 제작사와 시공사가 참여한 설계가 진행되었고, 설계단계에 이미 공사계획에 착수하여 1억개가 넘는 작업요소들을 도출하고 이를 일단위로 계획하여 시공단계에 발생할 수 있는 예외사항을 최소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와 관련하여 많은 연구들이 추진되고 있으며, 법제도적인 제약사항 및 문화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들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3. 건설혁신 생산체계, 모듈러 공법
건설의 목적물들이 대형화되고 복잡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건설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공장제작에 의한 현장설치를 통하여 현장인력절감과 공기단축, 품질제고 등의 효과를 달성하고 있다. 모듈러 공법은 그 일환으로서 시공작업을 고려하여 설계 시에 일정한 단위 모듈들을 통한 조립체계를 설계에 반영한다. 이를 위해서는 설계초기에 제작과 시공분야의 전문지식들이 반영되어야 하고, 제작사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해진다.
2011년에 중국의 브로드 그룹(Broad Group)라는 건설회사가 15층 건물을 1주일만에 건설하고, 최근에는 30층의 호텔을 360시간(15일)만에 건축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이 회사의 주된 건축방식은 모듈러 공법에 의한 공장제작(prefabricated)방식에 기반하고 있다. 여기서 모듈의 단위를 메인보드라고 명명한 바닥슬래브로 나누었다. 메인보드의 상판은 공장제로 이루어졌으며, 바닥의 역할을 하였고, 하판 역시 공장제로 천장의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상판과 하판 사이에는 HVAC (난방, 환기, 공기조절 장치) 기능을 위한 관이 설치되어 있다. 이외에 각 층의 기둥, 경사지주, 벽, 문, 창문 등은 메인보드와 함께 운송된다. 메인보드가 우선 설치되면 운송된 기둥, 경사지주, 벽, 문, 창문 등은 볼트를 이용하여 조립되며, 이후 관들을 연결하고 층간 배선작업을 수행한다. 이러한 방식은 현장설치가 매우 빠르고 정확히 수행되도록 한다.
이 방식은 오차범위 ±0.2㎜의 정밀한 제작이 필요하며 현장에서는 조율이 잘된 공사관리가 필요하다. 건축을 위해 투입된 93%의 시간이 공장에서 이루어질 정도로 공장생산화 되었다. 이를 통하여 공기를 극단적으로 단축하고, 건설폐기물을 최소화하고 건강과 에너지 측면의 효과를 획득하고 있다. 플랜트나 조선분야에서는 이미 모듈러공법이 일반화되어 활용되고 있으며, 여기에서도 통합설계에 의한 제작과 시공이 이루어지고 있다.
건설시설물의 종류와 특성에 따라서 모듈을 나누는 방식이 달라지므로, 건설회사마다 나름의 특화된 건설상품에 대한 모듈러공법을 개발하고 전략적 제휴나 수직계열화에 의한 제작업체를 확보(공급망체계 확보)함으로써 특화된 시장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4. 공급망구조의 변혁
전술한 바와 같이 중국의 브로드 그룹은 모듈러 공법을 이용하여 혁신적인 공기단축을 이루어내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항은 이 회사가 건설회사에서 출발한 기업이 아니라 친환경 공조설비 제작을 주요 사업분야로 하던 기업이라는 사실이다. 공조설비와 기타 건축물에 설치되는 다양한 장비들을 제작하던 업체이기 때문에, 건축물에 설치되는 설비들간의 유기적인 관계와 형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구조물과 이 설비들을 적절한 규모로 모듈화할 수 있는 개념을 도출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플랜트분야에서도 모듈러 공법을 적용하게 되면서 기자재 공급업체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되는 것도 기자재 및 장비에 대한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는 공급업체의 지식과 노하우가 중심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 모듈러 공법을 통한 획기적인 건설생산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건설회사들이 주요 기자재 및 설비 제작과 관련한 공급망 구조를 혁신해야만 할 필요가 있다. 즉, 주요 기자재 및 설비제작을 위한 자체 기술과 공장을 확보하거나, 그와 유사한 형태로 제작업체들을 수직계열화하거나 유대관계가 깊은 협력관계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모듈러 공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설계 초기단계부터 이를 고려한 설계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제작업체들의 노하우가 공유되어야 한다. 특별한 관계가 없는 일반적인 계약관계의 협력업체가 이 노하우를 공유하기는 쉽지 않다. 조선산업의 경우를 보더라도 조선업체가 관련된 협력업체들을 거의 수직계열화된 형태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 협력업체들의 모든 설계정보들이 조선업체로 집결되어 설계와 제작이 이루어진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5. 맺음말
건설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환경이 열악해짐에 따라서 우리 건설기업들도 이제는 새로운 경쟁요소들을 발굴해나갈 필요가 있다. BIM과 IPD, 모듈러공법은 상이한 요소들이지만 이들을 통합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면, 기존의 시장경쟁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강력한 힘을 획득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기존의 건설생산체계를 변혁하여 공급망체계를 혁신하고 통합적이고 협력적인 사업관계를 구축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공유할 수 있는 문화와 법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아직 국내에서는 이들 하나하나가 이제 막 도입되거나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방법들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업무체계와 역할관계를 혁신해야 한다. 업무관계 뿐만 아니라 사고방식과 문화적인 측면의 큰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내 건설산업이 현재의 어려운 국면을 돌파하고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변화로서 받아들여질 필요가 있는 사안으로 판단된다.
특히 건설산업의 보수적인 사업방식은 각자의 업역에 대한 고정된 관념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BIM, IPD, 모듈러 공법 등은 이러한 기존의 사고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사업관계와 형태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기술분야간, 산업분야간 융합의 관점을 필요로 한다. 기술적으로는 기존의 설계방식에서 벗어나 설계자가 직접적으로 BIM모델을 통한 설계를 진행하고, 설계초기부터 시공자와 제작업체들의 노하우를 반영한 협력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계약적으로 수의계약방식이 허용되어야 하며, 수의계약의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실적으로부터 각 업체들의 신뢰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단순 시공만으로 수익을 창출하던 방식에서 주요 설비와 구조물에 대한 제작영역까지도 사업을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상황은 현재의 사업방식과 사고로는 수용될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침체된 건설시장과 극한으로 치닫는 시장경쟁하에서 생존을 위해서 받아들여야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해된다.
김우영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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