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명 증권사들의 최근 건설산업 업종 보고서의 주요 헤드라인은 ‘최악의 해’(HMC 투자증권), ‘시련의 해’(현대증권), ‘초겨울’(신한리서치), ‘날삼재의 해 더 많은 주의가 필요’(삼성증권), ‘성장의 짐을 내려놓다’(대우리서치) 등으로 요약될 만큼 부정적 평가가 많다. 미국의 건설 환경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의 건설 컨설팅 회사인 FMI는 미국 건설시장의 침체를 ‘Great Recession’ 혹은 ‘Perfect Storm’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이러한 건설환경을 ‘VOCA(Volatility, Uncertainty, Complexity, Ambiguity)’, 즉 변덕스럽고, 불확실하며, 복잡하고, 애매모호한 상태라고 규정했다. 먼저, 건설산업이 처한 환경은 ‘변덕스럽다(Volatility)’. 자재가격 변동, 환율 변동 등 설계와 시공단계에서 각종 변동이 일어나고, 이것은 사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 건설산업은 ‘불확실한(Uncertainty)’ 상황에 처해있다. 각종 사업들이 정부의 재정적 의사결정에 매달려 있으며, 이러한 불가항력적 사건은 건설산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건설산업의 환경은 ‘복잡하다(Complexity)’. 정부의 부채, 부동산 정책, 통합발주, BIM 등 건설사업을 둘러싼 수많은 내외부 요인 속에서 사업성을 정확히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건설산업의 환경은 ‘애매모호(Ambuguity)’하다. 정보화의 발달로 넘쳐나는 수많은 데이터와 정보는 의사결정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적절한 의사결정에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 인식에서 미국 건설산업의 최근 환경이 국내 건설산업이 당면하고 있는 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무쌍한 건설환경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건설 기업에게 필요한 변화 방향
-건설사업 속성 변화에 따른 대처
건설산업의 환경 변화는 건설 사업의 속성 변화를 이끌고 있다. 건설산업의 좋았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함을 인식해야한다.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은 건설사업을 둘러싼 수많은 내외부 요인들은 새로운 전략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우선, 건설환경이 변화무쌍해짐에 따라 이에 상응한 경영 리더십과 의사결정체계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전통적인 종합건설업 중심체계에서 벗어난 기업 경영과 기술 전략의 구사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수주 중심의 기업 경영에서 전략적 관점에서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는 체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업의 인력 양성 역시 변화무쌍하고 복잡다대한 사업환경과 잘 소통할 수 있는 양성 체계로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기업 전략의 주요 키워드를 살펴보자면, 고객(발주자, 사용자) 친화적 접근, 사업의 수익 창출과 유지를 위한 핵심 도구로서 정보화 기술의 적극적 활용, 직접 시공의 확대, 변화에 대한 이해와 수용,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개념의 도입,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전문 그룹으로서의 역량 강화,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측면에서의 콘텐츠가 있는 건설 서비스의 강화 등이 되겠다.
-공공 건설사업 변화에 따른 대처
현재 공공 건설 부문은 과거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부 재정의 부족, 복지 확대에 따른 건설산업 우선순위의 변화,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국민 인식의 변화 등이 그것이다. 공공건설을 주도하는 정부투자기관 역시 누적된 부채로 신사업을 제한 받고 있으며, 구조조정 압박을 받고 있다. 한편, 상위의 국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지속가능한 건설, 에너지 효율 극대화는 더욱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양적인 수요는 줄고, 질적인 수요는 확대되는 형상이다. 또한 기존 시설의 운영 및 유지관리 시장이 확대되고 있으며, 이러한 부문은 향후 건설기업의 주요 포트폴리오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공공 여력의 부족은 바로 중소규모 공공 건설사업에 의존하는 중소 건설기업에 직격탄이 될 것이다. 미국의 경우도 공공 사업의 규모를 축소하고 있으며, 중소기업의 물량 배분 차원에서 공사를 소규모로 분할하여 발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도 분리 발주와 관련한 업종간 대립이 치열한 상태이다. 그동안 건설사업의 과도한 분할 및 분리발주는 계약의 책임 소재와 건수를 증가시키며, 이에 비효율적인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 하지만, 환경적 요인에 의해 진행될 수밖에 없는 공공 건설사업의 소액다건화는 공공 건설에 의존하는 국내 건설업체에 큰 영향을 줄 것이며, 업역을 포함한 생산구조의 개편까지도 유도하는 잠재요소라 판단된다. 여기에 가격 중심의 공공 조달제도의 심화는 건설업체의 직접 시공을 강요하는 원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생산 방식의 변화를 주도
건설생산 방식의 전향적인 변화 즉, 모듈화와 사전제작은 이제 건설산업의 현실적 대안으로 한발짝 다가왔다. 조만간 세계 건설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모듈공법이 될 것이며, 관련한 설계 및 엔지니어링, PM 기술 등 역시 상당한 변화를 맞게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국내에서 수출하는 플랜트 건설사업의 경우 모듈공법의 적용사례가 상당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선진국의 건축 부문에 있어서도 많은 모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건설산업의 가치사슬체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종합과 전문업체가 주축이 되는 생산 체계는 모듈 생산업자와 현장 설치업체(건설업체)로 무게 중심이 변화될 것이다. 생산과 설치의 전주기동안 기획과 관리를 담당하는 PM,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각종 정보화 기술은 더욱 강조될 것이다. 또한 중공업, 자재생산업자 등 그동안 건설 산업의 주요 활동그룹으로 인식되지 못했던 생산 및 공급 업체의 관여가 어느 때보다 높아질 것이다.
모듈화는 설계와 시공의 통합을 넘어서 기획단계까지 건설 생산 프로세스의 통합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여기서 BIM 등은 미래 건설사업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다, PM 지식 및 시스템의 변화도 예상된다. 공정관리를 예로 들어보면 지금까지 활용된 각종 분류체계의 변화도 불가피하며, 작업의 순서와 일정도 완전히 달라지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건설 생산 프로세스의 통합 추세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전통적으로 구분되었던 분야별 전문 회사(설계 엔지니어링 업체, 모듈 생산업체, 자재 생산업체 등)의 수직 계열화(인수 및 합병 혹은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를 유도하여 초대형 건설기업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
이렇듯 모듈화 등을 중심으로 한 건설 생산방식의 변화는 산업의 DNA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에 따른 상당한 난관도 예상되기 때문에, 앞으로 건설 기업은 모듈 생산방식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생산성 향상과 관련된 부문에 기술 역량을 집중하고 투자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질적ㆍ양적 성장
최근 해외 건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키워드는 바로 리스크이다. 리스크 관리가 해외 건설의 핵심적인 관리요소로 부각되고 있으며, 대형 건설기업을 중심으로 관련 조직과 체계, 그리고 시스템 마련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 건설 정책 역시 해외 건설 수출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계속 발전되고 있어 해외 건설의 활성화 기조와 그 실적은 계속될 것으로 판단된다.
2013년 국내의 해외 건설 수출은 실적악화와 저 수익공사 등으로 경고등이 켜졌었다. 그러나, 저수익사업이 2014년 2분기로 대부분 종료되고, 중동 플랜트 발주가 다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면서 향후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국내 건설기업의 해외 건설시장 진출은 다시금 새로운 성장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국내 건설기업의 또 다른 성장을 위해서 해야 할 많은 과제가 있겠지만 필자는 두 가지 도전적 과제를 제시한다. 첫째는 수주 사업에서 벗어나 PPP사업 등 투자 사업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이의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러한 사업이 주로 벌어지고 있는 유럽과 미국 등의 선진국 시장에 진입하고 생존하는 것이다.
△건설산업의 미래를 위한 잃어버린 세대의 복원
미국 건설산업에서는 ‘Lost Generation’의 문제가 등장했다. 활동해야 할 18세에서 34세의 젊은 인력이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인해 건설 산업을 회피하거나 취직이 안되는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국내 건설산업 역시 마찬가지로, 신규로 배출되는 인력을 산업이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신규 대졸자 인력이 선호하는 대형 건설기업이 해외 건설 수주 확대로 신규보다는 경력자 중심의 채용 정책을 보이면서 이러한 인력의 구직난이 더 심화되고 있다. 반대로 중소 건설업체와 기능인력 부문은 심각한 구인난을 호소하고 있다.
미국의 FMI 보고서에서는 잃어버린 세대의 빠른 시일내 산업내 진입을 촉구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건설회사의 전향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젊은 생산인력의 산업내 유입을 위해서는 먼저, 건설산업이 가지고 있는 고정적인 울타리를 거두고 타 산업과의 다양한 관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산업의 부정적 이미지를 혁신하고, 신규인력의 유입과 기존 인력의 이탈을 최소화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고등학교 이하 청소년층의 유입을 촉진시키기 위해 기업 및 건설관련 단체들이 함께 다양한 교육과 사회적 활동을 강화하는 전략도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로 미국의 건설업계는 ACE라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8,000명 이상의 학생들에게 직업경로와 사업지식 강의 등의 학습과 연수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청소년 멘토링 프로그램의 하나이다. 또한 다양한 산업이 협력하는 새로운 사업 수행모델을 지속적으로 구축하여 산업간 벽을 허물고, 타 산업과의 관계를 확대하는 전략도 요구된다.
△맺음말
수년간 공공과 민간의 수많은 전문가 집단이 건설시장의 위기와 해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모두가 공감하는 새로운 해결책이 등장하지는 못했다. 그동안 제시되었던 현실적 해법의 대다수는 단기적 경기부양 혹은 제도개선 등에 치우쳐 왔을 뿐이다. 이제는 건설산업이 국가와 국민에게 주는 변화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기업이 앞장서는 모습이 필요하다. 기업은 건설산업의 리더십을 확보하고, 일자리 창출, 새로운 사업 및 기술의 추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정부와 시장의 수요에만 움직이는 수동적 모습이 아니라 진일보된 기술과 콘텐츠로 시장과 사업을 만들어가는 산업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최석인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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