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는 2000년대 이후 학술적 차원에서 논의되다가 2013년 말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도시재생사업’이라는 구체적 사업 형태를 갖추게 됐다. 특별법에 의한 사업 유형은 소규모 주거지 및 상권 재생 프로젝트인 근린재생형, 대형 복합개발 프로젝트인 경제기반형으로 구분되며, 올해 4월에 도시재생 선도지역 13곳이 지정됐다. 선도지역은 계획 수립 후 사업에 착수해 2017년까지 4년 간 시행될 예정이며, 사업비로 60억∼250억원이 지원된다. 정부는 2016년부터 매년 약 35개의 신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도시재생사업 활성화는 건설산업 입장에서 시장 환경의 큰 변화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도시정비는 대부분 민간의 사업성에 기반한 단기적 사업 위주로 진행되어 왔고, 이러한 구조에서 건설산업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도시재생사업은 민간 주도, 사업성에 근거, 물리적 정비라는 기존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공공 주도, 소규모, 점진적 개량, 사회경제적 계획 등의 핵심 키워드를 갖는다.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건설산업은 도시개발 및 재정비에서 과거와는 다른 역할을 요구받게 되는 것이다.
건설산업 관점에서 도시재생사업의 이해
주거지의 도시재생은 기본적으로 공공 주도 아래 지역 특성을 유지하면서 인프라를 정비하고 개선하는 개량형 사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노후 주거지의 재생과 인근 지역의 경제 재생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공공과 민간이 사업 특성에 따라 연계되는 형태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공공 주도, 소규모, 점진적 개량 등의 키워드에서 알 수 있듯이 주거지의 전면 철거 후 개발에 초점을 맞춘 기존 사업 방식과는 괴리가 있다.
특히 선도 사업처럼 공공이 투입하는 사업비 규모가 4년 간 100억원 미만으로 크지 않으며, 주거지 정비 또한 개량형으로 추진될 경우 소규모, 장기 사업인 탓에 건설산업 입장에서 새 시장으로서 매력이 크지 않다. 다만, 개량형 재생 사업이 활성화되면 소규모 인프라 사업에 더해 대형 건설업체의 시장이었던 주거지 정비 사업에 중소형 건설업체의 참여가 확대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기반형 도시재생사업은 산업단지, 항만, 공항, 철도, 일반 국도, 하천 등 국가 핵심시설의 정비 및 개발과 연계해 도시에 새 기능을 부여하고 고용 기반을 창출하기 위한 도시재생으로 해외 선진국의 경제재생 추진을 위한 도시 개발과 유사한 특성을 가진다. 이러한 사업은 기존 거주자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 공동체 활성화보다는 도시 경쟁력 강화에 보다 초점을 맞춘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공공 주도 하에 추진되지만 민간의 사업성에 기반을 두는 민관협력형 복합개발의 성격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건설산업의 관점에서는 새로운 시장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민간의 활발한 참여를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방식인 민간 단독의 개발사업, 민관 협력의 공모형 PF사업 등에서 나타난 부작용과 단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추진될 필요가 있다.
즉, 건설산업의 관점에서 경제기반형 도시재생사업의 중요한 키워드는 비수익성 시설에 대한 재정의 투입, 리스크의 분담, 정부의 주도적 추진 의지, 그리고 민간 투자 유인을 위한 인센티브 등이 될 것이다.
나아가 도시재생을 보다 광의의 개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기성 시가지를 재생하는 차원에서 추진되는 프로젝트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러한 패러다임에 부합하는 건설 프로젝트와 건설산업의 역할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서울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개발 수요에 대해 원도심을 재생하기보다는 외곽 지역을 개발하는 형태로 대응해 왔으나, 이러한 방식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또한 대부분의 도심 개발이 대규모 업무시설 위주로 이루어지면서 도심의 기능적 다양성이 약화되는 등 중심지의 활력은 지속적으로 저하되는 문제도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특별법에 의한 경제기반형 도시재생사업 외에도 원도심의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공공의 지원 하에 민간에 의한 다양한 복합개발이 활발히 추진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
기존 재개발 및 재건축과의 관계
도시재생과 관련해 건설산업의 주된 관심사는 기존 주택정비 방식인 재건축, 재개발과 도시재생사업간의 관계일 것이다. 원칙적으로 개량형 도시재생사업은 재개발ㆍ재건축을 대체하는 것이라기보다 이 방식이 작동하기 어려운 곳에서 활용할 새 대안으로 이해해야 한다. 도시재생사업이 의도하는 개량적 방식으로는 주택 정비에 한계가 있으므로 도시재생으로 재건축 및 재개발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더욱 중요한 점은 현실적인 차원에서 도시재생은 민간의 사업성에 기반을 둔 도시정비 방식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나타난 불가피한 대응이라는 측면이다. 인구의 감소와 경제의 쇠퇴로 인해 민간의 사업성에 기반을 둔 기존의 도시 정비 방식이 작동하지 않는 지역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공공에 의한 점진적 개량과 소규모 경제 활성화가 주축인 개발 방식이 대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실제 특별법에서도 재개발, 재건축, 주거환경개선사업 등이 모두 도시재생사업의 수단으로 명시되어 있다. 즉, 지역 특성과 사업 목적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추가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접근 방식일 것이다.
재개발 및 재건축의 역할과 효용성에 대해서도 좀 더 실질적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점진적 개량 방식의 도시재생사업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예산을 투입하는 것을 전제로 하며 예산의 제약으로 정비 대상, 정비 범위의 한계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민간의 사업성에 기대어 정비를 꾀하기 힘든 노후 지역은 점점 늘어날 것이며, 한정된 예산으로 모든 지역에 대처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도시재생사업 차원이 아니라 도시 기능의 회복과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는 광의의 도시재생에서 재건축, 재개발의 효용성은 여전히 크며 사업성이 확보되는 주거지역 정비에서 재건축 및 재개발은 지속될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재건축 및 재개발이 가능한 곳이라면 최대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전체 도시 차원에서 도시재생을 효율화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접근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도시재생 패러다임에 대한 건설산업의 대응
도시재생 패러다임의 등장은 건설산업에게 일차적으로는 위기로 인식될 수 있다. 도시개발 및 정비 사업이 공공 주도의 소프트웨어적 개발로 전환된다는 것은 기존 방식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던 건설업계에게는 시장 환경이 크게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드웨어적 사업의 규모가 크지 않고 기간도 길어 기존 사업 방식과는 맞지 않는 측면도 있으며, 향후 도시재생사업이 주류를 이루게 되면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도시재생 패러다임은 단순한 주택정비 사업 방식의 변경 차원이 아니라 전체 주택산업의 방향성을 큰 차원에서 조망하는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재개발·재건축, 민간에 의한 복합개발 등이 여전히 우위를 가지며 존속할 것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 이후를 고민해야 함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방향성에 있어 선진국의 건설시장이 유지보수시장으로 전환했고 우리나라도 2020년 이후 유지보수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 만큼 도시 정비에 있어서도 개량, 유지보수, 리모델링 시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도시재생이라는 새 패러다임을 통해 도시 개발, 복합개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전환시키는 것도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도시재생과 관련된 각종 사업은 궁극적으로 도시 경쟁력과 공공의 이익을 위한 필수적 사업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기성 시가지 내 건설프로젝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즉, 도시재생을 목적으로 하는 도심 복합개발 프로젝트는 단순히 민간이 수익을 내고자 추진하는 사업 개념을 넘어 공익적 가치를 가지는 사업으로 인정될 필요가 있으며, 이에 걸맞게 정부의 인센티브, 규제 완화 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결국 도시재생사업이라는 사업 유형에 얽매이지 않고 도시재생이라는 큰 명분을 통해 도심의 다양한 개발사업이 사회적 공감대와 공공의 지원을 획득하면서 진행될 수 있다면 도시재생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하에서도 건설산업의 역할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이승우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앞선생각 앞선신문 건설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