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건설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거나 지명도가 높은 일본 기업이 보이지 않는 것도 일본 건설산업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세계시장의 대세인 투자개발사업에도 일본 건설업체의 존재감이 보이지 않는다. 일본 내 개발사업은 시행사 중심으로 수행된다. 건설기업은 도급자에 불과하다. 해외 투자개발 사업은 종합상사가 주도하고 건설은 일본보다 제3국업체를 선호하는 것도 일본건설업체의 위상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가장 호황이라는 해외플랜트시장도 건설업체보다 중공업이 주도하고 있으며, 건설은 하도급 형태로 참여하는 게 보편적이다.
일본건설에서 자성론이 나오는 것도 건설산업 구조 개편 요구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한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자칫하면 반면교사로 추락할 가능성마저 보인다. 이 글에서는 일본 건설의 최근 이슈를 통해 한국건설산업이 가야 할 미래를 전망해 본다.
△일본 건설산업의 생산성 이슈
기술과 품질 그리고 세계 제1의 안전성을 자랑하지만, 생산성 역시 세계 최고인지에 대해서는 자성론이 대두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 사회에서 건설은 상당한 신뢰를 얻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보기 어려운 초장대교량, 대심도 지하도로, 해상공항 등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돼도 발주처나 국민 모두 당연히 지불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동의했다.
그러나 경제가 장기간 침체되고 재정여력이 약화된 지금의 상황에서는 지불하는 비용과 얻을 수 있는 가치에 대한 회의론이 더 강하다. 해외시장에서 최고 기술의 상품성을 인정받기보다 발주자로부터 외면받는 현상에서 일본 건설업체의 생산성 문제는 심각하게 여겨지고 있다. 지불할 능력은 줄어들고 있는데 호황일 때 투입하는 비용이 그대로인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게 최근 발주자의 불만이다.
△부대비용 높은 원가 부담 이슈
전통적으로 일본 내 건설은 부대비용이 높기로 유명하다. 발주자와 계약자 사이에 훈수를 두는 그룹이 많다는 의미다.
먼저 제네콘(종합건설)은 주거래은행과 역할 분담을 하고 있다. 대부분 공사가 계약 시 지불하는 선급금과 준공금만 있고 중간기성이 없다. 하도급자에게 지불하는 기성은 월간 단위로 지불해야 한다. 제네콘에 현금이 많다면 굳이 대출 없이도 현장을 운영할 수 있다. 그러나 보유 현금은 예전부터 바닥이 난 상태다. 제네콘은 계약서를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아 운영비와 하도급비를 조달한다. 당연히 은행은 대출이자를 챙긴다.
제네콘의 기술력과 품질경영 등이 뛰어나지만, 공사에는 발주자를 대행하는 감리자가 지정된다. 여기에 건축공사에서는 건축설계사무소에서 감리자를 의무적으로 두도록 법제화돼 있다. 상당수 건축공사 현장에 원도급자의 기술·관리자보다 감리자 수가 많은 것도 부대비용을 높이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직접시공이 없는 제네콘이 기술력을 갖춘 전문공사업체를 찾아내는데도 기술중개업소를 활용한다. 당연히 부대비용이 늘어나게 되는 구조다.
△다단계하도급이 야기하는 근로자 이탈
하도급 제한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일본에는 없다. 호황일 때보다 건설업체 수가 12만개 이상 감소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48만개나 된다. 업체 수가 많다는 것은 공종별 및 기술별로 분업화·전문화돼 있다는 의미다. 또한, 이는 전문공사업체가 자체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이 모자란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도급패키지 수가 늘어나면 다단계하도급이 불가피하게 된다. 전문화된 업체를 자체적으로 찾기 어려워서 공종과 기술전문업체를 발굴하는데 중개업소가 하도급구조에 들어오게 된다. 30층 건물 재건축공사 현장에 1차 하도급패키지 수가 250개나 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리고 250여개 패키지 중 중개업소가 끼어드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문제는 1차 하도급패키지가 자체 내 소화가 어려워서 다시 200개 이상의 재하도급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5단계에서 7단계 하도급까지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금 사정이 좋을 때에는 다단계 하도급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비용 누수를 기피하는 상황이 됐으며, 말단의 근로자들에 대한 임금이 체불되는 현상도 증가하고 있다. 이 탓에 한 때 장인정신을 대표했던 현장 기능공들이 대거 이탈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경험이 풍부한 연령층의 이탈이 심해 기술과 숙련도의 단절을 우려해야 할 상황이라고 한다. 올해만 100만명 이상의 근로자들이 이탈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경쟁력 잃어버린 일본의 해외건설
일본의 건설시장을 주도하는 제네콘 중에는 해외시장 매출 비중이 20% 이상인 기업이 없다. 이들은 일본의 건설시장이 고갈돼도 여전히 내수시장에 올인하고 있다. 해외 도급시장에서는 가격 경쟁력을 잃어버렸다고 스스로 자인하고 있다. 일본업체의 해외시장은 주로 대외원조기금과 동반진출하거나 혹은 제조·제작업체들의 해외공장 건설에 편승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대외원조기금에 의존하는 시장은 한계가 있다. 제조·제작업체들은 해외투자에서 내수시장으로 유턴하기 시작하면서 성장세도 멈췄다. 미쓰비시나 스미모트 등 종합상사가 주도하는 투자개발사업에서도 일본건설업체는 푸대접을 받고 있다. 생산성이 낮기 때문이다. 일본식 산업구조에 익숙한 제네콘은 해외시장에서 역량있는 하도급업체를 선발할 역량조차 없다. 그렇다고 일본 내 협력업체와 동반진출하기에는 너무 많은 업체 수와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에 이 또한 불가능에 가깝다.
호황인 플랜트시장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전통적으로 일본의 플랜트시장은 메이커가 주도한다. 발전소나 석유·화학플랜트 건설에서 주계약자는 언제나 도시바나 히타치 등 중공업이 주도한다. 부지정지나 건물 공사 등은 제네콘보다 전문공사업체가 메이커의 하도급자로 지명돼 공사에 참여하는 게 보편적이었다. 그런데 해외플랜트 발주자들은 EPC 계약에서 메이커를 찾지 않고 종합건설업체를 찾는다. 일본 정부와 각종 협·단체들은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일본건설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한 상당한 한계가 도사리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기술우위마저 위협받는 기술개발투자
1970~1980년 제네콘은 자체 연구소를 설립해 막대한 투자를 통해 자동화공법이나 로봇을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일본 내 건설투자가 줄어들면서 연구소들이 기술개발보다 현업부서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개발했던 기술들이 상용화되기보다 연구소 내 소장품으로 남게 되었다. 개발된 기술이 수요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요자는 지불할 비용 대비 가치를 낮게 평가하기 때문에 외면하는 게 당연하다.
이대로 가면 일본이 자랑했던 기술우위마저 지킬 수 없어 미래는 더욱 어둡다는 자성론이 나왔다. 건설과 기계, IT 등의 융합이 대세인 최근의 기술변화 트렌드도 일본 건설업체들의 미래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의 낮은 IT기기 활용도, 정보 통합에 너무 느긋한 정부와 사회, 파편화된 건설업체 등이 융합기술 개발 투자를 막고 있다.
△지속가능한 한국건설을 위한 미래방향
우리의 벤치마킹 1순위였던 일본 건설은 지금 한국의 해외건설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본 건설이 퇴보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한국 및 기타 국가들의 건설이 더 빨리 변신했다고 보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제자리걸음은 퇴보를 의미한다. 한국 건설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일본 건설산업이 주고 있는 시사점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공종별 전문화를 위해 분리발주하자는 움직임도 실익을 따져보자. 전문화가 자칫 세분화되면 일본의 파편식 형태가 될 위험이 있다. 또 하도급을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일본은 왜 한국의 하도급 규제를 부러워하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건설업체라면 100% 하도급보다는 직접·직영시공하는 핵심기술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도 일본 제네콘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는 높은 인건비를 문제 삼아 생산성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생산성 혁신과 기술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데 집중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눈앞에 닥친 현안 해결이 매우 급하지만 산업과 시장을 지속가능하게 만들려면 미래를 대비하는 경영 및 기술전략이 필요하다. 건설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타 산업과 융합하는 기술트렌드에 맞춘 기술개발 방향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금처럼 손실만을 야기하는 최저가낙찰제 등 가격 중심의 입·낙찰방식은 당장이라도 줄이는 게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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