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법(Bankruptcy Law)은 채무를 제 때에 변제하지 못하게 된 채무자의 재산을 모두 팔아서 채권자에게 나누어주는 파산(Bankruptcy) 또는 청산(Liquidation) 절차와 채무자가 채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나누어 변제하게 하는 회생 또는 갱생(Rehabilitation, Reorganization)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일반 민사 집행 절차에서는 채권자가 개별적으로 채권 추심에 참여하지만, 파산절차와 회생절차는 모두 집단적 채권 추심절차로서 채권자가 모두 집단적으로 추심절차에 참여한다.
회생절차(법정관리)에서 채권자의 집단적 채권 추심절차를 규정하는 것이 도산법 규정과 회생계획안(Plan of Reorganization)이다. 회생계획안은 기본적으로 이해관계자의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인 투표에 의해서 결정된다. 채권자는 회생계획안에 대한 의결권 행사로 자기에게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회생계획안의 확정을 저지하여 유리한 회생계획안의 작성을 유도하거나 회생절차의 폐지를 도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채권자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채권자간의 형평을 달성하기 위한 회생계획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회생계획안에 대한 채권자의 의결권 부여가 형평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원은 대부분의 경우 건설회사의 회생절차(법정관리) 진행시 공사계약과 관련한 각종 보증(계약보증ㆍ하도급대금지급보증ㆍ하자보수보증 등)을 보증한 보증기관의 장래 구상채권 중 미확정 구상채권에 대해서 의결권을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따라서 보증기관은 회생계획안에 대해서 보증대상 기관의 의사를 반영하지도 못하고, 이후에 많은 보증금 납부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시공능력 순위 100위 이내에서 회생절차 인가를 받은 20개 회생회사의 의결권액과 회생절차 인가 후의 보증금 납입금을 비교해 보면 회생절차 인가 후의 보증금 납입금이 의결권 규모의 2122.3%에 이르는 회사도 있고, 200%가 넘는 기업이 5개사에 이르고 있다.
△회생절차시 구상채권의 의결권
우리나라 도산법은 회생절차시 구상채권의 의결권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단지, 장래의 청구권은 회생절차가 개시된 때의 평가금액으로 한다는 규정을 구상채권에 적용하고 있는데 장래의 청구권의 개념이 모호하여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채권자ㆍ회생회사ㆍ법원 모두 보증기관의 구상권은 장래의 청구권이기 때문에 이를 평가해 의결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그런데 구상권의 의결권을 인정하는 조건이 상이하다. 보증기관은 보증을 한 보증금액 전체가 장래의 청구권이기 때문에 이를 평가하여 의결권을 부여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대부분의 경우 법원은 보증금을 납부한 경우에만 의결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연방도산법령은 미확정 구상채권에 대해서 장래의 청구권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도산절차에 대한 연방규칙’(Federal Rule of Bankruptcy Procedure)은 조건부 채권(Contingent Claim)과 금액미확정채권(Unliquidated Claim)의 개념을 사용해 공사계약과 관련된 보증회사의 구상채권 의결권 인정 조건을 규정하고 있다.
미연방도산규칙은 조건부채권(Contingent Claim)이란 현재에는 채권이 존재하지 않으나, 장래에 어떤 사건(Event)이 발생하면 효과가 발생하는 채권이고, 금액미확정채권(Unliquidated Claim)이란 채권이 존재하는 것은 명백하나 금액이 확정되지 않은 채권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에 반해 금액확정채권(Liquidated Claim)이란 특정한 시기에 받을 금액이 결정된 채권이다.
미국의 경우 구상권을 금액확정채권(Liquidated Claim), 조건부채권(Contingent Claim) 및 금액미확정채권(Unliquidated Claim)으로 구분한다. 조건부채권을 금액미확정채권으로 분류하지 않고 별도로 조건부채권으로 구분한다. 조건이 성립한 조건부 구상권은 조건이 성립되었다고 하더라도 금액이 확정되지 않으면 금액미확정채권(Unliquidated Claim)이고, 조건이 성립하고 금액이 확정되면 금액확정채권(Liquidated Claim)이다. 즉, 금액미확정채권은 조건부채권도 아니고 기한부채권도 아닌, 현재 채권이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금액만이 확정되지 않은 채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보증회사가 보증서에 근거해서 보증채권자에게 지불한 보증금과 경비(Losses and expenses)는 금액확정채권이지만, 보증금액(Penal Sum)에서 지불한 보증금액과 경비를 제외한 나머지 보증금액은 금액미확정채권이 된다.
미연방도산법에서 채권자의 일반적인 조건부·금액미확정 채권은 채권으로 인정되고 의결권이 인정되지만, 구상권(Reimbursement Right)은 조건부·금액미확정 채권임에도 불구하고 채권 인정이 제한한다.
채무자가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채권자인 발주자는 채무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권을 갖게 되고, 채무자의 계약이행을 보증한 보증회사는 계약이행 의무를 부담하게 되고, 계약이행 의무를 부담하는 경우 구상권을 갖게 된다. 이 경우 발주자와 보증회사의 채권을 모두 인정하면 채무자는 이중으로 채무를 부담하는 결과가 된다.
미연방도산법에서 보증회사의 구상권 행사를 제한하는 이유는 이중 지불의 위험(Risk of Double Payment)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즉, 이와 같은 제한이 없으면 채무자는 주채권자(Primary Creditor)와 보증인에게 동시에 책임을 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약보증과 공사이행보증 취급 개선방안
보증기관의 계약보증과 공사이행보증의 구상권에 대해서 의결권을 인정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회생계획안 의결을 위한 관계인 집회 기일 전까지 채무자가 계약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계약이거나, ‘쌍방 미이행 쌍무계약’인 경우 관리인이 계약 유지를 선택하지 않은 계약에 대해서 전액 상대방과 보증기관에 의결권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회생절차 개시시 계약 상대방 모두 계약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계약을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이라고 하고, 채무자는 이러한 계약의 유지 또는 해제(해지)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계약의 상대방(보증채권자)의 손해배상청구권과 보증기관의 구상권을 모두 의결권으로 인정하면 이중 계산(Double Counting)이 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도산법은 미국의 도산법과 달리 보증의 부종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과 같이 구상채권을 제한하는 방안이나, 독일과 같이 발주자가 의결권을 주장하지 않는 경우에 구상권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방법보다는 채무자가 파산할 경우 최후에 책임을 지는 보증기관의 구상권을 먼저 인정하고 나머지에 대해서 보증채권자의 의결권을 인정하는 방안으로 이중 계산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도급대금지급보증 취급 개선방안
하도급 계약도 원도급 계약과 마찬가지로 만약 회생절차 개시 시점에 쌍방 미이행 쌍무계약이면, 채무자는 계약을 유지하거나 계약을 해제(해지)할 수 있다. 계약을 유지하면 상대방의 채권은 공익채권이 되고, 계약을 해제(해지)하면 상대방의 채권은 회생채권이 돼야 한다.
그런데 실무에서는 하도급 계약을 유지하는 경우 회생절차 개시 시점을 기준으로 이전에 발생한 미지급 하도급 대금은 회생채권으로, 이후 발생한 하도급 기성은 공익채권으로 분류하여 운영하고 있다.
하도급 계약을 유지하는 경우 보증기관이 회생절차 개시 이전의 미결제 하도급대금은 법리상 공익채권이므로 회생회사가 변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회생회사는 형식적으로 하도급 계약을 해제하고, 새로운 별도의 하도급 계약을 체결하는 사례도 있다.
이는 도산법의 규정을 잘못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도산법의 쌍방 미이행 쌍무계약에서 회생회사가 계약 유지를 선택하는 경우 상대방(하도급자)의 채권을 채권 발생 시점에 관계없이 공익채권으로 취급해야 한다.
그리고 하도급 계약을 형식적으로 해제하고 새로운 별도의 하도급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도 원도급공사 계약을 유지한 이상 하도급 계약을 유지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공익채권으로 취급해야 한다.
건설공사는 공사가 완성된 이후 어느 정도 하자가 발생하는 것이 예사이고, 발주자가 하자보수를 요청한 경우, 회생회사가 보증기관과의 업무 거래 재개를 포기하는 경우 전혀 하자보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자보수보증 취급 개선방안
하자보수의무 이행 자체가 완전히 회생회사의 자의적 의사에 의하여 결정되고, 하자보수는 회생회사에게 의무만 있지 반대급부가 없다는 점에서 유동성이 부족한 회생회사의 경우 하자를 보수할 유인이 없다. 이 경우 보증기관은 회생회사를 대신해서 하자보수보증금을 납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회생계획안에 대한 의결권을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하자보수보증은 보증채권자(발주자)의 하자보수 요구가 있어야 하는 점, 이러한 하자보수요구에 의하여 회생회사가 하자보수를 이행할지 여부를 자의적으로 정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하여 일정한 기준에 의한 의결권 인정해야 한다.
만약 일반적인 하자보수보증에 대해서 의결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회생절차 개시 시점 이후에 발주자가 요청한 하자보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상대방(발주자)의 채권은 공익채권으로 처리해야 한다. 회생회사가 회생절차를 진행하는 동안 지출해야 하는 경비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쌍방미이행 쌍무계약 유지 여부 조속 결정
우리나라 도산법은 미연방도산법이나 독일 도산법과는 달리 관리인이 쌍방 미이행 쌍무계약에 대해 선택을 하지 않아 채권자가 불확실한 법률 상태가 지속되는 것에 대한 담보 장치가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현행과 같이 계속 이행으로 간주하더라도 제3회 관계인 집회 기일 이전의 일정 시점까지 관리인은 법원에 쌍방 미이행 쌍무계약에 대하여 계약을 유지할 것인지 또는 해제할 것인지에 대한 리스트를 제출하도록 하여 이해관계인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회생계획안에도 쌍방 미이행 쌍무계약에 대해서 계약의 계속 유지 여부를 명시하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용어설명/구상채권(求償債權)은?
보증기금이 채무관계자에 대해법령 또는 계약에 따라 청구할 수 있는 모든 채권(사전구상권 포함)을 말한다. 기금이 채권자에게 보증채무를 이행한 때에는 그 구상권의 범위 내에서 채권자가 가지고 있는 채권 과 담보권을 법률상 당연히 이전받게 되며 구상권의 범위 내에서 채권자를 대위하거나 자기의 구상권을 선택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
〈앞선생각 앞선신문 건설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